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정도전과 요동정벌 2014/06/16 12:34 by 無碍子

1. 요동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한반도는 아시아 끝에 매달려 압록강과 백두산으로 차단된 나름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나 요동은 형편이다르다.
요동은 동으로는 여진, 서는 중국, 남은 조선, 북은 몽골로 통한다. 조선은 그런 땅을 소유할 아무런 노하우가 없다. 명나라 소유의 요동을 잡으려면 선결과제가 여진을 확보하고 몽골과 화친한 연후에 요동출병을 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요동을 소유할 수 없다.

2. 정도전은 바보
천하에 짝을 찾기 어려운 명장 이성계조차 요동성을 두번이나 함락했으나 지키지 못하고 퇴병했어야 했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 클릭
정도전이 요동을 함락하고 또 그 땅을 영구히 지킬 복안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요동정벌을 추진했다면 바보이거나 노망든 걸로 봐도 된다.

3. 진법훈련
여말선초 국가기강은 무너지고 나라는 개판이었다. 군주정 시대에는 오직 군주만 군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귀족들 그리고 권력자들은 사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사병이 중앙집권에 방해된다고 생각한 정도전 일당은 진법훈련을 핑계로 사병들을 단일 지휘체계로 통합하고 나아가 정부군으로 통합을 추진한 것으로 본다.

4. 요동정벌
요동정벌을 내수용 발언이다. 그 내수용 발언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표문에 금지어가 들어간 것을 핑계로 정도전의 소환을 요구해 명과 조선은 외교갈등을 빚게 되었다.
사병혁파를 위해 진법훈련을 추진했으며 진법훈련은 요동정벌이 핑계였다.

의문
군대를 기르는데 많은 돈이 든다. 고려의 수조지가 혁파되어 대규모 사병을 운용하던 구 귀족은 사라졌다. 조선의 과전 혹은 공신전을 받은 신흥 귀족들이 국가에 위해될 만한 수준의 사병을 기를 경제력이 있는가?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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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공손연 2014/06/16 13:51 # 삭제 답글

    고려의 수조지가 혁파되어도 조선건국~조사의의난에 이르기까지

    공신세력들이 사병들을 유지하고는 있었죠.

    나라에서 허락만 하면 가능했다고 봐야죠.

    그런데 왜 주원장이가 변발을 하고 자빠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나라의 영향이 남아있었을것이라는 편견이 제작진한테 있었던듯 한데...

    원나라는 변발을 청나라처럼 강요한것도 아니고 명나라가 몽골풍습을

    혁파했는데도 저러니 문제죠.
  • 無碍子 2014/06/16 16:38 #

    소생의 의문은 무장병력보유의 합법성의 여부보다 그 운용비용입니다.


  • i핀i 2014/06/16 17:20 #

    공신록이나 받은 땅같을걸 보면 되지안을까요?
    설마 공신이라고 이름만준건 아닐테고 그당시 녹봉은 땅같은 걸테니
    글고 사병이있긴 했조 태조가 보위에 오르자마자 사병을 다혁파 했다고 실록에 나오니
  • 공손연 2014/06/16 18:51 # 삭제

    아니 합법이건 말건 실존했었고

    그 병력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중앙정부를 전복시켰는데

    당연히 운용비용이 있었으니 존재했었고 구데타를 성공시키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이숙번같은 경우처럼 정부의 병력을 임의로 동원한 경우도 있으나

    이방원 휘하의 무신들과 회안대군이 보유한 병력들이 역할이 컸었죠.

    동문서답을 하고 계십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4/06/16 16:59 # 삭제 답글

    공신들의 사병혁파를 위한 명분이 아닐까요?

    요동정벌을 위해 공신들의 사병을 국왕이 인수하는데, 명분없이 데려오면 문제가 생기니 요동정벌을 이유로 빼오면 그래도 문제가 덜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 i핀i 2014/06/16 17:23 # 답글

    말이 다르네요 앞에서는 요동정벌이 바보짓 이라더니 아레서는 내수용발언이라고 하고
    글고 구지 점령할필요는 없조 할수있다는 협박만으로도 충분하니
  • ㄷㄷ 2014/06/16 17:31 # 삭제 답글

    다수의 사병이라면 운용할 수 없었겠으나, 반정이란 것이 꼭 수천~수만에 달하는 인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고, 수십 명을 동원한 요인 암살 같은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그 싹을 아예 제거하고자했다고 생각합니다.
  • 초록물고기 2014/06/16 18:33 # 답글

