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이충무공이 명나라 도독에 임명되었는가? 2014/02/13 16:08 by 無碍子

萬曆二十年春正月丙戌,給事中孟養浩以言建儲杖闕下,削籍。三月戊辰,寧夏致仕副總兵哱拜殺巡撫都御史黨馨、副使石繼芳,據城反。辛未,王家屏致仕。壬申,總督軍務兵部尚書魏學曾討寧夏賊。戊寅,賜翁正春等進士及第、出身有差。夏四月甲辰,總兵官李如松提督陝西討賊軍務。甲寅,甘肅巡撫都御史葉夢熊帥師會魏學曾討賊。撦力克擒賊,叩關獻俘,復還二年市賞。五月,倭犯朝鮮,陷王京,朝鮮王李昖奔義州求救。六月丁未,諸軍進次寧夏,賊誘河套部入犯,官軍擊却之。秋七月癸酉,免陝西逋賦。甲戌,副總兵祖承訓帥師援朝鮮,與倭戰於平壤,敗績。甲申,罷三邊總督魏學曾,以葉夢熊代之,尋逮學曾下獄。八月乙巳,兵部右侍郎宋應昌經略備倭軍務。己酉,詔天下督撫舉將材。九月壬申,寧夏賊平。冬十月壬寅,李如松提督薊、遼、保定、山東軍務。充防海禦倭總兵官,救朝鮮。是月,振畿內、浙江、河南被災諸府蠲租有差。十一月戊辰,御午門,受寧夏俘。十二月甲午,以寧夏賊平,告天下。是年,暹羅、土魯番入貢。

二十一年春正月甲戌,李如松攻倭於平壤,克之。辛未,王錫爵還朝。辛巳,詔並封三皇子為王,廷臣力爭,尋報罷。壬午,李如松進攻王京,遇倭於碧蹄館,敗績。二月甲寅,敕勞東征將士。夏四月癸卯,倭棄王京遁。六月丁酉,詔天下每歲夏月錄囚,減釋輕繫,如兩京例。癸卯,倭使小西飛請欵。秋七月癸丑,召援朝鮮諸邊鎮兵還。乙卯,彗星見,敕修省。八月丙戌,以災異敕戒內外諸臣修舉實政。冬十月丙申,停刑。十二月丙辰,薊遼總督顧養謙兼理朝鮮事,召宋應昌、李如松還。是年,振江北、湖廣、河南、浙江、山東饑。河南礦賊大起。烏斯藏入貢。

二十二年春正月己亥,詔以各省災傷,山東、河南、徐、淮尤甚,盜賊四起,有司玩愒,朝廷詔令不行。自今以安民弭盜為撫按有司黜陟。二月癸丑,皇長子常洛出閤講學。甲子,遣使振河南,免田租。三月癸卯,詔修國史。夏四月己酉朔,日有食之。五月辛卯,禮部尚書陳于陛、南京禮部尚書沈一貫並兼東閣大學士,預機務。庚子,王錫爵致仕。六月己酉,雷雨,西華門災,敕修省。秋七月丙申,河套部長卜失兔犯延綏。是月,延綏總兵官麻貴敗河套部敵於下馬關。冬十月己未,南京兵部右侍郎邢玠總督川、貴軍務,討播州宣慰使楊應龍。丁卯,詔倭使入朝。是月,炒花犯遼東,總兵官董一元敗之。是年,琉球、烏斯藏入貢。

二十三年春正月癸卯,遣都督僉事李宗城、指揮楊方亨封平秀吉為日本國王。三月乙未,賜朱之蕃等進士及第、出身有差。夏五月丁酉,京師地震,敕修省。秋九月戊寅,青海部長永邵卜犯甘肅,參將達雲敗之。乙酉,詔復建文年號。冬十一月辛未,湖廣災,蠲振有差。十二月辛丑,大學士趙志臯等請發留中章奏,不報。是年,江北大水,淮溢,浸泗州祖陵。

二十四年春二月戊申,麻貴襲河套部,敗之。三月乙亥,乾清、坤寧兩宮災,敕修省。壬辰,下詔自責。是月,火落赤犯洮河,總兵官劉綎破走之。夏四月己亥,李宗城自倭營奔還王京。五月戊辰,河套部敵犯甘肅,總兵官楊濬擊破之。庚午,復議封倭,命都督僉事楊方亨、遊擊沈惟敬往。六月,振福建饑。秋七月丁卯,吏部尚書孫丕揚請發推補官員章疏,不報。戊寅,仁聖皇太后崩。乙酉,始遣中官開礦於畿內。未幾,河南、山東、山西、浙江、陝西悉令開採,以中官領之。羣臣屢諫,不聽。閏八月乙丑朔,日有食之。丁卯,大學士趙志臯請視朝,發章奏,罷採礦,不報。九月乙未,楊方亨至日本,平秀吉不受封,復侵朝鮮。乙卯,葬孝安莊皇后。是月,河套部犯寧夏。總兵官李如柏擊敗之。是秋,河決黃堌口。冬十月丙子,停刑。乙酉,始命中官榷稅通州。是後,各省皆設稅使。羣臣屢諫,不聽。十二月乙亥,陳于陛卒。

