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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와 손권의 형주 소유권 공방

적벽전이후 유비집단이 호남4군을 공취하여 기틀을 다지는 장면이 다이나믹하게 표현됩니다. 황충과 위연이 유비 휘하로 들어온 것도 이때이고요.근데 손권은 마치 자기 땅 인 것처럼 달라고 조릅니다. 안준다고 화도 내고요. 유비가 피 흘려 싸워 장만한 땅인데도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적벽전 이후 상황을 돌아봅니다.吳錄曰:備謂瑜云:「仁守江陵城,城中糧多,足為疾害。...

관우의 독행천리

관운장의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그 화려한 전설의 길을 따라가 보자.1. 동령(공수) 東嶺關은 후한대에 없었다는데.... 2. 낙양(한복, 맹탄) 낙양은 현급 행정기관이므로 洛陽太守란 관직은 존재하지 않는다.3. 사수(변희) 沂水關은 汜水關의 오타인듯, 반동탁 근왕병 시절을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벤 곳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다.4. 형양(왕식) 형양도 현급...

유비(劉備)에게 자식이 귀한 이유

유비는 161년생 그 아들 유선(劉先)은 207년생입니다. 어림잡아 쉰이 다 되어 얻은 자식이죠. 자식을 늦게 얻은 이유는 뭘까요?先主與二人寢則同牀유비는 관우 장비와 같은 이불을 덮고 주무시었다.三國志 蜀書 關羽傳先主與雲同床眠卧유비는 조운과 같은 이불을 덮고 주무시었다.三國志 蜀書 趙雲傳그리고 於是與亮情好日密。關羽、張飛等不恱,유비와 제갈량의 정은 날이 ...

형주(荊州)의 실함과 관운장(關雲長)의 최후

1. 동독형주사(董督荊州事) 관우유경승(劉景升)이 다스리던 형주(荊州)는 호남과 호북 일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였습니다. 북으로는 중원이라 부르는 예주와 연주와 인접하면서, 동서로는 장강수로로 양주와 익주로 교통하는 요지였습니다. 그러나 유표가 죽고, 적벽대전이후 유현덕(劉玄德)은 호남 4군을 수복했고 주유가 양양군의 일부를 차지하고 남군태수에 올랐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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