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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양민학살과 민가방화의 현장 오라리로 다시갑니다.

제주4.3에 대해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지만 또 다른 나님의 소환을 받아 다시 씁니다.무장대들이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어 협상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72시간이라는 파급시간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9일과 30일의 사건이 저 합의를 깨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 혹은 합의 따위는 아랑곳않는 조치인양 몰고 간다.   그러나 저 오라리에서의 사건...

오라리 방화사건, 대청과 서청 그리고 경찰이 자행한 양민학살

1948년 4월 28일 김익렬 연대장과 빨치산 두목 김달삼 사이에 회담이 열렸고, 합의내용은 이렇습니다. 1. 72시간 내에 전투를 완전히 중지하되 산발적으로 충돌이 있으면 연락 미달로 간주하고, 5일 이후의 전투는 배신행위로 본다. 2.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3.무장해제와 하산이 원만히 이뤄지면 주모자들의 신...

제주 4.3의 무고한 희생자에 대한 소견

김달삼의 증언입니다.대표자 여러분!저는 박헌영 선생의 하신 선거에 대한 보고를 듣고 감격하였으며 특히 제주도 투쟁에 언급하실 때 지금까지 적과 가렬한 피투성이 투쟁을 하든 저로써는 생생한 기억이 머리 위에 떠올르는 것을 금치 못했습니다.저는 박선생의 보고를 전면적으로 지지함과 동시에 제주도 안에서는 그동안 어떻게 싸웠으며 이번 민주주의인민공화국최고인민회...

제주 4.3의 진행과정

4.3은 특정세력이 독점 계승할 항쟁이 아니다3․1투쟁 직후 도당(道黨)의 지시에 의하여 각 면(各面)에 조직부(면당=面黨) 직속 자위대(自衛隊)를 조직하게 되었으나 별로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기후(其後) 사태가 거익(去益) 악화됨을 간취(看取)한 도상위(島常委)는 3월 15일 도(道) 파견 『올구』를 중심으로 회합을 개최하여 첫째 조직의 수호와 방어의...

제주 4.3 피살자 명단

이게 정치조직인가? 이들이 뭘 했는지를 봅시다. 1948년 4월 3일 피살자 명단입니다.성명계급사망 장소출생지강성언(康成彦)경위제주 함덕지서제주시 연동 541선우중태(鮮于仲泰)경위제주시 외도동평북 태천 남면 선암 96김장하(金章河)경위제주 화북지서제주시 오등 174김록만(金祿滿)경위북군 한림읍 한림리함남 풍천군이무웅(李武雄)경...

누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무엇을 위해서 국가를 지키나우리집안 아저씨 한분도 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경찰 토벌대에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 중 6.25를 만났고 그 와중에 그분은 사라졌습니다. 아마 후퇴하던 국군이나 경찰에 의해 처리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입니다.그 덕분에 아주머니와 형님이 무지 고생하셨습니다. 아주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소생이 한번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요즘은 보...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지 않은 걸 천행으로 여깁니다.

소생은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지 않은 걸 천행으로 여깁니다. 대한민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만들려던 자들을 물리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4.3 이야기포고령우리 인민해방군은 인민의 권리와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고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인민의 나라를 창건하기 위하야 단선단정을 죽엄으로써 반대하고 매국적인 극악반동을 완전히 숙청함으로써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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