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조선은 미개해서 水車가 없었을까? 2016/11/27 18:36 by 無碍子

먼저 일본의 크고 아름다운 수차(수력pump-揚水水車)를 보고가실께요.

저런거 우리나라에는 없었습니다. 간혹 사용하는 곳이 있었다하더라도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에서는 답차(인력pump-踏車, 龍骨水車)가 널리 이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았지만 무자위 혹은 무자새라는 인력펌프가 있기는있었습니다.

염전에서 보이는 답차도 우리 전래의 것이 아닌 일본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천일제염의 전통은 없습니다. 일제시대의 유산이죠.

평야지대 수로가 경지(논)보다 낮고 유수량이 풍부할 때 인공관개용 수차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하천의 흐름이 급하고 홍수기와 갈수기의 유량 차이가 심한 우리 땅에는 수차가 필요 없습니다.(필요한 곳이 더러는 있었을 겝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쓰여질 지형이 아니란 말이죠)

수차보다 더 유용한 관계시설이 있습니다. 바로 보(洑)입니다. 상류에 물을 막아 아래에 위치한 논으로 수로로 연결만하면 퍼 올릴 필요없이 용수공급이 가능하지요.

보를 막는 것은 물을 저장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니 수차가 널리 사용되지 않았었지요.

논에 퍼 올릴만큼 많은 물이 하천에 흐를때는 봇물만으로도 충분하고요. 논이 바싹 마를 때는 어차피 하천에도 퍼올릴 물이 없다는 거 이게 현실이고요.
관정이나 인공관개가 없을 때는 보에서 이어지는 수로의 첫 번째 논이 상답이었습니다. 물을 푸기 좋은 하천옆의 논이라서 가치가 높았던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물레도 wheel이고 바퀴도 wheel입니다. 그러므로 水車를 물레바퀴라고 하는 건 맞지않다고 봅니다. 없었던 것을 굳이 한글화 시킬 필요는 없지요. 일본에서는 양수수차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게 옳은 표현으로 보입니다.



덧글

  • SUPERSONIC 2016/11/27 21:12 # 답글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거군요
  • 2016/11/27 21:33 # 삭제 답글

    자염을 해도 염전 자체는 있죠. 아마 그것때문에 전통방식이라 착각한듯.

    일본이 소금 생산량이 부족해서 중국인 기술자를 불러서 시작했을껍니다.
  • 無碍子 2016/11/27 22:15 #

    자염은 천일염이 아니라 화렴(그분들이 화렴이라 발음합디다)입니다.

  • 2016/11/27 21:37 # 삭제 답글

    저 답차도 일본제라기보다 중국제라고 보는게 옳을껍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6/11/28 10:14 # 삭제 답글

    저 수차도 없는 미개한 나라를 침략했다가 쫓기듯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나라가 어디였더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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