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제일교포 북송. 이승만 박사는 개개끼인가? 2013/12/06 21:09 by 無碍子

Megane님이 KBS 파노라마-북송을 보고 쓰신 글을 먼저 소개합니다.

당시의 남한 정권이었던 이승만 정부의 태도는 재외국민은 한국인이 아니고 그저 전부 빨갱이일 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본인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타향살이가 힘들고 괴로웠다는 걸 알고 있었을테지만, 미국에서 고생도 모르고 자란 인간으로서 일본으로 본의 아니게 또는 생계문제로 건너간 사람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부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심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다급해졌다. 4차 한일회담 중단, 대일통상 중단조치(1959년 6월 15일), 미국에 중재요청,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 대책을 썼지만 소용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재일동포 북송저지를 위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11일 북한과 일본은 인도 캘커타에서 '북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간의 재일조선공민들의 귀국에 관한 협정'(일명 캘커타 협정)에 정식 조인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세 가지 재외동포정책을 시정연설(이범석 총리 대독)에서 발표했습니다. 모든 재일동포와 재만동포를 귀환시키겠다. 재외동포들을 교육 지원하겠다. 국내에 올 수 없는 모든 동포를 보호하겠다는 내용이었지요.”

김 전 위원은 “임시정부 시절에는 재외동포들에게 4분의 1에 달하는 대표성을 줬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당시 이 정부가 결코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지지 않은 동포정책을 계승하고 있었음을 설명한다.

“1950년대 초 이승만 정부 때 민단 단장을 비롯해서 재일동포사회의 주요임원들을 국회 '옵저버’로 두기도 했습니다. 비록 의결권은 없지만 참정권의 효시로 볼 수 있지요.”

1. 이승만 정부는 재외국민은 한국인이 아니고 그저 전부 빨갱이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2. 자유당정부때는 일본과 국교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일본이 북송(추방)하는 걸 외교적으로는 막을 수 없었지요. 그렇다고 손놓고 구경만 한 게 아닙니다.
3. 1960년 한해 5만여명이 북송되었으나 박정희장군께서 일어나시고 한일국교교섭이 시작되면서 62년 3천여명, 63년 2천여명으로 북송자가 확 줄어듭니다. 박통진리, 박통천국 불신지옥.


덧글

  • 로보 2013/12/06 21:20 # 답글

    저 북송선을 타고가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흥분되었다가 동해를 건너가면서 이상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자유의 박탈'을 느끼기 시작했달까요.
  • 無碍子 2013/12/07 18:07 #

    청진에 도착해서는 기절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노예생활하다가 지상락원으로 온 동포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모조리 거지꼴이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만슈타인 2013/12/06 21:22 # 답글

    이박사가 욕먹어도 재일동포 북송문제에서 욕먹기는 너무 좀 ㅣ;;;
  • 無碍子 2013/12/07 18:07 #

    KBS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궁굼이 2013/12/06 21:26 # 답글

    박통때 줄어든건 북송할 인원이 다 사라져서 그런거 아닐까요??
  • 無碍子 2013/12/07 18:07 #

    지금도 조총련이 얼마나 많은데요.
  • 검투사 2013/12/06 21:39 # 답글

    영화 <피와 뼈>(기타노 다케시 아저씨와 스즈키 쿄카 누님이 재일한국인으로 등장하는)에서도
    "형이 그 좋다던 북조선으로 간 뒤 연락이 끊겼다"는 주인공 마사오(기타노 다케시 아저씨가 맡은
    주인공 김준평의 차남...장남은 오다기리 조)의 의미심장한 대사가 나오죠. -ㅅ-

    아울러 김준평 또한 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막내아들과 함께 재산을 정리하여 "북한 정부에 바치고"
    북한에 정착했으나... 그 최후는... =_=; 리정희와 통진당 새퀴들만 "일본 영화의 주작질!"이라 할 만한...
  • 無碍子 2013/12/07 18:08 #

