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정도전의 꿈 요동정벌과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여야만 했던이유 2014/06/30 14:08 by 無碍子

나는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할 의도가 없이 오직 권력자들의 사병을 빼앗아 정부군으로 만들고 자기가 통수권자가 되기 위해 요동정벌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계획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도전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죽습니다. 1398년은 아시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바로 명나라의 창업주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이 죽은 해입니다.
1398년 6월 24일 주원장이 죽고 손자 건문제(建文帝)가 즉위합니다. 건문제는 숙부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임니다. 연왕(燕王) 주체(朱棣)의 동모제 주왕(周王) 주숙(朱鏞)이 서인으로 강등되어 유배를 갔고 뒤이어 민왕, 대왕, 제왕이 숙청되고 상왕 주백은 자살합니다. 건문제의 칼날이 연왕 주체를 겨누자 주원장이 죽은 이듬해인 1399년 주체가 거병 남정하는데 악전고투 끝에 1402년에야 남경을 함락하고 황제에 오릅니다.

만약 정도전이 건문제와 번왕들의 알력을 알고 있었다면 말이죠. 상당히 승산이 있습니다. 영구히 지배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시적으로 요동을 차지할 공산이 높다는 거죠.
연왕의 군대가 남정할 때 요동을 차지하고 요하에 방어선을 치고 지킨다면 어느정도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정세는 이방원도 알고 있었다면 말이죠.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성공한다면 이성계입장이 더럽거든요.
이성계는 두차례 요동성을 점령하는데는 성공하지만 지키지 못하고 물러났으며 세 번째는 위화도에서 회군했습니다. 그런데 정도전이 성공한다면 나라를 송두리째 바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정도전 판 위화도 회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라 군사력 전부를 이끌고 북진하다가 창칼을 거꾸로 돌리면 이성계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때가 태조 7년으로 신생국가 조선왕 이성계는 아직 민심을 장악하지 못했고 집권층인 사대부들은 정도전을 수장으로 뭉쳐있는 상황인데 거기에 군권까지 주는 게 너무 위험하다고 본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주원장이 죽은지 두달 정도 지난 1398년 10월 6일 정도전 일파를 주살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지요. 이렇게 본다면 왕자로서의 이방원입장도 이해할만 합니다.

정도전의 요동정벌론은 연왕 주체의 정난으로 당위성을 인정받기에 이방원의 거사가 한해만 늦어도 정도전을 칠 수 없었으며 정도전은 요동을 차지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위화도회군에 준하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정도전의 요동정벌이 성공한다고 해서 요동을 영유할 수 있다는 글은 아닙니다. 영락제(永樂帝)는 다섯 번의 북벌을 성공했고 베트남도 일시적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런 영락제가 뒤통수 얻어맞은걸 그냥 참고만 있을 까닭이 없지요.
영락제의 분노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흔적까지 말살시킬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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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도전 그 옥에티.


덧글

  • 炎帝 2014/06/30 15:06 # 답글

    생각해보면 영락제라는 그 폭탄을 곁에 두고도 멀쩡했던게 놀랍네요. 태종도 그 성격에 마찰없이 버틴것도 용하고...
    듣기론 후궁중에 조선인 여인만 8명이었다거나 조선쪽 문물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거나, 조공무역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대우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태종이 세간에 알려진 킬방원 이미지이긴 해도 명과의 외교에서 굽힐건 굽혀가며 얻을건 다 얻어갔나봅니다.
  • ㄷㄷ 2014/06/30 16:26 # 삭제

    킬방원도 왕권 다지기 위한 목적 때문. 이에 걸리지만 않으면 거슬리는 소리 해도 쿨하게 넘겨주심
  • 無碍子 2014/06/30 19:17 #

    태종이라는 묘호가 어울리는 조선의 기틀을 다진 임금이죠.
  • 검투사 2014/06/30 15:12 # 답글

    어차피 태종-세종 때의 조선은 요동 대신 4군과 6진을 먹었으니 그게 그거 아닌가요?
  • 無碍子 2014/06/30 19:19 #

    4군 6진으로 국토를 넓혔다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만 가치는 다르다고 봅니다.

