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위안부피해자 이용수할머니의 증언 2016/01/02 23:15 by 無碍子

◇ 이용수 할머니 "구타와 고문, 강간으로 점철된 3년"

= 첫 증인으로 나선 이 할머니는 "나는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설움이 북받치는 듯 "제가 겪은 일들을 꼭 얘기해야 하는데 너무 부끄럽다"며 이내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하나하나 고발했다. 성 노예로 지낸 한 많은 세월들도 털어놨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유모로 일하는 어머니 대신 동생을 돌보며 면사공장에 다니다가 16세이던 1944년 군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갔다.

1944년 10월 어느 날 저녁 그가 집 밖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간 곳은 대만 일본군 위안소였다.

대구 고성동에서 태어난 이용수 할머니는 16살 때 다른 4명의 동네 언니들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1943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이할머니는 "코와 입밖에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쓴 군인이 우리를 데려갔다,

아베 총리는 죄를 모르고 망언을 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위안부로) 갔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아니다. 내가 16살때 어느 날 밤 군인이 들어와 끌고갔다. 대만 신주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갔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간 것도 아니고 돈 벌러 간 것도 아니다.

1944년, 내가 만 열여섯 살 때 가을의 일이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미창(米倉)에 나가서 쌀을 져나르는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내 동갑내기 친구 중에 김분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술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내가 그 집에 놀러가니까 그 어머니가 “너 신발 하나 옳게 못 신고 이게 뭐냐, 애야, 너 우리 분순이하고 저기 어디로 가거라. 거기 가면 오만 거 다 있단다. 밥도 많이 먹을 거고, 너희집도 잘 살게 해준단다”라고 했다. 당시 내 옷차림새는 헐벗고 말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난 후 분순이랑 강가에 가서 고동을 잡고 있었는데, 저쪽 언덕 위에 서 있는 웬 노인과 일본 남자가 보였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니까 남자가 우리쪽으로 내려왔다. 노인은 곧 가버리고 남자가 우리에게 손짓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무서워서 분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벽, 분순이가 우리집 봉창을 두드리며 “가만히 나오너라” 하며 소곤거렸다. 나는 발걸음을 죽이고 살금살금 분순이를 따라 나갔다. 어머니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냥 분순이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집에서 입고 있던 검은 통치마에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을 입고 게다를 끌고 있었다. 가서 보니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가 나와 있었다. 그는 마흔이 좀 안 되어 보였다. 국민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옷보퉁이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속에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있다고 했다. 보퉁이를 살짝 들쳐 보니 과연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보였다. 그걸 받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 나까지 합해 처녀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수시로 말이 바뀌는 어느 위안부의 인생역전


이 글에는 내 의견은 한 글자도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또 출처를 링크했으니 전문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덧글

  • 2016/01/03 06: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無碍子 2016/01/03 16:11 #

    독코타이의 기억이 오래남을수도있지않겠습니까?

  • 지나가던과객 2016/01/03 07:51 # 삭제 답글

    "끌려갔다"는 대목을 제외하고는 일관성이 없네요.

    아마도 자신의 피해의식(이분이 피해자라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님)과 주변의 동정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 無碍子 2016/01/03 16:14 #

    기억이라는게 원래그렇습니다. 더구나 고령이라는것도 새각해야하고요.

    그래서 소생은 증언이 아니라 문헌을 보고싶어요.

  • 얼음집주민 2016/01/03 16:26 #

    고령이라고 커버쳐 줄 정도의 기억의 착오의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 붕어 2016/01/04 14:28 # 삭제

    기억이 증거가 되려면 일관성이 확고해야 되는데 이건 누가 써주고 있다고 주장해도 할말이 없어지니 답답한 일이지요.
  • asdf 2016/01/03 09:40 # 삭제 답글

    소말리맘이 생각나네요
  • asdf 2016/01/03 09:43 # 삭제

    아 물론 이 블로그를 보고 생각난게 아니라 소말리아해적에 대한 뉴스를 보며 생각난겁니다
  • 無碍子 2016/01/03 16:34 #

    아 그 사건요.

  • 백범 2016/01/06 15:47 # 답글

    결국 동네사람에게 속아서 갔다는 말이군요? 어휴...

    한국놈들은 믿을 게 못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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