    원래 천국으로가면 이승과 연락이 끊기지 않습니까?????
  • virustotal 2013/12/06 22:47 # 답글

    뭔헛소리야 조총련 개새끼 할만한 글은 넘치는데

    뭐 일본 개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

    재일 북송 일본인 아내, 책 출간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의 북송 귀환사업 때 재일 한인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갔던 일본인 여성이 이달 초 일본에서 자서전을 펴냈습니다. 북한에서 보낸 40년의 잃어버린 세월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아직 북한에 남아 있는 다른 일본인 처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하는데요,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다는 그 소리만 안 했어도 정말 우리 (북한에) 아니갔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후회와 절망의 40년 이었습니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따라 엉거주춤 따라나선 길. 돌을 갓 넘은 딸 때문에 가족이 헤어질 수 없어서. 3년 안에 다시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는 조총련의 거짓 선전만 없었어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그 곳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난 4일 ‘북조선에서 처자로 지낸 40년’ 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낸 일흔 살 노인 사이토 히로코 씨의 고백입니다.

    “삼일 만에 청진 앞바다에 도착을 했단 말입니다. 그 때 배 위에서 조선쪽을 보니까, (그 곳) 사람들을 보는 순간 야 이건 잘못 왔구나 하는 게 벌써 느껴지더라구요. 옷 이랑 그런 것 보니까. 배 위에서 모두 야 이거 잘못 왔다 해서 막 우는 사람도 있고 되게 많았어요. 도로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 내리겠다고 막 야단치는 사람이 있어도 뭐 어쩌지 못하고.”

    함흥에 집결한 뒤 당국의 지시로 정착한 북부의 한 도시. 집과 동네, 일터 모두 실망과 후회의 연속이었지만 더 야속했던 건 평생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남편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마는 내 앞에서는 잘못왔다는 소리는 한 마디도 아니했어요. (허탈한 웃음소리) 나도 그렇지만은 거기 가면 할 수 없단 말입니다. 반대할 수도 없고 뭐 하지도 못하고 고저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뭐 제간이 없죠 뭐.”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는 조선 남성의 특성 때문인지 남편은 사과대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첫 3년은 일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는 사이토 씨. 하지만 북송사업을 잘하는 조총련 간부들의 일부 가족들만 일본 방문의 특혜를 누렸고 대부분의 처들은 불평도 하지 못한 채 북한 여성들의 삶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사이토 씨는 북한의 여성들이 참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조선에 있는 여자들이 불쌍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자기 손으로 아이들 먹이고 그래야 하니까. 정말 여자들이 정말 불쌍해요.”

    좌쪽에서 북송까서 이승만 개새끼 하고 싶지만

    조총련 개새끼 김일성 개새끼가 먼저 나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www.voakorea.com/content/japan-book-112021684/1337919.html

    일본단체, 북송 일본여성 귀국운동

    일본 시민단체들이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 부인들의 귀국 추진운동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의 본국 송환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운동이 함께 일어나고 있어 주목됩니다. 자세한 소식을 도쿄 김창원 기자를 연결해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북한은 재일 한인들에게 일본에서 더 이상 차별을 받으며 살지 말고 모두가 평등한 지상낙원으로 오라며 북송사업을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송선을 탔던 재일 한인들과 일본인 처들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비참한 생활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ㅋㅋㅋㅋ

    믿은것이 등신

    http://www.voakorea.com/content/japan-020112-138477329/1346272.html
  • 無碍子 2013/12/07 18:09 #

    믿는 놈이 등신.
    자업자득 자승자박.
  • Ladcin 2013/12/06 23:41 # 답글

    은근히 낚여서 북에 간 케이스가 많다고 하더군요
  • 無碍子 2013/12/07 18:10 #

    낚이는 놈도 등신이죠.
    지금도 지상락원 찾아 의거월북하시는 분이 있지않습니까?

