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조선시대 패션의 완성 2014/02/15 13:04 by 無碍子

우리조상님들은 고래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러 상투를 틀었습니다. 조선선비들의 외출시 머리치장을 알아봅니다.
빗으로 곱게 빗어 상투를 틉니다. 그리고 머리카락과 이마의 경계에 망건(網巾)을 두릅니다. 망건위에 탕건(宕巾)을 쓰고 갓을 써야 패션의 완성입니다.

집안에서는 갓을 쓰지 않고 방건(方巾)이나 정자관(程子冠)을 쓰기도 합니다. 그 때도 알상투에 방건을 쓰는 게 아니라 탕건위에 씁니다.

갓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투관이라고 해서 상투만 덮는 작은 모자(?)를 쓰고 부녀들이 쪽진머리에 비녀를 꽂듯이 동곳으로 고정합니다. 근데 동곳을 꽂으면 모자를 쓸 수 없습니다.

탕건이나 갓을 쓰지 않을 때는 따로 소중히 보관합니다. 탕건집은 방바닥 손닿는 곳에 두지만 갓집은 높은 시렁에 올려 둡니다. 옷 보다 더 높이 보관하는 게 갓입니다.

탕건은 선조이후에 유행되었다고 합니다. 양반들은 갓 안에 쓰지만 평민들은 탕건만 쓰고 외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사극을 보면 알상투에 갓을 쓰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양반의 풍습이 아닙니다.

덧글

  • 나츠메 2014/02/15 13:40 # 답글

    동곳은 이미지처럼 큰 것이 있으나 작은 것도 있으며, 작은 동곳으로 상투를 고정하면 굳이 탕건을 쓰고 갓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망건은 조선족속(Ethnic)의 고유 의구(衣具)가 아닌 중국의 것이며, 고려 대까지는 착장한 사례가 보이지 않음. 또한 조선 초 의김시습 초상화를 봐도 흑립(굴갓)-포를 착장하고 있으나 그 역시 망건을 착장하지 않았으며 16세기 이전의 기록이나 초상화에서 망건이 착장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음.

    망건을 착장하기 전에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감추기 위해 갓 안에 탕건 또는 다른 형태의 帽를 쓰고 그 위에 갓을 착장할 가능성은 있으나, '선조 대 이후 조선 후기'만 조선시대일 리는 없으므로 명확지 않은 이런 글은 의미가 없습니다.

    괜히 의상-패션사에서 이런 걸 깊게 안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 無碍子 2014/02/15 14:58 #

    탕건도 외래의 패션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唐巾

    또 말총갓도 조선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조시기에서 고종시기까지 일관된 패션이어야 조선의 패션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 나츠메 2014/02/17 02:55 #

    국초의 갓의 규정은 경국대전에 실려있습니다.

    ‘사족오십죽초립(士族五十竹草笠)’, ‘서민삼십죽초립(庶民三十竹草笠)’(經國大典 禮典 雜令條)

    갈대 등의 細草 및 대오리(竹絲) 등을 엮어서 만드는데, 그 양태나 모정에 대한 규정은 없고 다만 그 재질의 수에 대해서만 규정됨.

    모정과 양태에 대한 논의는 조선왕조실록에 있는데 성종-연산군-중종대에 보이는데, 대개 연산군-중종대에 들어 바뀐 것으로 기록되어 있음.


    국초-국말까지 의상의 모양이 일관되진 않았죠. 그러나 한 시절의 패션을 "우리 조상님들은 고래로~"란 말을 쓴 건 무애자 님 본인 귀하십니다. 본문에서 하신 말을 댓글에선 부정하신다는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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