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김대중대통령님의 대일과거사 말씀 2015/12/30 15:11 by 無碍子




한국 정부는 김 대통령의 방일 전반을 한일 양국의 "'국민적 협력의 신시대'를 구축하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하고, 특히 과거청산 문제에 관해 "공동선언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명문화함으로써 20세기의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협력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18)라며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김 대통령 자신도, 일본수출입은행으로부터의 30억 달러의 융자를 비롯한 경제협력과 함께,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분명히 사과하고 문서에 남긴 것"을 "방일의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19) 그리고 한국 국민에게 "상대가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할 경우 금도를 갖고 대하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며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수용할 것을 당부했다.20)

그런데 실은, 과거청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의미부여는 김 대통령의 방일 중의 발언들에서 발견된다. 김 대통령은 10월 8일의 공동기자회견의 모두에서 "20세기에 일어난 일은 20세기에 끝내고, 21세기의 신뢰관계를 구축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며" 따라서 "성공"이었다21)라며 회담의 의미를 짚고, "한국 정부로서는 다시금 양국의 과거의 역사에 대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국민은 언론의 자유가 있지만,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해 나가고자 한다"라고 언급했다.22) 그리고 같은 날의 NHK TV와의 좌담회에서는 "역사인식의 문제가 일단락 됐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일단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과 저는 이 문제가 더 이상 재론되지 않고 21세기를 향해 의논하자는 방향으로 가자는 생각이다"라고 답변했으며,23) 10월 9일 오오사카에서의 동포와의 간담회에서는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고, 잘못된 것을 사죄"하였으며, "일본측의 완전한 사죄를 받아내었"으므로, "이제 한·일관계는 20세기에 시작했던 불행을 이번 공동성명과 더불어 20세기말로서 끝맺고 21세기 시대를 만들어야"24) 한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25)

다만 김 대통령은, 일본인들의 망언과 관련해서는, 귀국기자회견에서 "일본총리가 정부와 국민을 대표, 문서로 분명히 한 만큼 일본의 다른 지도자들은 거기에 당연히 구속받을 것"26)이라는 입장 아래, "앞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사람이나, 한일 양국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 이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면 용납하지 않을 것"27)이라고 유보를 달았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위안부' 문제는 "과거청산에 포함된 것으로 보지 않으며 이번 방일에서는 이 문제를 처리할 환경과 여건이 안되었고, 따라서 지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라고 유보를 달았다.28)

하지만 김 대통령의 입장의 중심이 '유보' 보다는 '일단락'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명확한 듯하다. 올해 2월 11일 서울에서 코오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나는 20세기의 일은 20세기 중에 청산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사죄는 한번으로 좋다. 한일관계의 과거는 나의 방일로 청산되었다"라고 발언한 것29)은 그러한 맥락에서만 이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권도 "불행한 과거사 극복을 통해 갈등으로 점철된 20세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일 협력의 시대를 개막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했다"(국민회의)라거나, "'가깝고도 먼 나라'였던 일본과의 관계의 전기를 마련했다"(자민련)라며 대체로 '성공'으로 받아 들였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위안부' 문제 등이 미해결인 채 남게 된 것은 유감이라고 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한일우호렵력관계 구축의 초석이 될 것을 기대한다"라며 평가하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30)

18) [김대중 대통령 일본 공식방문 결과].
19) [[김대통령방일] 귀국기자회견 일문일답], {한겨레} 98.10.10.
20) [金대통령 방일 결산 기자간담회], {연합뉴스속보} 98.10.9.
21) [{信賴關係は劃期的} 金大中韓國大統領, 首相經驗者らと懇談], {朝日新聞} 98.10.9.
22) [日韓首腦會談での{過去の問題}主なやりとり], {讀賣新聞} 98.10.9.
23) [[金대통령 訪日/과거사 정리]{왜곡중단}에 중점], {동아일보} 98.10.10.
24) [동포와의 간담회시 격려사], http://www.mofat.go.kr/ - 외교자료실 - 연설문DB - 대통령연설문.
25) 이러한 의미부여는, 9월 30일의 일본언론사 특파원들과의 회견에서 "내달 나의 일본 방문이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더 이상 갈등이 없도록 과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이해와 협력을 이루는 21세기 진입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마음깊이 새기고 있다"([金대통령 "일본 방문 성공 기대"], {연합뉴스속보} 98.9.30. 일본의 신문에는 위의 기사 중 "과거를 청산하고"라는 부분이 "과거를 말끔히 청산하고"로 되어 있다. [歷史認識問題に區切り {謝罪}初の文書化へ 金大中, 韓國大統領7日來日], {讀賣新聞} 98.10.4.)라고 이야기한 것, 그리고 10월 7일의 주일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본이 과거를 똑바로 보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는 용기를 보이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한국도, , , 21세기를 맞이하는데 있어 모든 과거를 청산해 동반자로서 같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金대통령 "한일간 금세기 불행은 금세기중 매듭], {연합뉴스속보} 98.10.7.)라고 이야기한 것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6) [金대통령 방일 결산 기자간담회], {연합뉴스속보} 98.10.9.
27) [金대통령 "日정부 인사 망언은 용납안해"(종합)], {연합뉴스속보} 98.10.10.
28) [[김대통령방일] 귀국기자회견 일문일답], {한겨레} 98.10.10.
29) [訪日で過去淸算 韓國大統領, 初めて明言], {産經新聞}[인터넷판] 99.2.12. 또한 9월 11일 정부가 국내에서 일왕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것([정부 '일본 天皇' 호칭 공식부활], {연합뉴스속보} 98.9.11)도, 이러한 입장과 연관된 것이었다.([동포와의 간담회시 격려사] 참조.)
30) [국민회의 金대통령 訪日외교 성과 논평], {연합뉴스속보} 98.10.10. ; [金大中, 韓國大統領, 內政改革へ 訪日成功が追い風], {朝日新聞} 98.10.10.

출처 한일관계와 과거청산 - 한일 '신 파트너십'을 실마리로 -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김 창 록 (부산대학교 국제지역문제연구소, 제17권 제1호, 1999.3)
전문 http://bluecabin.com.ne.kr/investigation/korea_japan.htm


덧글

  • 無碍子 2015/12/30 15:12 # 답글

  • 알토리아 2015/12/31 09:24 # 답글

    저 당시에 김대중을 친일파라고 욕하는 사람은 지금 박근혜를 친일파라고 욕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적었죠.

    민주화 운동가라는 무적방패를 끼고 있다보니 가능한 거였다고밖에는 생각 못하겠습니다.
  • 백범 2015/12/31 11:55 #

    98% 총폭탄이라는 무적방패는 왜 빼나? 존칭 안쓴다고 주먹, 자장면그릇, 맥주병을 날리는 98% 결사대는 왜 빼???
  • 無碍子 2015/12/31 13:53 #

    백범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구글검색창


www http://soakaeofh.egloos.com/

무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