    가야할 놈은 안가고 ............
  • Megane 2013/12/07 01:05 # 답글

    KBS다큐멘터리에서 듣고 본 대로 쓴 것인데요...
    이승만 정부는 재외국민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빨갱이로 규정했고, 북한은 일본의 제의에 대해 급격한 인구증가가 부담스러워 받으려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 일본은 결국 적십자사 총재 인사를 단행하면서까지 적십자사 본부에 일본내 거주 한인들의 상태를 교묘히 위장하기 시작했구요.
    뭐 어디까지나 북송사업 초반의 상황이려니 합니다만... 그리고 이미 1955년부터 일본정부는 재일한인들을 짐짝 취급했다는 내용도 있는터라 1959년 이전의, 상황이 바뀌기 전까지의 상황이 그렇다는 거겠죠.
    그리고 이승만의 대비책이란 것도 4년이나 지난 이후에 부랴부랴 준비한 것도 사실이구요.
    정말 이승만이 의지가 있었다면 광복 직후에 국민들을 찾아왔어야 정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저도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만, 4년 동안 은밀하게 북한과 밀담을 나누었던 일본의 행위는 괘씸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4년이 지나서야 대책을 세웠다는 것도 방송에서의 언급을 조금은 신뢰하게 만드는 걸로 보여서 한 말입니다만...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꼭 사고가 터져야나 대책을 세우는 사후약방문식 처방이 많다보니 이런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실제로 초기 경제성장이나 상황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우월했던 시절이 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죠.
    그리고 본문의 2번 문항말인데요... 어차피 아무 것도 안 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왔으니 뭐... 공작원들은 무슨죄랍니까... 그리고 다시금 지적하다시피, 미리 좀 대책을 세워주셨으면 저런 일이 벌어질 일도 없었겠지요. 그리고 1번 문항은 총 9만5천여명이 강제로 북한에 보내진 걸로 나와있다고 하더군요. 박통때 인원이 줄어든 건 이미 그 이전에 북한으로 보내진 교포들이 많았다는 걸 말하는 걸겁니다.
  • 음... 2013/12/07 02:49 # 삭제

    먹여 살리느라 바쁜데 재외국민까지 챙기긴 어렵지 않았을까요? 현실적으로

    국교도 없었다니까...재외국민이 핍박 받은 건 일본 입장에서여 원폭 터지기 전까진 식민지배하던 민족이었으니까 같잖게 보이고 그랬겠죠.
  • jklin 2013/12/07 10:54 #

    지금과 1950년대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선, 재일교포중에서는 정말로 빨갱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는요. 일본에서 조총련계가 쇠퇴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최근의 일입니다. 그 전에는 일본의 한국인들은 거진 다 조총련계 학교에 다니고 조총련계 조직에 속했다고 봐도 됩니다. 치마저고리가 여고생 교복인 재일교포 학교, 그게 일본의 전형적인 한인 청소년들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폐허를 복구중인 한국이 입국하는 재일교포들의 전향 정도를 하나하나 가려볼만한 물적 인적 여유가 있었을까요?

    두번째, 일본은 오래전부터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해 왔습니다. 솔직히 괘씸하지요. 하지만 1960년대의 한국의 국력요? 일본과 국교도 없었고 일본에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할만한 파워도 없었습니다. 그게 그 당시 현실이었습니다.

    또, 북한은 오래전부터 재일교포 북송을 체제선전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실제 또 거기 속아 넘어간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납니다. 만경봉호가 괜히 유명하겠습니까?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냐면, 이 북송사업에 한민족과는 하등 상관없는 진성 일본인이 북조로 간 케이스도 제법 됩니다. 또, 그것때문에 일본 정부가 지금도 북조의 일본인 납치북송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구요. 중요한 것은, 이런 북조의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이승만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은 없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우리의 사후약방문식 대처는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1970년대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그나마라도 신경쓸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습니다. 1950, 60년대 이승만의 한국과 1970년대 이후 박정희의 한국은 넘사벽의 차이가 있습니다.

  • 無碍子 2013/12/07 18:14 #

    광복직후 얼마든지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자의로 눌러앉은 사람들입니다.

    결과가 막장이었습니다만, 전부 빨개이로 치부해서 방관한 것은 아닙니다.

    약 10여만이 북송되었지만 남은 조총련은 그보다 더 많았습니다. 갈사람이 없어 못간게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KBS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는 걸 표기하겠습니다.)
  • cold 2013/12/07 03:33 # 삭제 답글

    1970년 이전까진 남한보다 북한이 더 잘살았으니 북한이 어떤나라인지 잘 몰랐으므로 북한을 선택하는게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어떤 환상이 그때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나요 공산권을 등에 업은 조총련이 아무런 견제도 안받고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이걸 이승만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이승만에게 너무 불리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해방된지 몇년이나 됐다고 원수의 나라에 직접 갑니까 식민통지의 문제 ,이승만라인, 독도 대마도 문제 때문에 서로간에 얼굴을 붉힐텐데
    능력의 부재라고 봐야죠 그게 잘못됐다면 잘못된거지만 그리고 그때당시 지금 우리가 이승만을 비판할때 그런걸 해낼 수 있는 제3의 인물이 있는지도 의심되고요 오히려 좌파에서 빨고 있는 여운형이나 김구 등등의 인사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오히려 북송을 권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 無碍子 2013/12/07 18:16 #

