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교과서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 기술 검토 2014/01/19 12:59 by 無碍子

말 많은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완성본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학교 국사교과서로 대치합니다.
또 한권은 명확치 않습니다. 정확히 아시는 분의 가르침을 주시면 바로잡겠습니다.
교학사 중학국사, 미래엔 고등한국사에서의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 기술은 대동소이합니다. 교학사의 책만 까여야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먼저 미래엔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이전 포스트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교과서의 기술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교학사 중학국사

미래엔 고등한국사



“1938년 9월, 놋그릇 공출을 거절하고 성명을 일본식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이 잡혀갔다. 이장이 애국 봉사대에 지원하면 아버지가 풀려난다고 하여 지원하였으나, 그 길로 자카르타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1938년 9월 유기공출과 창씨개명을 거부해 체포된 부친의 석방을 위해 자카르타까지 위안부로 끌려가셨다는 분의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태평양전쟁 연표를 한번 봅시다.

39년 11월 10일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개정하여 일본인 같이 창씨개명하라는 명령을 합니다.
41년 8월 11일 매일신보에 鍮器供出普及運動 各界有志의 時局懇話會에서 蹶起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41년 12월 8일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시작됩니다.
42년 2월 15일 싱가포르가 함락되었고 극동군 사령관 아서 퍼시벌 중장 휘하 영국군이 항복합니다.
42년 2월 28일 자바섬에 상륙하여 3월 9일 자카르타가 함락되고 네덜란드군이 항복합니다.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다시 봅니다.
“1938년 9월, 놋그릇 공출을 거절하고 성명을 일본식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이 잡혀갔다. 이장이 애국 봉사대에 지원하면 아버지가 풀려난다고 하여 지원하였으나, 그 길로 자카르타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38년이나 늦어도 39년에 네덜란드령 자카르타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습니까?
38년 9월 이전에 유기공출령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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