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박정희 시대의 저임금 저곡가정책 2014/05/01 11:10 by 無碍子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폈고, 이는 급속한 자본축적을 가능케 했지만 그 대가는 노동자와 농민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농촌 경제가 몰락하면서 농민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모여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도시의 슬럼화를 야기합니다. 종북과 진보 사이, 잃어버린 민주주의《경기동부》 by 착선

박정희정부이전 즉 5.16이전에는 대한민국이 잘 살다가 박정희 군사독재의 저임금 저곡가정책 때문에 농촌이 몰락하고 도시민은 빈민이 된 게 아닙니다.
원래 가난했고 절량농(絕糧農)이라고 농민조차도 봄이 되면 땟거리가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도시빈민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오죽하면 선거구호가 ‘못살겠다 갈아보자’였겠습니까?
그게 5.16이후 급격히 개선되었습니다. 시대흐름에 따르지 못한 서글픈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만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보가 지속되었습니다.

1. 저임금
비록 저임이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일자무식 농사짓기 싫어 보따리 하나 들고 도시로 흘러온 소년들은 봉재공장 시다로 들어가 미싱사가 되고 또 재단사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던 시대가 그 시대였습니다.
가난한 부모가 자식 공부 시키지 못해도 배우려는 열정만 있으면 공장에서 야간학교를 보네 주었습니다. 산업체 부설 학교를 생각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상찬받아 마땅합니다.
입사만하면 큰 사고치지 않는 이상 정년까지 근무가 보장되었고 가장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걸 당연시 여겨 여성근로자의 경우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불문율이었습니다.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아주머니도 월급을 받았으며 설이나 추석에는 보너스도 받았습니다. 시간으로 따져 급여주는 건 생각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자기 다니는 사업장이 아웃소싱 당할까봐 걱정하지도 않았고 오일쇼크 같은 특별한 불경기가 아니라면 정리해고는 없었습니다.
월세방 살던 사람도 몇해 지나면 전세로 옮기고 부지런히 벌고 저축해서 자기집을 가지던 시절이 그 시절이었습니다.

2. 저곡가
저곡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저곡가는 농민에게 비싸게 사서 도시 소비자에게 싸게 파는 제도입니다. 이 갭이 양특적자(糧特赤字)라는 건데요. 일종의 농업보조금입니다.
지금도 추수철만 되면 쌀가마니 들고 상경투쟁하는 게 연례행사인데 WTO체제하에서는 보조금지급이 금지되어 박정희 시절처럼 대놓고 비싸게 사서 싸게 팔지 못하므로 직불제니 뭐니 하는 편법까지 동원합니다만 오래가지는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어찌되었거나 이야기는 그시절 저곡가정책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농촌경제몰락요?
그 때는 농업의 부흥기였습니다. 농민소득이 도시민의 속들 추월하기도 했고요. 고속도로가 닦여 농산물의 생산지와 소비지가 광속으로 연결되고 그 길로 각종 농자재 농기구 농기계들이 농촌으로 보급되었습니다. 댐과 저수지의 확충은 하늘만보고 농사짓던 논밭에 물 걱정을 덜어줍니다.
소가 끌던 쟁기 대신 경운기가 들판에 나타나 심경(深耕)이 가능해졌고 각종 비료 농약 비닐 등 농자재가 보급되었고 정부는 환금작물(換金作物)재배를 독려해 농업생산과 농민소득은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결. 도시와 농촌
당시대의 농업발전만 돌아봐도 고속도로 등 수송인프라와 용산 농수산물도매시장 등 유통인프라가 구축되었습니다. 댐과 저수지 그리고 관계수로가 만들어졌습니다.
또 제철과 기계산업의 발전은 경운기 이앙기 바인더(컴바인은 아직) 같은 농기계를 보급합니다.
석유 화학산업의 발전은 화학비료 농약은 물론 비닐 PVC 같은 그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마법 같은 자재들이 농촌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정부는 고소득 작물을 개발하고 신농법을 보급했으며 농업협동조합을 재건해 영농자금을 저리로 공급했습니다.
위에 몇가지 예를 든 산업은 비농업분야로 도시민의 일자리 창출로 소득은 증가되었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농공병진의 시대였습니다.