    국교가 없었고, 또 수교국 이라하더라도 대한민국적이 아나라면 영사관할을 주장할 수 없지않습니까?
  • jklin 2013/12/07 11:12 # 답글

    안그래도 반일감정에 편승한 이승만 까대기 글(?)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무애자님이 반론 잘 해 주셨네요. 박정희 이상으로 이승만박사에 대한 흑색선전 역시 이제 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다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이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점은 반드시 외웠지 싶은데... 이게 이승만 박사가 한국에 근대 시장경제의 토대를 놓은 것이라는 점까지는 안가르치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리고 이승만 박사가 아니었으면 이미 우리는 공산화된지 오래일겁니다. 이승만 박사가 반공주의자였고 서구 시장경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에 현재의 남한의 토대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겁니다. 진짜 이승만은 국부에요. 국부.

    이승만이 해방 후 친일분자들을 처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썰들이 많은데 이것 역시 선동입니다. 이미 친일파 관련 과거사 문제는 노무현때 결론이 났죠. 과거사 위원회가 활동을 해 보니 그 당시 신기남씨 부친인가 조부께서 무슨 짓거리를 하셨더라구요? 그네들이 주장했던 일제에 부화뇌동했던 역적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은 이미 개박살이 난거죠. 그 당시 친일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과거행적에 의한 심판보다는 건국 후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도로 친일/반일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이미 10년 전 정권에서 다 판명난 일입니다.

    이승만 박사의 경우 박사도 그냥 박사가 아니죠. 일류중의 초일류인 프린스턴에서 그것도 정치학으로 박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박사논문은 국제 관계에 대한 연구였구요. 이런 초 일류 인재를 초대 대통령으로 맞이했던 대한민국은 사실 정말 행운이었죠.

    게다가 이승만 박사의 경우 대미 외교술에 아주 능수능란했죠. 지금 미국 입장에서보면 핵을 든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몇 배로 다루기 힘든 파트너였을겁니다. 적성국이 아니니 내치치도 못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얼토당토않는 조약이 비준되고 625 전쟁 중 반공포로를 석방해 버리는 이런 골까는(!) 행동은 이승만이 아니면 꿈도 못꾸었을 그런 신의 한수였습니다.

    이승만 사사오입 개헌론 독재 어쩌고 그러는데... 이것 역시 깊이 들어가보면 흑색선전이 많습니다. 그 당시 한국의 상황 --- 아무리 미군이 있다고 하지만 북조가 밀고 내려오면 그냥 끝장날 수 밖에 없는 ---에서 강력한 대통령의 3선 개헌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 그것 역시 배부른 소리입니다. 게다가 이승만의 경우는 419가 일어나자 두말않고 자진하야 했습니다. 외국의 다른 독재자들은 어떻던가요? 이런 경우 군대 동원해서 일단 쓸어버리는 게 보통 아니던가요?

    그런 까닭에 이승만은 사실 국부로 추앙받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 그런 위인입니다. 대한민국의 초석을 저렇게 단단히 놓을 수 있었던 사람, 이승만 말고 누가 있었을까요? 김구 같으면 아마도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술에 바로 넘어갔을 것이고...


  • 이박사 2013/12/07 10:21 # 삭제

    이승만이 무리하게 3선을 한 덕분에 도시에서는 야권이 강한 성향이 두드러지고 자유당 세력에서도 야권으로 대거 이탈하고 정치적인 정당성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나요. 뿐만 아니라 친일 야당이 반 이승만으로 결집해서 세를 불리는 결과도 가져왔지요.

    3선 이후 시대착오적 외교정책 덕분에 미국과의 갈등도 지속되고, 지원금은 끊기고;; 이승만 정권 말기에는 그의 나이 때문에 가면 주변 인물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정치 개입까지 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지요.

