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 오희옥 선생님의 말씀 2013/08/15 13:18 by 無碍子

"친일파 후손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가는 아직···" 머니투데이

“친일파 후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자기네 땅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돼. 친일파 후손들은 잘 살고 독립운동 한 사람들은 아직도 힘들게 살고. 정부가 확실하게 친일파를 청산해야 해”
=>친일파 후손들은 떵떵거리지 않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이 친일파 후손이 떵떵거리는 나라라면 말이죠.
김희선 전 의원의 경우 “나는 광복군 김학규 장군의 손녀가 아니라 일본특무의 딸입니다.”라고 하면서 떵떵거리고 살았을 겝니다.
독립운동가(나는 개인적으로 독립운동가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의 자손들이 그 부조의 공훈을 자랑할 때 친일파의 자손들은 대가리 처박고 땅만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런나라입니다.
말씀하신 오희옥선생의 부친이신 오광선장군도 대한민국에서 육군대령으로 임관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시었습니다.

친구들과 언니들과 함께 그는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군들이 있는 포로수용소를 향해 방송을 했다. “중경에 우리 임시정부가 있다. 김구 선생이 계신 임시정부가 중경에 있다. 빨리 나와라. 탈출하라”
=>일본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선생이 19세가 되던 해 나라가 해방됐다. 독립운동을 하던 친척들과 선생은 기선을 타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용인 원삼면이었다.
“남경에 있던 아버지는 그 때 함께 못 가셨어. 김구 선생으로부터 명령을 받으셨지. 임시정부가 북경에 가서 일본군 요인을 암살하라고. 아버지는 일본군을 암살하러 가셨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으시곤 붙잡히셨지. 신의주 감옥에 갇히셨어. 아버지는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속이셨어. 광복군이라고 하면 목숨이 위험했거든. 그래서 3년간 감옥에 계셨지. 나중에 일본인들이 아버지를 트럭에 싣고 벌판에다 버렸어” 생이별 했던 아버지와는 해방 후 인천에서 다시 만났다.
=>이건 기자가 정리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오선생님이 말씀을 절못하신겐지 분명치 않습니다만. 오광선장군이 북경에서 체포된 건 1937년이고 출옥은 1940년입니다. 조선일보 青年運動半世紀(청년운동반세기) (29) 光復靑年會(광복청년회) [1] 吳光鮮(오광선)장군 光復軍(광복군) 支隊(지대)로 조직

트럭에 실어 벌판에 버렸다는 자극적인 글 보다는 사실관계를 명확히하는 글을 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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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친일파 2013/08/15 13:39 # 삭제

    독립운동가라는 단어를 싫어하는놈은 친일파가 분명하다.
  • ... 2013/08/15 13:48 # 삭제

    트롤링 좀 잘해봐.
  • rezen 2013/08/15 13:52 #

    친일파 후손이 아직도 떵떵거린다면 백선엽 장군께선 대체 무슨 죄로 아직까지 근거없는 욕을 먹고 계신건지...애시당초 독립운동가 후손이 못산다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게 독립하고 60년 지나도록 가난하다면 조상이 독립운동한 탓이 아니라 다른 이유아닐까요?
  • 無碍子 2013/08/15 17:57 #

    우리아부지가 친일파입니다. 혹은 우리 할아버지가 친일파 입니다.라고 떵떵거리는 놈은 본 기억이 없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3/08/15 17:08 # 삭제

    rezen/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독립운동한다고 자녀교육에 신경쓸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겠지요.
  • 無碍子 2013/08/15 17:58 #

    적어도 1962년부터는 그 보답을 해 드린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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