  • gg 2014/06/30 15:27 # 삭제 답글

    영락제의 외정에 위협을 느껴서 태종대에 조정에서 축성논의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태종 13년 7월 26일자에 하륜등이 태종에게 영락제의 북정이 조선을 노릴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성을 쌓아 준비할 것을 청하자.
    태종은 조선과는 무관하니 걱정할게 없고, 난국이 오면 거병하여 쳐들어갈 것이지 앉아서 기다리냐고 패기를 뿌리죠. 기본적으로 사대와 화친을 기본으로 하되,
    하륜과 같은 당시 사대부층이나 태종 자신도 중국과의 관계가 일방적인 사대관계보다는 합리적인 관점 내에서의 국가관계라는 걸 직시하고 있다는걸 보여주죠.

    정도전이 진심으로 요동정벌을 원했다면 그건 현실은 모르고 이상만 높은 어리석음이고,
    내부 주도권 다툼을 위한 수단으로 요동정벌을 이야기했다면 정치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전쟁의 위험을 가져오게한 어리석음이겠죠.

    어떤 관점에서든 국가경영, 외교, 정치 전반적인 면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을 능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방원은 요동정벌이란 허상 없이도 사병혁파와 중앙집권을 달성해냈고,
    옆에 영락제라는 패왕을 두고서도 창업 초기의 조선을 반석 위에 세운데다가.
    오히려 이성계나 정도전보다 피를 적게 흘리며 이 과정을 달성해냈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이성계가 이방원 보고 덕이 없고 피바다가 어쩌고 하는건. 참..

    태종 이방원이야말고 조선 역대 최고의 명군인듯. 중국역사로 치면 당태종?
  • 1 2014/06/30 15:42 # 삭제

    그러고보니 같은 태종
  • 공손연 2014/06/30 18:54 # 삭제

    영락제는 스스로의 부족한 정통성때문에라도 동병상련인 태종을 끌어않을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왕으로서의 인신과 고명이 영락제때 주어진것도 바로 그때문입니다.반면에 건문제는 태종의 정통성을 의심하고 부정해왔습니다.

    결국 요동정벌이 명나라의 침략을 불러올 삽질인것은 분명하나 영락제가 태종에 호의를 가진것은 태종보다도 영락제 스스로의 정책적인 선택이죠.
  • 공손연 2014/06/30 19:15 # 삭제

    「조선의 권지 국사(權知國事) 이【이경(李曔).】이 그의 아우인 이【이방원(李芳遠).】으로 그 뒤를 잇고자 하고, 또 고명(誥命)·인신(印信)과 책력(冊曆)을 청한다.」고 하였다.

    짐이 심히 이상하게 여긴다. 슬프다! 이【이경.】이 병으로 아우에게 사양한 것이 과연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인가? 문득 그 아비 이【이단(李旦).】이 작은 아들을 총애하여 왕위를 바꾼 것인가? 그 아우가 가만히 불의(不義)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혹시 조정(朝廷)을 시험하여 얕보고 희롱하는 뜻인가? 혹시 나라 안에 내란이 있어 그러한 것인가?

    짐이 비록 정성과 신의로 사람을 대접하나, 인신과 고명은 위(位)에 설 자가 정하여지지 않았으니, 경솔히 부여(付與)할 수 없다.

    >>>>>>>>>>>>>>>>>>>>>>>>>>>>>

    건문제는 태종이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고 의심하고 고명과 인신을 내리지 않았고 결국 건문제를 몰아낸 영락제와 코드가 맞을수밖에 없었습니다.

  • 無碍子 2014/06/30 19:20 #

    태종이라는 묘호가 어울리는 조선의 기틀을 다진 임금이죠.