농촌 경제가 몰락하면서 농민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모여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도시의 슬럼화를 야기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세계10위권의 경제를 자랑하는 지금도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게 저임금 저곡가정책 때문은 아닙니다.
농촌 거주자들 중에 원래부터 자기 땅 한 평도 없이 소작이나 날품으로 생계를 꾸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발전하는 도시의 새로운 일자리를 동경하는 건 당연하며 대책없는 무작정 이촌향도로 고생했습니다만 그들 중 대부분은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덧글

  • 전위대 2014/05/01 12:14 # 답글

    하긴 제 아버지 고향 노인들이 왜 박근혜 찍냐고 물으면 통일벼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에 다 굶어죽었어 그거 생각하면 도무지 안찍어줄 수가 없어. 이러시더라고요.
  • 無碍子 2014/05/01 15:57 #

    그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봐야하는데. 전두환이 '겪어보지도 않고'라고했지요.
  • ... 2014/05/10 00:00 # 삭제

    그거 맛 없어서 그걸로 농사 잘 안지를려고 했기도 합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말하기를
  • 전위대 2014/05/10 07:32 #

    맛없는거야 유명하죠. 하지만 풀뿌리보다 못할까요
  • 지나가다 2014/05/01 12:31 # 삭제 답글

    좌빨들의 선동에 교과서까지 오염되는 바람에 한국인들 대부분은 박정희시절 경제가 무슨 정부가 명령하는 계획경제로 알고 있는데 실상은 박정희시절 경제는 기초가 탄탄한 시장경제였고 시장의 비효율을 정부가 적절히 개입해서 잘 해결해 나간 모범케이스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애자님 농업관련 이 포스팅도 그렇지만 수출기업도 마찬가지였어요. 수출하겠다고 하면 이 기업에는 규제가 거의 전부 면제 수준으로 혜택(?)이 갔습니다. 그러니 생산성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고 수출기업간의 경쟁이 요즘 용어대로 블루 오션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기업 대출 이자가 비싸도 그 당시가 지금보다 기업하기는 훨씬 편할겁니다.

  • 無碍子 2014/05/01 15:58 #

    저는 상당한 수준의 계획경제라고 믿고있습니다.
  • 강철의대원수 2014/05/02 01:17 #

    자유시장경제라 정권맘에 안든다고 기업강탈하고 부실국영기업 떠맡기는등 사회주의스러운 정책들을하나보네요
  • 대바리 2014/05/01 15:40 # 삭제 답글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에서 읽었던것 같은데
    야간학교는 박정희 대통령이 어느 공장을 방문 햇는데
    그곳의 직공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나 물었더니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 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고자 이런저런 편의를 보아 주었는데
    나중에 졸업할때 즈음에 보니 교육부에서 정식 인가가 나지 않은 곳이라
    고등학교 졸업장을 줄수 없다 했다는군요
    그런 사정을 전해들은 박대통령은 교육부 관리들에게 당장
    졸업장을 수여하도록 지시를 해서 이후에는
    아무 문제 없이 정식 졸업을 할수 있었다는군요
  • 無碍子 2014/05/01 15:59 #

    팔도잔디(정확치 않은데요) 기록물을 보다가 가슴이 울컥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알토리아 2014/05/01 16:49 # 답글

    저곡가정책이 노동자와 농민을 몰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저곡가정책이 무슨 의미인지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곡가정책이라니까 국가가 농민에게 쌀을 낮은 가격에 강탈한 줄 아는 인간이 있네요. 한국 정부가 무슨 조선 총독부나 하던 짓, 또는 얘네들도 안 하던 짓을 했다고 꿋꿋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가끔 탄복하게 됩니다.
  • 無碍子 2014/05/01 19:01 #

    이중곡가만 알아도 속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 2014/05/02 08:54 # 삭제

    저곡가=이중곡가 가 아닌데요
  • 로보 2014/05/02 10:45 #

    헐/ 좌파서적은 귀하를 속입니다.
  • net진보 2014/05/01 23:42 # 답글

     -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잘살게 됐다는데 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농촌 개발을 위한 특별 대책이 없었다면 수출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도농 격차는 더 커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발전과 새마을운동의 성과는 상호보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또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세계 공통적인 현상이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농촌 인구 비중은 한국보다 적다. 농촌이 빈곤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ctg=10&Total_ID=11208411
    당시 새마을 운동 을 주도하던 고건의 말입니다.
    당시 산업화와 도시화과정을 생략한채 물가억제만 기억하는 분들도많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저곡가정책이라 오해하죠
  • 2014/05/02 09:10 # 삭제 답글