二十五年春正月丙辰,朝鮮使來請援。二月丙寅,復議征倭。丙子,前都督同知麻貴為備倭總兵官,統南北諸軍。三月乙巳,山東右參政楊鎬為僉都御史,經略朝鮮軍務。己未,兵部侍郎邢玠為尚書,總督薊、遼、保定軍務,經略禦倭。 夏六月戊寅,皇極、中極、建極三殿災。癸未,罷修國史。秋七月癸巳,誡諭羣臣。丁酉,詔赦天下。是月,楊應龍叛,掠合江、綦江。八月丁丑,倭破朝鮮閑山,遂薄南原,副總兵楊元棄城走,倭逼王京。甲申,京師地震。九月壬辰,逮前兵部尚書石星下獄,論死。冬十月甲戌,安南黎惟潭篡立,欵關請罪,詔授安南都統使。是年,琉球入貢。

二十六年春正月,官軍攻倭於蔚山,不克,楊鎬、麻貴奔王京。三月癸卯,賜趙秉忠等進士及第、出身有差。壬子,羣臣詣文華門疏請皇長子冠婚,不允。夏四月丁卯,遼東總兵官李如松出塞,遇伏戰死。壬申,京師旱,敕修省。六月丁巳,楊鎬罷。戊午,中官李敬採珠廣東。丙寅,張位罷。丙子,巡撫天津僉都御史萬世德經略朝鮮。秋七月丙戌,中官魯保鬻兩淮餘鹽。八月丁丑,京師地震。九月壬辰,免浙江被災田租。冬十月乙卯,總兵官劉綎、麻貴分道擊倭,敗之。董一元攻倭新寨,敗績。十一月戊戌,倭棄蔚山遁,官軍分道進擊。十二月,總兵官陳璘破倭於乙山,朝鮮平。是年,烏斯藏入貢。
明史 神宗本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향을 올리는 위패사당인 경남 통영시 충렬사에 소장된 보물 제440호 ‘충렬사팔사품’(忠烈祠八賜品)이 명나라 조정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고 존경했던 명나라 수군 진린(陳璘) 도독이 이순신 장군 가족에게 남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략)
진린(1543∼1607)은 중국 광동성 출신으로, 임진왜란 등 참전의 공을 인정받아 귀국 후 주요 직책에 중용됐다. 하지만 명이 청에 의해 망하자 손자 진영소(陳泳素)는 배를 타고 남해 장승포로 망명 정착, 현재 광동진(陳)씨의 한국 시조가 됐다.

1. 명사에 신종만력제가 이순신을 도독으로 임명한 기록은 없습니다.

2. 팔사품은 진린이 이순신을 존경하여 유족들에게 선물로 드렸다는 견해도 있지만 황제가 내린 인수를 사사로이 수수하는 건 대역죄에 버금가는데 진린이 그리했을 까닭은 없다고 봅니다.

3. 명이 망한 후 진린의 손자가 조선에 귀부했는데 이때 가지고 와서 통제영에 기증했다고 보는 건 어떻습니까?

덧글

  • ㄱㄱ 2014/02/13 16:24 # 삭제 답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순신이 도독인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정조실록에서나 최초로 나옴. 만력제 시절인 선조실록이나 광해군일기엔 없음.
  • Scharnhorst의 바다 2014/02/13 18:18 #

    도독인을 가지고 온 인물이 누구냐...가 문제인데, 일단 도독인이라는 유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정조대부터 확인이 되었다는 것이고. 왕조실록이라는 것이 조정에서 논의된 사항이 주된 기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록이 안 되어 있으니 없다고 보기는 좀 그렇다는 의견입니다.
  • 無碍子 2014/02/13 19:34 #

    그리고 직인만 있지 임명장이 없다는 게 큰 약점입니다.
  • 샤른호르스트 2014/02/13 18:06 # 삭제 답글

    아하 이런...조금 더 확인해보고 쓸 걸 그랬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無碍子 2014/02/13 19:38 #

    신종이 팔사품을 내렸다는 신문기사도 있는 형편입니다.

    통영충렬사에 보관된 팔사품(八賜品)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뛰어난 무공이 전해지자 명나라 임금인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내린 8종류의 유물 15점이다.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7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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