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의 서주학살 2013/11/16 14:15 by 無碍子

조조가 야인에서 일어나 반동탁 연합에 참가하고 원소로부터 동군태수에 임명되어 청주 황건적을 격파 연주를 차지하여 기반을 잡을 때 부친 조숭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시간 순으로 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초평 원년(190년) 반동탁 연합군 출범
초평 2년(191년) 원소(袁紹) 기주를 차지, 발해태수직을 공손범(公孫範)에게 이양. 조조(曹操) 동군접수. 공손찬 발해 황건적 격파, 청주 장악.
초평 3년(192년) 공손찬 계교에서 원소와 대치. 엄강(嚴綱)을 기주(冀州), 전해(田楷)를 청주(靑州), 단경(單經)을 연주(兗州) 자사에 임명. 유비(劉備)를 고당(高唐)에, 단경(單經)을 평원(平原)에, 도겸(陶謙)을 발간(發干)에 주둔시켜 원소를 압박.
조조 청주 황건적 접수. 유비, 단경, 도겸을 격파. 연주 평정.
초평 4년(193년) 조조 진류 봉구에서 원술격파. 원술 구강으로 도망.
서주목 도겸 태산군(泰山郡)침공 화현과 비현 함락, 임성국 침략, 조조 반격. 조조의 부친 조숭 일가 몰살. 조조의 1차 서주침공.
홍평 원년(194) 조조 연주로 귀환. 조조 서주 재침공, 동해까지 진출 서주 대학살. 담(郯)성에서 도겸 유비 연합군과 대치중 여포 연주차지. 조조 회군. 도겸이 죽고 유비가 서주를 차지.

興平元年,前太尉曹嵩及子德,從琅邪入太山,劭遣兵迎之,未到,而徐州牧陶謙,素怨嵩子操,數擊之,乃使輕騎追嵩、德,並殺之於郡界。
後漢書 應劭傳


興平元年春,太祖自徐州還,初,太祖父嵩去官後還譙,董卓之亂,避難琅邪,為陶謙所害,故太祖志在復讎東伐。
世語曰:嵩在泰山華縣。太祖令泰山太守應劭送家詣兖州,劭兵未至,陶謙密遣數千騎掩捕。嵩家以為劭迎,不設備。謙兵至,殺太祖弟德於門中。嵩懼,穿後垣,先出其妾,妾肥,不時得出;嵩逃于厠,與妾俱被害,闔門皆死。劭懼,棄官赴袁紹。後太祖定兾州,劭時已死。 
韋曜吳書曰:太祖迎嵩,輜重百餘兩。陶謙遣都尉張闓將騎二百衞送,闓於泰山華、費間殺嵩,取財物,因奔淮南。太祖歸咎於陶謙,故伐之。夏,使荀彧、程昱守鄄城,復征陶謙,拔五城,遂略地至東海。還過郯,謙將曹豹與劉備屯郯東,要太祖。太祖擊破之,遂攻拔襄賁,所過多所殘戮。孫盛曰:夫伐罪弔民,古之令軌;罪謙之由,而殘其屬部,過矣。
三國志 武帝紀


初平四年,太祖征謙,攻拔十餘城,至彭城大戰。謙兵敗走,死者萬數,泗水為之不流。謙退守剡。太祖以糧少引軍還。吳書曰:曹公父於泰山被殺,歸咎於謙。
三國志 陶謙傳


1. 합종연횡
반동탁연합군이 깃발을 올리고 동탁이 천자를 장안으로 옮기자 중원은 일시에 권력의 진공상태가 됩니다. 이에 대대적인 합종연횡이 일어나 중국은 원소-조조-유표 세력과 원술-도겸-공손찬 세력으로 양분됩니다.

2. 도겸의 연주침공
공손찬이 원소와 대치하고, 청주 황건적은 연주로 들어오는 혼란 중에 원술은 진류를 침공하고 도겸은 무려 동군 발간에 이릅니다. 발간은 조조의 본거지 동군의 속현입니다.
이들은 조조에 의해 모조리 소탕됩니다. 이 전투는 원소연합과 원술연합 간의 국제전으로 봐야 합니다.

3. 조숭이 죽은 곳은 낭야가 아니라 태산으로 봅니다.
낭야는 서주의 속군으로 저 유명한 제갈량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조숭이 낭야로 피란하고 응소가 조조의 명으로 영접하러 갔지만 도겸의 수하가 먼저 도착해 죽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태산에 은거하던 중 도겸의 수하에게 살해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4. 후과
도겸이 죽은 후 유비가 서주를 인수하는데, 유비는 원술이 아닌 원소에게 붙어버립니다. 당연히 원술에게 응징당하고 그 틈에 여포가 서주를 삼키는데...
이 후과가 뭐냐면 원술(회남)-도겸(서주)-전해(청주)-공손찬(유주)의 연계가 서주의 이탈로 단절됩니다. 그 결과 공손찬은 원소에게, 원술은 조조에게 각개격파 당해 소멸되고 원소-조조-유표연합군이 승리합니다.
그러나 유비는 원소에게 붙은 댓가로 약속의 땅 형주에 안착.

관련글 북방의 강자 공손찬의 몰락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구글검색창


www http://soakaeofh.egloos.com/

무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