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생활 오늘은 날궃이로 零丁洋선생님을 초대 합니다. 2013/09/29 11:17 by 無碍子

이글스핀//이것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 한국경제론에 나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들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있나요?

공업에 주원료는 농업에서 옵니다. 경제계발전에 대한민국의 국토는 부족하지만 의와 식을 공급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는 사라지고 식만 남아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들었던 목화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론 생산량은 증가합니다. 경지정리나 화학비료의 보급 등이 이에 역할을 하죠.

불균등성장이라는게 뭔가요? 특정 부분을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 아닌가요? 농업의 상대적 위축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농업선진화를 말하는 이유가 뭔가고 상대적인 지체가 심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좀더 체계적으로 표현할 능력도 부족해 경제 성장기 한국 농업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으나 제 생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내요. 물론 통계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좀더 내부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군요.

1. 본격적인 경제 성장기 이전의 농촌은 거의 자급자족 상황이라면 보면 될 것입니다. 팔것도 없지만 살것도 없었죠. 풍족하지 않았으나 부족하지도 않았죠.(주기적인 춘궁기 포함)

2.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은 자본주의경제에 편입되기 시작합니다. 농산물은 상품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상품이 시장에서 그렇게 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얻은 이익은 겨우 가족이 생활할 수준에 머물어 자본축적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생산수단을 공업에 의존하게 되는데 완전 경쟁 상태인 농업에 비해 독과점을 형성한 공업은 훨씬 유리한 거래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농촌의 착취로 이어집니다. 이후 기계화와 상업적 농업의 보급과 도시 생활 형태의 농촌 침투는 농촌에 더욱 자금을 필요로하게 하나 자본 축적을 이루지 못한 농촌은 이 문제를 부채로 해결합니다.

3. 지금 농촌은 정부에 빨대를 꽂고 농협의 융자로 버티고 있는 중병환자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4.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축적이 불가능했던 것은 공업 중심 외자, 수출경제 정책의 결과입니다.

5. 소련처럼 부농을 강제로 추방하고 부를 강탈한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우리 산업화는 농촌에 빛 지고 있습니다.

- 공업의 원료가 전적으로 농업에서 오는 것은 아니나 상당량이 농업에서 오는 것은 사실 아닌가요? 우리가 입고 있는 의류는 목화나 양모가 원료일 것이고 고무나 종이, 가구에 필요한 목재, 각종 의약품의 원료, 제과 제빵 원료 등등 많이 있지 않나요? 대부분 소모가 빨라 실제 내구성있는 광업에서 얻은 원료 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① 『한국경제론』이 뭘 의미하는지 모릅니다만. “한국경제론에 나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라고 말씀하시고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좀더 체계적으로 표현할 능력도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국경제론을 인용하시면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①-1. “본격적인 경제 성장기 이전의 농촌은 ~ 풍족하지 않았으나 부족하지도 않았죠(주기적인 춘궁기 포함)” 부족했습니다. 아주많이요. 춘궁기는 매년 찾아왔고 춘궁기만 되면 절량농이라고해서 농민들도 굶주렸습니다.

①-2.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은 자본주의경제에 편입되기 시작 ~ 이익은 겨우 가족이 생활할 수준에 머물어 자본축적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아니죠. 1974년부터는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의 소득을 앞지릅니다.
①-3. “지금 농촌은 ~ 중병환자” 중환이 아니라 노환입니다. 농촌고령화로 환갑전이면 청년 대접받습니다. 70노인이 술심부름하는 농촌의 노인정이 흔합니다.

①-4.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축적이 불가능했던 것은 공업 중심 외자, 수출경제 정책의 결과”라고 하셨는데 공업의 원료가 농업에서 나온다는 말과 배치되지 않습니까?

①-5. “우리 산업화는 농촌에 빚지고 있습니다.” 글쎄요. 산업화로 비료 농약 농기계가 공급되고 고속도로로 시장 접근성이 좋아졌습니다. 도시주민의 소득증가로 고급농산물의 수요가 늘어났고요.

