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생활 수준높은 토론에 가르침을 청하기도 무섭지만 2013/11/01 13:13 by 無碍子

강호제현의 고담준론을 보고 많이 배웠음을 먼저 감사드리면서 가르침을 청합니다.

1.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옹호하여, 양반-지주 계급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거하지 않았고 따라서 신분의식도 남아있었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양반-지주 계급이 전적으로 와해되었고 신분의식 또한 제거되었다.”
2. 북한의 인구증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3. 공출과 배급으로 상징되는 총동원체제 아래서 생활수준이 하락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연구 상의 결론으로나 반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우리 사회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는가?
(이미지는 본문과 무관함)


1. 양반-지주 계급이라는 표현은 양반이면서 지주라는 건지요?
양반이라는 신분계급과 지주라는 경제계급은 같이 가지 않습니다. 양반가에서도 장남에게 재산을 몰빵하는 경우가 많아 형은 지주이고 아우는 자작농인 집안도 많았습니다. 평민이 돈을벌어 광작을 하거나 일부를 소작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쌍놈지주 혹은 평민지주는 논외로 하십니까?

폐쇄된 농촌에서는 부모조상들을 다 잘알기에 신분은 상속됩니다. 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로 쌍놈출신들도 아는 사람이 없는 도회지로 나가 양반행세를 하는 게 가능해 졌습니다. 그러므로 신분질서가 사라진 것은 산업화의 공이 아닐까요?

2. 북한의 인구증가
1945년의 조선반도와 지금의 북한은 많이 다릅니다. 왜정시기 대부분은 까막눈이었으나 지금은 고등학교까지 가르친다고 합니다. 의사의 숫자역시 엄청나게 늘었다고 봅니다.
물론 배가 불러야 인구가 늘어납니다. 땅은 부양할 인구보다 더 많이 늘어나면 도태시킵니다.
같은 서울이라고 강남의 한 평과 봉천동의 한 평이 부양하는 인구는 같지 않습니다. (땅 뿐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부양하기도 합니다. 개방경제에서는 교역도 중요하고요.)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번식을 못하는 가임기 남녀들이 득시글거립니다. 부양능력저하는 당연히 인구증가저하로 이어집니다.
북한에서의 인구증가는 동구권 붕괴이전에 원조에 의해 땅이 부양할 인구보다 더 많이 증가했고 동구권 붕괴로 과잉인구가 조절되는 게 소위 고난의 행군기간이라고 봅니다.

3. 왜정시기 공출은 거저 빼앗아가는 게 아니었고 배급역시 그냥 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추곡수매 하곡수매 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친일파 이승엽이 역원(役員)으로 있던 식량영단이 수매와 분배를 관리하던 기구입니다.
“공출과 배급으로 상징되는 총동원체제”는 강제공출제도 이후로 보면 됩니까?

4.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우리 사회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습니다.
1961년 라디오보급은 1백만대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에는 1백육십만 그리고 TV가 4십여만대나 보급되었습니다.
전화보급률은 1965년 1백명당 0.62대에서 1970년 1.8대로 비약적인 증가를 이루었습니다.
1967년 189개 시읍면에 보건소 보건지소가 있었는데 1970년에는 192개 보건소와 1천463개 보건지소로 늘었습니다. 물론 공의가 모두 배치된 게 아니고 간호사가 배치된 곳이 많았습니다만 의료환경이 개선된 건 확실합니다.
이 정도면 우리사회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습니까?

덧글

  • 지나가던과객 2013/11/01 13:25 # 삭제 답글

    1. 양반-지주? 어째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군요. 국사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저런 얘기가 안나올텐데 말입니다.

    2. 북한의 인구 증가는 만주나 중국에 있던 재외동포가 해방이 되니 들어온 것도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 無碍子 2013/11/01 18:29 #

    1. 공주 대전의 대지주는 관노출신 이었습니다.

    2. 아마 해방후에서 휴전까지 이동이 심한 기간은 빼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생각 합니다.
  • 2013/11/01 14: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01 18: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나츠메 2013/11/01 18:36 # 답글

    1-1. '전적으로 와해', '제거' 등의 어휘를 운운한 이상 저 명제는 이미 가설이나 이론이 아닌 망상의 범주에 속한 궤변일 뿐입니다. 정적이고 유기적인 정신세계 즉 사회에 퍼진 인식의 변환과 소멸을 명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사후적으로 사회변동 이후에 그 변이의 전후를 구조적`대략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 뿐.

    저리 확신에 가득찬 논조로 글을 씨부리는 걸 보면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있을텐데, 그 도구적 방법을 밝힌다면 가히 사회학계의 초신성으로 거인의 반열에 오를 듯.

    그.러.나 현실은???ㅋㅋㅋㅋㅋ


    1-2. 일제가 식민지 지주를 옹호한 것과 양반(제)을 옹호한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명제임에도 이를 구분 못 하고 있음. 더구나 저 명제는 A->B->C의 서술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C가 A의 종속변수로서 A가 C의 원인이 된다는 말임.

    즉 일제가 지주제를 온존시켜 신분의식이 연속되었다는 주장. 그러나 이 명제가 성립하려면 일제시대의 지주제도와 신분의식 간 강한 상관관계가 규명되어야 함. 물론 변수 간 상관관계와 서술형식 등등은 찜쪄먹고 내가 주장하면 무조건 옳다는 것이 망상역사의 한결같은 주장이심.ㅋㅋㅋ
  • 無碍子 2013/11/01 18:40 #

    제일 궁금하고 듣고싶은 답변은 노비출신 지주와 그 전답을 소작하는 양반출신 소작인 간의 계급적 우월성 입니다.
  • i핀i 2013/11/01 20:24 # 답글

    3번을 읽고보니 거기 결론은 전쟁말기 자료가 부족하지만 일본내에서도 생활수준 저하가 심가한상황에서 식민지 사정이 좋아질리없다고 생각 하시고 그당시 경험이 일반적인 인식으로 형성됬다고 하시네요
  • i핀i 2013/11/01 20:39 #

    글고 전쟁막판이면 일본내부도 막장이었조 일제시대 전체를 보고 총통계와 슬슬 이기는게 불가능 해서 발악만 남은 부분을 같이 봐야 하는지는 생각해 봐야조
    근대 결국 3번은 뭘 물어보시는지 모르겠내요
  • 지나가던과객 2013/11/02 10:13 # 삭제 답글

    양반-지주란 말이 그때 당시에 널리 인정이 됬다면 '호질'이란 소설이 나올 일이 없었겠죠.
    그러니 1번의 내용은 국사와 국어 공부를 게을리 했다는 결론이 납니다. qed!!
  • 零丁洋 2013/11/02 10:34 # 답글

    6,70년대는 고도성장기라기 보다 실질적인 근대화시기라고 봅니다. 그 이전은 근대문화에 나름 노출된 시기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근대화의 근거를 60년대 이전에서 찾아 보았자 그저 설명을 위한 설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우리 보다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했다면 60년대 이전에서 찾을 것이 뭐가 있는지 궁급합니다. 딱하나 있다면 대한민국정부 수립 정도? 이 때부터 주체적으로 뭐라도 시도해 볼 가능성이 생겼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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