  • 로보 2014/05/02 10:44 #

    이중 곡가제
    [법률] incheon777 | 10.04.24
    근거
    「양곡관리법」(1950.2.16)
    「양곡관리특별회계법」(1950.5.8)
    「양곡관리기금법」(1970.8.12)
    배경
    1950년대, 1960년대를 거치면서 발생한 만성적인 식량부족, 식량 수입으로 인한 국제수지의 악화, 농공간의 소득 격차 심화에 직면한 정부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생산자로부터 수매 곡물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경제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저임금 기조가 필요하고, 또 이를 위해서는 저곡가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969년산 보리와 쌀에 대해 이중곡가제를 실시하였다.
    내용
    이중곡가제는 곡물 생산자로부터 정부가 수매하는 가격을 산지 가격보다 높게 책정하여 증산 의욕을 부추기고 농가 소득을 끌어올리는 반면 정부 방출 가격은 낮게 결정하여 소비가계의 부담을 경감하고 또한 물가에 주는 영향을 줄이는데 그 목적이 있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산부터 보리와 쌀에 이중곡가제가 적용되었다. 우선 미곡의 경우를 보면 1969년산에 대한 매입가격은 정곡 80kg 가마당 5,150원인데 방출가격은 이보다 320원이 높은 5,470원으로 책정되어 두 가격간의 격차가 중간경비를 커버하지 못하여 중간경비의 일부를 양곡관리특별회계에서 부담하는 이른바 광의의 이중미가(판매가격-매입가격<중간가격)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1970년산에 대해서는 매입가격이 가마당 7,000원인데 반해 방출가격은 이보다 500원이 낮은 6,500원으로 책정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양정 사상 처음으로 협의의 이중미가(판매가격-매입가격>중간가격)가 실시된 것이다. 그러나 1971년산 추곡에 대해서는 다시 정부방축가격이 매입가격보다 750원이 높게 결정됨으로써 가마당 738원의 중간경비를 공제하고도 12원의 이익이 발생하였다.
    실시 초기의 이런 움직임을 거쳐 1972년산부터 본격적으로 협의의 이중미가제가 시작되었는데 그 후 가격격차는 점점 확대되어 1975년산의 경우 매입가격이 19,500원인데 반해 방출가격은 16,730원으로 가마당 2,770원의 가격격차와 1,996원의 중간경비를 합쳐 가마당 4,766원의 손실을 보았다. 가마당 손실의 판매원가(수매가+중간경비)에 대한 비율을 보면 1972년산의 경우 11%이던 것이 1974년~1984년에는 25%~27%로 정부 부담률이 높아졌으며, 1985년산 이후에는 가격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3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산(1991년미곡연도)부터 정부방출 가격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정부부담률은 25% 내외로 떨어졌다.
    보리의 경우 이중가격제 실시 첫해인 1969년산에 대해 매입가격은 가마당 3,348원인데 비해 방출가격은 이보다 598원이 낮은 2,750원으로 책정되어 중간경비 430원을 합하면 가마당 1,037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수매가와 판매가의 가격격차는 점점 커져 가마당 손실의 판매원가(수매가+중간경비)에 대한 비율은 1970년산의 겨우 27%였던 것이 그 후 가격격차가 계속 커지면서 1980년산의 경우 52%, 1990년산에 대해서는 41%, 그리고 1996년산의 경우는 61%나 되어 보리값의 반 이상을 정부가 보조해 주었다. 보리에 대한 이중가격제 실시는 그 목적이 곡가안정이나 소비자 보호에 있다기보다는 보리 소비를 증대시키고 대신 쌀의 소비절약을 유도하는 한편 토지이용면에서 증산 잠재력이 큰 보리의 증산의욕을 고취하자는 정책적 의도에서 실시된 것이다.
    이처럼 이중곡가제는 정부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고 시장가격 또는 매출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방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재정적자를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차입금이나 양곡증권 발행을 통해 조달되었으며 이중곡가제 실시로 인한 양곡관리기금의 적자액이 크게 늘어나 1990년에는 4조5천 억에 달하였다.
    역사적 의의
    쌀이 부족했던 1970년대 이중곡가제 실시는 식량증산, 농가소득증대, 소비자가계보호, 물가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비교적 효과적으로 달성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중곡가제로 인한 재정적자 누증은 고곡가정책의 계속적 실시에 제약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더욱이 여기에 우루과이 라운드 농업협정이 타결되어 농산물 시장이 관세화 내지 개방되어야 하고 농업에 대한 각종 보조와 쌀 가격지지를 축소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결국 이런 상황 변화속에서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수매가격을 동결 내지 소폭 인상에 그치는 한편 정부정가수매량을 감축함으로써 양곡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낮추고 대신 양곡유통을 자유시장기능에 맡기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문팔용,〈양곡수급·관리〉《한국농정50년사》제Ⅱ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림부, 1999
    황연수,〈이중곡가제의 평가〉《한국 농업구조의 변화와 발전》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03
    집필자
    배민식(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 2014/05/02 11:49 # 삭제