② “우리가 입고 있는 의류는 목화나 양모가 원료일 것이고 고무나 종이, 가구에 필요한 목재, 각종 의약품의 원료, 제과 제빵 원료 등등 많이 있지 않나요?” 헐~~ 지금 내가 입은 옷은 빤수를 제외하고는 다 석유로 만든 옷이네요. 그리고 목재는 농산물이 아니라 임산물이지 말입니다.

③ “농업의 상대적 위축은 당연한 것” 농업의 위축은 정책 탓이 아니라 젊은이의 농업기피에 의한 고령화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농업은 발전했습니다. 개발이전의 소출과 지금의 소출은 비교가 안됩니다. 비닐하우스 트랙터 ....... 무시하지마세요.

※ 한번 올렸던 글을 날궃이용으로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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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글스핀 2013/09/29 12:00 # 답글

  • Miles Prower 2013/09/29 12:41 # 답글

    아이고, 우리 영정양 슨상님께서 한국경제사 수업을 하고 있盧??
  • 로보 2013/09/29 12:54 # 답글

    영정양의 종속이론 지겹네요.
  • 코로로 2013/09/29 15:55 # 답글

    만약 교과서에서 저따위로 가르친다면 왜곡 교육이니 그 교과서 바꿔야지.
  • 스탠 마쉬 2013/09/29 15:56 # 답글

    ^.^
  • 이글스핀 2013/09/29 17:22 #

    그런데 저 양반 야후에서 왔다던데 ㅋㅋㅋ
    http://dontnomuch.egloos.com/3039077#1953523
  • 零丁洋 2013/09/29 20:08 # 답글

    이규동씨가 쓴 1974년 3월 23일자 중앙일보 사설의 일부로 대신하겠습니다.

    농가교역조건이 지난 1년동안 매우 악화되어 농가수지는 72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국제 인플레의 파급과 유류파동으로 일반물가가 크게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곡가정책을 집행해 온 그 동안의 정책 때문에 농가의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였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국산양곡보다 비싸진 식량을 외국에서 수입해 보아댔자 그것이 저임금정책을 이제 뒷받침할 수 없다.
    ................<후략>.........................
  • 無碍子 2013/09/29 22:10 #

    1972년산부터 본격적으로 협의의 이중미가제가 시작되었는데 그 후 가격격차는 점점 확대되어 1975년산의 경우 매입가격이 19,500원인데 반해 방출가격은 16,730원으로 가마당 2,770원의 가격격차와 1,996원의 중간경비를 합쳐 가마당 4,766원의 손실을 보았다. 가마당 손실의 판매원가(수매가+중간경비)에 대한 비율을 보면 1972년산의 경우 11%이던 것이 1974년~1984년에는 25%~27%로 정부 부담률이 높아졌으며, 1985년산 이후에는 가격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30% 이상을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산(1991년미곡연도)부터 정부방출 가격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정부부담률은 25% 내외로 떨어졌다.
    보리의 경우 이중가격제 실시 첫해인 1969년산에 대해 매입가격은 가마당 3,348원인데 비해 방출가격은 이보다 598원이 낮은 2,750원으로 책정되어 중간경비 430원을 합하면 가마당 1,037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수매가와 판매가의 가격격차는 점점 커져 가마당 손실의 판매원가(수매가+중간경비)에 대한 비율은 1970년산의 겨우 27%였던 것이 그 후 가격격차가 계속 커지면서~~~~~~~~~~
    나라기록원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3693
    콜트레인선생, 박통시절 농촌은 사실상 붕괴 http://soakaeofh.egloos.com/4976807
  • DreamersFleet 2013/09/29 23:08 # 답글

    영정양 선생님과 무애자 선생님의 빅매치가 여러번 있었군요.
  • 零丁洋 2013/09/30 00:14 #

    제가 좀 딸립니다. ^^ 무애자님이 나름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박통시절 농촌의 발전을 말씀하시는 제가 배웠거나 읽었거나 들었던 상식하고 좀 달라 의견을 내다보니 여기까지왔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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