    2
  • 전진하는 북극의눈물 2014/06/30 15:30 # 답글

    저 때 요동 먹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 짱개어를 말하며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죠...
  • 無碍子 2014/06/30 19:21 #

    지금 한반도는 중국 땅이 되었겠지요.
  • 뽀도르 2014/06/30 15:49 # 답글

    고려시대 ( 위회도회군보다 앞선 ) 1차 요동정벌에서도 일시적으로 요동성을 점령하는데까지는 성공했던 것을 보면, 기습에 의한 일시적 점유는 가능했지 싶네요;;;
  • 無碍子 2014/06/30 19:22 #

    영유와 별개로 점령은 가능하다고 본 글입니다.

  • 리얼스나이퍼 2014/06/30 18:17 # 답글

    자꾸 영락제를 엄청 강조하는데 몽골 5차 정벌한 것도 뚜렷한 성과도 없이 헛심만 쓰고 엄청난 재정과 군사력만 낭비하고 사실상 실패로 봐도 무방하고, 이후 명나라 몰락의 근본적 이유가 됐고, 영락제 자신도 몽골 정벌한답시고 설치다가 지쳐서 죽었고 베트남도 일시 정벌한 것이지 영락제 말기부터 저항에 부딛혀서 사실상 지배를 포기했음.
    베트남 정벌은 완벽한 실패임.

    당시 조선은 중, 후기와는 달리 조선 초는 나름대로 군사력과 국방력도 잘정비되어 있었음.
    따라서 정도전이 요동 정벌했으면 성공했을 가능성이 컸고, 요동을 반드시 고수해야할 자신들의 땅이라고 명나라가 생각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북원의 위협이 상존하는 마당에 영락제가 엄청난 재정과 군사력을 동원해 쳐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설령 쳐들어왔다고 해도 명나라는 영락제의 무리한 원정등으로 사후 급격히 몰락하여 북방 민족에 일방적으로 터지는 젖밥국가로 전락함.
    고로 영락제가 조선의 씨를 말렸을 거라느니 우리가 지금 짱개어를 말하면서 살거하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버임.
  • 無碍子 2014/06/30 19:23 #

    반말이나 빈정거리는 글, 예의 없는 글, 일명 외계문자, 그리고『~~음.』『~~슴.』『~~됨.』 『~~함.』 『~~여.』 『~~임.』『~~아님?』등과 같이 토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글은 지울 수도 있습니다.
    http://soakaeofh.egloos.com/4791248

    참고해 주세요.
  • 零丁洋 2014/06/30 20:18 # 답글

    요동에 대한 의지가 확실했다면 우리가 중국화될지는 알 수 없으나 대륙의 운명에 역겨들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無碍子 2014/07/01 13:00 #

    어쩌든 엮입니다.

    당나라가 망할 때 신라가 망했고, 원나라가 망할 때 고려가 망했으며, 청나라가 망할 때는 조선이 망했어요.
  • 지나가던과객 2014/06/30 21:06 # 삭제 답글

    리얼 스나이퍼/ 몽골이야 원나라를 생각하면 위협이니 신중히 준비할 수 있고, 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조선은 옆에 왠 듣보잡이 요동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주원장이나 영락제 성질에 가만 안 놔둘 것 같은데요?
    거기다 중국과 조선 사이에 바다를 이용하면 군대를 대량 투입하기도 편하고 말이죠.
  • ㄹㄹㄹ 2014/06/30 21:59 # 삭제

    당시 주원장의 조선에 대한 반응을 기록한 것을 보면 명나라가 조선을 듣보잡 취급하면서 아주 만만하게 보지는 못했고 오히려 어느정도 겁까지 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뭐 영락제같으면 물불 안가리고 쳐들어왔을 가능성도 높다고는 생각됩니다만 그게 조선의 종말 내지는 우리가 지금 짱개말을 쓰고 살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겠죠.
    베트남의 경우를 보더라도 말이죠.
  • 無碍子 2014/07/01 12:59 #

    ㄹㄹㄹ님/

    조선은 베트남이나 몽골이 가진 우군이 없어요. 몽골의 추위나 베트남의 더위가 없고 몽골의 사막이나 베트남의 정글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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