    박정희 집권년도부터 이중곡가시행까지 10년이고 그 사이에 농촌인구가 많이 도시로 갔고 그 이후에도 그나마 최소생존 차원에서 유지된거죠. 최근처럼 농촌 스스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것도 아니고 농촌인구급감, 도시인구증가, 슬럼가등장이 사실인건 부정할수 없죠.
  • 로보 2014/05/02 12:17 #

    왜 농민들이 도시로 갔나 잘 생각해보세요. 도시가 그렇게 나쁜데 왜 갔을까요?
  • 어리내 2015/08/28 21:41 # 삭제 답글

    배우려는 위지만 있으면 누구나 야간학교에 갔다구요? 정리해고가 없었다구요?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도 공장주의 눈치가 보여 감히 말도 꺼내지 못했고 정리해고를 해도 어디가서 억울하다 하지도 못했던 시대였을 뿐입니다. 1960년대 70년대에 정년이요? 다들 20대 저임금 노동자들 뿐이었는데 정년이 보장되는게 그당시 무슨의미가 있죠? 그냥 현재 낮은 임금을 받아도 참고 살라는 의미외엔 없었습니다.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은 왜곡된 정보로 인해 자신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 ㅇㅇ 2015/11/06 21:06 # 삭제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다녔다는건 팩트인데요

    전국각지 사업체에 야간부설학교설립이 우후죽순 설립되어
    가정형편 어려워 초중학교.직업전문 못다닌 이들을 위해서 국가가 정식졸업장으로 인정했어요
    무슨 공장주 눈치보여서 하늘의별따기마냥 꿈도꿀수없던 때인가요?

    그당시 살아봤는지 제가 묻고싶네요
    왜곡된 정ㅂ조로 인해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건 어리내

    산업화 초.중기때 그런 문제점없이 탄탄하게 발전한 사례나 들고오십쇼
    빨갱이들이 산업화과정을 문제삼아 노동권리가 아닌 공산혁명봉기로 확산시키려고
    광분한 시절에 단체교섭.노동자유가 없었던것임 김일성이 지령문참고)

    저임금노동 뿐이라서 밥도못먹어 굶어죽거나 끼니 걱정하는 기아의 나라에서
    20년만에 전자제품이 생필품으로 자리매김이 다가온때가 되었군요
  • 호호 2016/01/07 08:21 # 삭제 답글

    모든일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박정희때도 물론 잘한점과 못한점이 공존하는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중요한건 지금 현재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 ㅠㅜ
  • 하... 2017/06/18 00:31 # 삭제 답글

    븅신같은 틀딱새끼들 아직까지도 박정희 빨아재끼는 거 봐라....
  • 채널 2nd™ 2017/06/18 05:32 #

    이야, 언제적 글인데, 이걸 찾아서 댓글을 다네.
  • 바탕소리 2017/06/18 09:45 #

    포스트 작성일은 보고 댓글 달아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거 영정양하고 키배 뜰 때 나온 건데 ㅋㅋㅋ
    혹시 영정양이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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