    공신세력도 공신세력이지만 세자를 제외한 왕자들을 견제하려 했다고 봐야죠. 왕자들의 사병은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데 가장 큰 위협이었으니까요
  • i핀i 2014/06/16 20:54 #

    글고 그건 현실로....;
  • 요동정벌 2014/06/19 05:40 # 삭제 답글

    조선군을 너무 핫바지로 보시는분들이 많네요. 태조 건국 당시 조선군은 패랭이 군모에 제비꼬리 포졸복의 군졸 집단이 아니라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와 비슷한 갑주를 입은 정예병들 이었습니다. 특히 이성계는 여진족 추장급이었던 북쪽 군벌이었구요. 고려말 출정했던 정벌군도 3만 5천 병력중 2만이 기병이었습니다. 기병 2만이면 보병 10만에 육박하는 전력입니다.
    고려를 무력으로 붕괴시킨게 아니라서 국력도 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양에 경복궁과 성채까지 금새 지어 천도할 정도 였습니다. 수당 제국이 고구려를 겨우 멸망시켰지만 신라까지 토벌하지 못했습니다. 신라 구석탱이 영토가 필여없었다기 보다 전술적으로 완전 토벌이 불가능 했습니다. 수십만의 군대를 어떻게 유지하는냐며 따지는건 현대전의 병참시스템에 기반한 생각일뿐이에요. 러시아땅까지 정복한 몽골군에게 무슨 병참부대가 있었습니까? 주원장은 귀족도 아닌 평민출신 반란군의 수장출신 이었기 때문에 중국 지방토호들을 대외전쟁에 끌어들일 힘이 부족했습니다. 영락제 치세가 열리기 전까지 조선도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었음엔 틀림없습니다.
  • 無碍子 2014/06/22 11:30 #

    이성계는 두번이나 요동성을 함락했었어요.

    http://soakaeofh.egloos.com/5144475
  • 정도전 2014/06/21 22:43 # 삭제 답글

    최영이 하자고 할때 했어야지 그땐 정말 요동이 무주공산이었다

    정도전시절엔 이미 명나라가 북원과 사천에 있는 세력을 평정하고 힘이 커질대로 커진상태지

    최영때 쳐서 여진족과 힘을 합치고 요동에 젊은이들을 고려군에 편입시켜 놨으면 끝이지
    누르하치가 정복지 젊은이들을 모두 병사로사용했듯이
  • 나라사랑 2014/06/21 23:46 # 삭제 답글

    역사에 개인생각으로 혼돈케 하지맙시다

    그시대 살아보지않고 이렇다 저렇다하는건 아닌듯

    제작진도 역사학자도 그시대 살지않았으며
    기록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 믿을수는 없지만 역사의 존재는 현시대인들에게거울이되면되며 되풀이되지 않아야 합니다

    당파들이 있고 폭군도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 참과 진리를 찾았던 선조가 있었기에 지금껏 나라가 존재한것이며 내가ㅇ있는것 아니겠어요 애국심을가집시다
  • 나라사랑 2014/06/21 23:47 # 삭제 답글

    역사에 개인생각으로 혼돈케 하지맙시다

    그시대 살아보지않고 이렇다 저렇다하는건 아닌듯

    제작진도 역사학자도 그시대 살지않았으며
    기록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 믿을수는 없지만 역사의 존재는 현시대인들에게거울이되면되며 되풀이되지 않아야 합니다

    당파들이 있고 폭군도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 참과 진리를 찾았던 선조가 있었기에 지금껏 나라가 존재한것이며 내가ㅇ있는것 아니겠어요 애국심을가집시다
  • 정도전 최영 2014/06/23 17:15 # 삭제 답글

    작은 눈덩이가 뭉쳐지면 커지는 법이다
    청태종이 조선에 쳐들어온 병자호란때도 보면 만주 팔기군 7만 몽고팔기군 3만 한인팔기군 2만 모두 12만이 선봉에 섰고 이듬헤 봄에 더욱많은 팔기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만주족은 나중에 자기민족을 늘리기 위하여 이민족을 포함한 4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살면서 혈통의 1/4만 섞여도 만주족이라 대우하며 그 숫자를 늘려나갔다 팔기군이란 처음에 2만정도 였는데 점령지 에서 이민족을 모두 팔기군에 편입시키며 만주 팔기 한인팔기 몽고팔기 거란팔기 티벳팔기 등 수십개 민족이 팔기군이란 깃발아래 청군이 된것이다 눈덩이가 처음에 작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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