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북해도의 건아들. 제7사단 28연대 2019/04/06 11:54 by 無碍子

1. 창설
대일본제국 제7사단은 북해도의 향토사단이다. 북해도 개발전에는 인구가 부족해 본토 북부지방출신들도 있었다고한다.
러일전쟁에 참전해 1만명이 전사했다고 알려진 203고지전에도에 투입되었다고한다.

2. 대쏘전
1938년 조선과 만주 쏘련 3국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장고봉이라는 작은 언덕을 두고 일본군(조선군, 관동군)과 쏘련군사이에 분쟁이발발하자 7사단은 조선으로 급파되었으나 도중에 휴전되어 돌아갔다.
1939년 만주와 몽골국경에서 쏘련군과 일본군이 투닥거렸다. 이른바 할힌골 전투에 28연대가 참전했다. 거기서 작전의신 츠지 마사노부(辻政信)를 영접하고 쏘련의 게오르기 주코프의 은총을 받고 주둔지로 돌아왔다.

번외. 이치키 키요나오(一木清直)
1937년 7월 지나주둔군 제1연대(연대장 무타구치 렌야 대좌)의 제3대대(대대장 이치키 소좌)가 중국군지역에서 실탄사격훈련을 하고 돌아와서 점호를 하니 한놈이 없더란다. 그래서 이치키는 없어진 애 찾는다고 소란을 부리면서 '중국군이 우리애 죽였어요'하고 상부에 보고하는데 행불사병이 귀대했다. 설사가났더라나뭐라나. 하여간 귀대는 씹어버리고 무타구치는 공격명령을 내린다. 이게 중일전쟁의 시작이다.
정부에서 고노에수상이 확전 금지령을 내렸으나 관동군(참모장 도조 히데키)는 깔끔히씹고 무타구치에게 공격령을 내려 전쟁은 확대된다. (요건 7사단과는 상관없고 주요등장인물이 한곳에 모인기념으로.)

(이치키 장군이시다)

3. 태평양전쟁 개전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전쟁이 시작된다. 남해지대(지대장 호리 도미타로)가 괌을 점령하고 내친김에 라바울을 먹고 뉴기니까지 점령하러 갔다. 그 빈집에 북해도에서 밥만축내던 28연대가 들어왔다. 28연대는 이치키 대좌가 연대장으로 부임 대본영직할부대인 이치키지대가 된다. 이치키는 노구교사건을 저지른 그놈인데 명령불복종죄로 처벌받지않고 도리어 승진했다.
괌에서 미군 창고에서 통조림(이걸 루즈벨트 급여라고 불렀다고한다) 실컷 까먹다가 다 떨어질때 쯤 되니 배를 타란다. 또 루즈벨트 통조림창고 털어먹으러가자 룰루랄라하는데 뭐가 펑펑거리네 얘네들이 미드웨이섬 공격부대로 차출되었는거.
하여간 다시 스펨도없고 참치캔도없는 괌으로 돌아왔다.

4. 아도餓島 과달카날
또 배를 타라네 귀향한다고 좋아라 룰루랄라 고향 가족들 줄 선물도 사고 즐건마음으로 배를 탔는데 배가 북쪽이 아니라 남쪽으로가더란다. '어서와 과달카날은 첨이지?'
한방에 이치키 지대장이 전사하고 부대는 박살났다. 뒤를이어 35여단(여단장 가와구치)을 투입했으나 박살나고 제 17군(사령관 하쿠다케)를 투입했으나 또 박살났다.
남태평양 해역군사령관으로 부임한 월리엄 홀시제독의 명언 '쪽바리는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라. 착한 쪽바리는 죽은지 6개월된 쪽바리뿐이다.'

이리하야 위대한 대일본제국군은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수명은 30일.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는 인간은 3주일.
누운채 일어설 수 없는 인간은 1주일.
누운 채 소변을 보는 인간은 3일.
말을 할 수 없게 된 인간은 2일.
눈을 깜박이지 못하는 인간은 1일이라는 생명판단학이 정립되었을때 쯤 생존자는 탈출시키라는 명령이 내려 명이 긴놈들은 살게된다.
'과달카날에서 아군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 세력을 맞아 심대한 손실을 입혔으며, 작전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군은 과달카날을 발판으로 삼아 한층 전진하는 것이다' 대본영 발표

5. 과달카날 철수 후
이치키 지대원 중에도 명이 긴놈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소집이 해제되어 귀향했다가 나중에 전황이 악화되자 다시소집되었다는데 소집된 노병들은 총도 없이 죽창들고 해안을 경비하다가 종전을 맞았다고한다.
17군 소속 등 생존 병력 대부분은 버마로 발령받았다고한다. 그들은 무타구치 렌야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버마에 입성해서 임팔로 진격했다고한다. 복도없는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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