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비밀의 문. 경종 독살론과 의리 2014/10/21 12:56 by 無碍子

1. 영조(연잉군)이 병석의 경종에게 게장과 감을 멕여 쥑였다는 설을 실록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조선왕조실록 경종 4년(서기 1724년) 8월 21일
약방에서 입진(入診)하고 여러 의원들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蟹醬]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生柿]을 진어한 것은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려하는 것이라 하여, 두시탕(豆豉湯) 및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

영조 84권, 31년(1755 을해 / 청 건륭(乾隆) 20년) 5월 21일
史臣曰:갑진년 8월에 경묘(景廟)께서 병환이 다 낫지를 않고, 수라(水刺)를 들기 싫어하는 징후가 점차 더했기 때문에 궁중에서 근심한 나머지 20일에 어주(御廚)에서 수라에 게장을 올렸었다. 이는 가을철 신미(新味)인데, 경묘께서 이 게장으로 수라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궁중에서 모두 기뻐하였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31년 10월 9일
금번의 역적 신치운(申致雲)의 게장[蟹醬]에 관한 초사(招辭)에 있어서는 더욱이 가슴이 선득하고 뼈가 시려서 차마 들을 수가 없으니, 아! 슬프다. 이는 역적 김일경의 교문에 비길 일이 아닌데, 이 일은 전혀 알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신치운을 정형(正刑)에 처한 뒤에 울며 우리 자성께 아뢰었는데, 자성의 하교를 듣고서야 그때 황형께서 〈게장을〉 진어(進御)한 것이 동조(東朝)에서 보낸 것이 아니요, 곧 어주(御廚)에서 공진(供進)한 것임을 알았다.

1-1. 게장을 올린 주체는 연잉군의 동궁 주방이 아니라 경종임금 전용주방이었다.
1-2. 연잉군이 게장과 감을 경종에게 멕였다해도 그걸 먹고 죽지는 않는다.

2. 맹약
임금(임금이 될 놈)과 신하가 계약서 쓰고 사인하는 문서 같은 건 원래 없다. 그러 거 없이도 서로 지킬건 지킨다. 이게 의리(義理)라는 거다.

2-1. 신임의리(辛壬義理)
경종1년(신축년)에 발생하여 경종2년(임인년)에 끝난 노론 대숙청사건이다. 노론 대신 4명이 죽고 백여명이 처벌을 받은 엄청난 사건인데 노론은 피로 영조를 지켰기에 영조도 노론을 지켜야 한다는 게 신임의리다.

2-2. 이인좌의 난
영조4년 이인좌를 두령으로 하는 소론 일부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영조는 소론인 오명항과 박문수 등을 중용하여 토벌했다.
이찌되었건간에 이 사건으로 소론은 몰락하고 노론 일당독재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노론의 지지로 왕권을 영조의 왕권이 확립되자 도리어 탕평책을 쓴다. 이 와중에 일어난 사건이 임오화변(壬午禍變)이다.

2-3. 임오의리(壬午義理)
사도세자의 죽음인 임오화변은 임오의리가 된다.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지만 정조는 구선복(具善復)도 마음대로 죽이지 못하고 다른 죄목으로 처형했으며, 고모인 정씨부인도 유배에서 풀어 작위를 회복시켜줬다.
남인 채제공(蔡濟恭)이 정조의 복심이었지만 노론인 김종수(金鍾秀) 심환지(沈煥之)도 정조정권의 핵심이 될 수 있었다.

덧글

  • 공손연 2014/10/21 23:17 # 삭제 답글

    게장은 잘못하면 식중독 및 장염에 걸릴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신선하다고 해도 그런데 특히 경종처럼 몸이 허약한사람한테는 치명적일수도 있죠.
  • 無碍子 2014/10/22 15:43 #

    영조31년 신치운사건 말입니다. 신치운은 '신은 경종이 죽은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다'고 했어죠 당연히 죽음을 당하는데 이때는 영조 즉위30여년이 흐른 후인데도 말입니다. 영조는 게장으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어요.

    항간에 게장과 감을 같이 먹으면 죽는ㄷㅔ 그걸 알고 영조가 게장과 감을 임금에게 멕여 죽게 만들었다는 헛소문이죠.

  • 공손연 2014/10/22 19:28 # 삭제

    단지 게장을 먹고 사람이 죽을수도 있다고 말한것입니다. 허약한 사람이 게장을 먹고 식중독으로 죽을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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