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유비와 손권의 형주 소유권 공방 2013/10/19 13:21 by 無碍子

적벽전이후 유비집단이 호남4군을 공취하여 기틀을 다지는 장면이 다이나믹하게 표현됩니다. 황충과 위연이 유비 휘하로 들어온 것도 이때이고요.
근데 손권은 마치 자기 땅 인 것처럼 달라고 조릅니다. 안준다고 화도 내고요. 유비가 피 흘려 싸워 장만한 땅인데도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적벽전 이후 상황을 돌아봅니다.

吳錄曰:備謂瑜云:「仁守江陵城,城中糧多,足為疾害。使張益德將千人隨卿,卿分二千人追我,相為從夏水入截仁後,仁聞吾入必走。」瑜以二千人益之。

瑜即遣甘寧前據夷陵。仁分兵騎別攻圍寧。寧告急於瑜。瑜用呂蒙計,留凌統以守其後,身與蒙上救寧。寧圍旣解,乃渡屯北岸,克期大戰。瑜親跨馬擽陣,會流矢中右脅,瘡甚,便還。後仁聞瑜卧未起,勒兵就陣。瑜乃自興,案行軍營,激揚吏士,仁由是遂退
주유전周瑜傳

劉備與周瑜圍曹仁於江陵,別遣關羽絕北道。通率衆擊之,下馬拔鹿角入圍,且戰且前,以迎仁軍,勇冠諸將。
이통전李通傳

江表傳曰 : 周瑜爲南郡太守, 分南岸地以給備. 備別立營於油江口, 改名爲公安. 劉表吏士見從北軍, 多叛來投備. 備以瑜所給地少, 不足以安民, 復從權借荊州數郡.

先主表琦爲荊州刺史, 又南征四郡. 武陵太守金旋、長沙太守韓玄、桂陽太守趙範、零陵太守劉度皆降.
선주전先主傳


강릉공방전은 이렇게 진행 된 것 같습니다. 주유 유비 연합군은 조조를 추격하여 강릉에 이릅니다. 먼저 주유는 감녕과 함께 이릉을 취해 강남북을 단절시키고, 관우에게 북쪽방면을 막게 하고 주유 자신은 장비와 함께 강릉을 공격해 함락시킵니다.

선주전 본전에는 호남4군을 유비가 공취한 것으로 표기하지만 강표전을 빌어 몇 개 군을 빌렸다고 합니다. 호남4군은 이때 유비가 손권으로부터 빌린 땅이라는 말이되죠.
그리고 손권은 유비집단이 호남에 안착하기도 전에 지 마음대로 장사군을 갈라 한창군을 만들어 노숙을 태수로 임명합니다. 마치 자기 땅처럼요. 유비는 항의도 하지 않아 손권이 주인 같습니다.

그 이유는 주유가 강릉을 공격 할 때 손권은 유비에게 호남을 공취시켰고 손권의 지휘를 받아 주유에게서 빌린 군대로 고립된 무릉, 장사, 계양, 영릉을 거저먹기로 취한 후에는 이 땅을 임대하여 다스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4군을 공취한 것은 유비이지만 소유권은 손권에게 귀속되지요.

덧글

  • bergi10 2013/10/19 14:59 #

    동상이몽.

    유비와 손권은 애초부터 다른 꿈을 꾸었던 셈이로군요.
  • 無碍子 2013/10/19 19:18 #

    서로를 이용한 것으로 봅니다.
  • 공손연 2013/10/19 15:00 # 삭제

    애초에 병력도 세력도 없는 유비가 형주를 장악하는데 손권이 용납하지 않으면 안될일이죠.
  • 無碍子 2013/10/19 19:20 #

    유비는 손권의 스폰을 받아 스타가 된 것 같습니다.
  • 무목 2013/10/21 17:20 # 삭제

    병력이 없진 않았고 세력도 완전히 패망하진 않았습니다.
    적벽대전 때 손권이 본거지 지키느라 빼둔 병력이 있었다고는 해도
    참전 병력이 유비군 2만, 손권군 3만 정도로 보니까요.

    물론 손권과 동맹을 맺지 않았다면 폭삭 주저앉았겠지만...
    유비에게 손권이 필요했던만큼 손권에게도 유비는 필요했죠.
  • 하늘색토끼 2013/10/19 16:58 #

    쪼다 유비가 형주를 잡아먹을수 있던 것은 재갈량덕분이죠
  • 無碍子 2013/10/19 19:20 #

    손권 덕분이죠.
  • ㄷㄷ 2013/10/19 17:39 # 삭제

    형주 얻고도 아무것도 못했던 손권은 그냥 유비에게 주고 위나라 치는거 구경이나 했으면 망하는게 더 느려졌을듯
  • 無碍子 2013/10/19 19:22 #

    아마도요.

    근데 호남의 넓은 땅이 너무 탐 나거든요.
  • 킹오파 2013/10/20 00:23 #

    삼국지는 잘 모르겠고 손권이 유비를 통해 조조를 견제하려는 도구로 삼으려고 했던거 같은데 유비를 너무 하찮게 본 거임. 유비는 손권이 생각한 급의 인물이 아니었으니... 손권에 뒤통수를 치고 결국 빡친 손권은 후에 조조와 손을 잡는걸 생각하면 뒤통수 치는거 안 좋다...라는 교훈을 얻게 됨...
  • 零丁洋 2013/10/20 10:49 #

    원래 유표와 손견이 원수지간 였고 형주의 잔여 세력이 유비에 의지하고 있고  주적인 조조가 건제한 상황에서 호남을 차지하는 것은 오가 형주까지 직접 담당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함으로 동맹의 힘을 보강해 주고자 도운 것이 아닌가요. 또한 당시에 유비 손권의 동맹을 강력히 지지하는 노숙과 제갈량이 양 진영에 있어 가능해 보입니다. 나중에 제갈량이 오와의 동맹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 봐도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무목 2013/10/20 23:02 # 삭제

    유비가 빌린 곳은 공안을 포함한 강릉 일대입니다.

    주유전인가 어딘가 생각이 잘 안나는데 땅이 좁아 세력을 이루기 힘들다고 해서 남군 일대를 빌려 잘라서 공안에 치소를 마련했다고 하거든요.

    삼국지 연의 때문에 형남4군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거긴 땅만 더럽게 넓을뿐 제대로 개척되지도 않고 인구도 별로 없는 땅입니다.
    무릉이야 무릉만이로 대비되는 이민족들이 넓게 분포한 땅이고 영릉, 계양도 그닥 발전한 땅은 아니었죠.

    적벽대전 당시에 주유군 3만, 유비군 2만 정도로 참전했을 정도로 유비군은 유명무실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 無碍子 2013/10/21 19:37 #

    江表傳曰 : 周瑜爲南郡太守, 分南岸地以給備. 備別立營於油江口, 改名爲公安. 劉表吏士見從北軍, 多叛來投備. 備以瑜所給地少, 不足以安民, 復從權借荊州數郡. - 선주전
  • 무목 2013/10/21 20:17 # 삭제

    중국어 번역은 못해서 한자만 쭉 살펴봤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정식 번역이 아니라 때려맞춰 이해한거라서 맞는지 모르겠군요.

    공안에 머문 다음에 찾아온 사람이 많아서 땅이 작아 부족하니 형주의 몇개 군을 빌렸다는거 같은데...

    근데 원래 원문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스타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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