    사사오입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말고, 일찌감치 그의 후계자를 육성해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도 훨씬 좋아졌을 텐데요.
  • jklin 2013/12/07 11:11 #

    이박사/ 그렇긴해요. 저도 이승만박사가 정치인으로서 잘했다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3선 개헌의 경우 위기상황의 한국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충분히 이성적으로 고려해 볼만한 옵션이었다는 점은 이제 감안하자는 것이죠. 결국 이것 역시 국회 찬반투표에서 사사오입이라는 절차적 문제가 419로 이어지긴 했습니다만.

    사실 이건 이후의 박정희 유신과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개헌을 이승만처럼 국회를 통해서 한 것이 아니고 국민투표를 통해 했거든요. 말 그대로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를 했는데 뭐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죠. 왜 그 당시 419와 삼선개헌저지의 경험이 있던 그 당시 유권자들이 이 때는 왜 유신을 찬성하게 되었는지 역시 비슷한 측면에서 그 필요성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제 경우는 이승만 박사가 후계를 육성하는 것보다 야당에서 괜찮은 지도자가 나오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다고 봅니다. 그 당시에 야당 출신으로 걸출한 인물이 이승만 박사에 이어 차별된 구도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갔다면 516 같은 것이 일어날 일이 있었겠습니까.
  • 無碍子 2013/12/07 18:18 #

    자유당독재나 권부의 부패와는 별도로 조총련 북송에 우리정부가 방관하지 않았으며 또 교포 모두를 빨갱이 취급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로 보입니다.
  • 조용히하세욧 2013/12/07 15:04 # 삭제 답글

    신동아 과거기사를 검색해보면 "조용히 하세요"라는 개시/종료명령으로 이루어진 경찰예비생들의 대일침투작전이 나와있습니다. do it secretly하라는 것인지 be quiet이라는 것인지 중의적인 명령문이라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물론 그 기사 읽어보시면 완전 병크로 끝났지만. 해방후 오랫동안 남조선에서는 일본의 협조자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남한정세와 정보가 자발적 또는 일본측의 매수로 상당 수준으로 일본정보기관측에서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이는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재일교포 단체인 민단의 초창기 역사에서도 북송저지 투쟁, 니가타 적십자사 폭파기도 등 여러 흑역사가 존재합니다. 민단대 총련의 다이다이 매치는 기본이고.....

    이승만 정권을 친일이라고 하는 눈깔이 삔 종자들은 자료조사를 하던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만 본인이 재일교포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 점도 있고 실제 지금 마루한 회장님처럼 해방후 혼란을 피해 도일한 사람도 많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대일청구권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관계로 재일교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접근이 제한되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겁니다. 내팽게친 측면도 없진 않지만 말이죠.
  • 無碍子 2013/12/07 18:19 #

    민단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정부고 막장이었지만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고요.
  • Megane 2013/12/07 18:46 # 답글

    확실히 시야를 넓게 볼 필요가 있는 사건이었군요.
    이래저래 유익한 정보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글 아래 언급된 글들은 제가 접해보지 못했던 기사들이라 좀 더 심사숙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통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에 못 오게 한 걸 보면 뭔가 계기가 있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저도 이승만 박사가 친일파였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그런데 제가 KBS다큐멘터리를 본 바대로 느낀 점은 이승만 정권이 완전히 안면몰수하고 외면한 듯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 사실인가 궁금해져서 올린 글이었습니다만, 의외로 현실적인 실마리가 보이니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뭐 KBS가 신뢰성이나 객관성에서 1위 언론이라고 하도 그러길래 한 번 덥석 물어봤는데 역시나 함정이 있었군요. 이건 아마도 제 머리속에서부터 잘 정리해서 기억해야 할 거 같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3/12/07 20:38 # 삭제 답글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국민방위군 사건이나 서울에서 도망친 것(철수도 아니고 도망입니다. 도망)을 알게되니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하는 작자들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더군요.
  • jklin 2013/12/08 10:49 #

    아오. 이승만 서울 도망요? 아직도 이런 선동질에 속고 살아요? 진짜. 링크 참고합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tude_a&logNo=130832458

  • 더러운 세상 2016/07/17 16:14 # 삭제 답글

    재일교포들이 북송했을 당시 1959년은 당연히 우리나라는 일본과 국교가 아얘 없었던때이고 더군다나 이승만정권시절의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국력이 약했던시절이었으니 짐작이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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