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조선시대 공노비(公奴婢)의 경제성 2013/05/02 18:52 by 無碍子

조선시대 신공(身貢)을 바치던 공노비(貢奴婢). 조선시대 공노비는 그들의 의무내용에 따라 선상노비(選上奴婢)와 납공노비로 구분되었는데, 16세 이상 60세까지의 공노비 가운데 선상노비가 매년 일정기간 동안 소속 관서에 무상으로 노역을 해야 하는데 비해 납공노비는 매년 일정액의 신공을 바쳐야 했다. 신공은 1408년(태종 8)에 추포(麤布, 정제하지 않은 베)로써 노(奴)는 5필, 비(婢)는 4필을 바치게 했으며, 25년(세종 7)에는 이를 대폭 줄여 노는 정포(正布) 1필과 저화(楮貨) 2장, 비는 정포 1필과 저화 1장, 또는 전(錢)으로 노는 100문(文), 비는 50문을 바치도록 했다.

세조 때 명나라에 대한 진헌(進獻), 사신에 대한 답사예물 등으로 면포(綿布)의 수요가 배로 많아지고, 또 점차 저화의 유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자 면포로 일괄하여 노는 2필, 비는 1필을 바치게 했다. 이렇게 거두어들인 노비의 신공은 국가재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1485년(성종 16)의 예를 들면 면포가 72만 4천5백여 필, 정포가 18만 여필에 이르렀다.

소생의 포스트 세종대왕의 관노비 출산휴가와 사민(徙民) 지원에 의견 주신분들께 일일이 답글을 달기보다는 포스트를 하나 더 올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보충하는 포스팅을 합니다.

이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은 과오가 소생에게 있습니다. 북한에서 만든 이 그림에서 제가 주목한 바는 노비의 거래가격이 아니라 노비의 경제성입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건 경제성으로 본 것이죠. 조선시대 노비 四口가 소 한 마리 정도의 경제성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의견에 대한 답을 합니다.

“관노의 경우 마냥 늘어나는게 국가에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by 아빠늑대
“관노비는 기본적으로 관청의 일을 돕고 관전을 관리하는데 쓰는 겁니다. 그 용도의 범위가 한정돼 있어요.” by asdf
=> 납공노비의 신공이 국가재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답니다.

“출산휴가 좀 줘서 생산성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 다른 나라 위정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했겠지요.” by asdf
=> 현대 경영자들 중에도 복리후생을 두터이 해서 생산성을 높이려는 사람도 있고 기름 짜듯 짜는 게 생산성을 높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비를 제외하면 조선에서 "여성 노동 인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by 야스페르츠
=> 농경사회에서 여성이라고 논밭에 나가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농업이 아니더라도 길쌈, 바느질 같이 여성의 손으로 하는 직업은 분명히 있습니다.

“사민목적은 무얼 위한 목적인지는 생각해봤어요?” by asdf
=> 당시 북방을 개척하여 식민을 해야 했던 시기. 죄인을 처벌하는 것도 물론 목적이겠습니다만 개척지에 백성을 정착시키는 게 사민의 목적입니다. 가다가 죽어버린다면 말짱 헛일입니다. 살려서 정착시켜야 했습니다.

※ 관노비와 공노비의 개념이 약간 다르기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신공이 국가재정으로 들어오는 노비가 관노비가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덧글

  • asdf 2013/05/03 00:56 # 삭제 답글

    애초에 출산휴가를 주는 노비가 어떤 노비인지 실록은 봤나요? '관청에서 복무'할 때 출산일이 가까우면 관청에 나오게 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결국 농사짓고 밭일하는 여노는 해당사항 없음이에요. 애초에 자기 집이나 밭에서 일하고 있는 여노에게 어떻게 휴가를 줍니까? 야스페르츠님의 여성노동인구가 없다는 건 그런 말이에요. 국가에서 파악할 수도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겁니다. 평민 농부 아낙네도 진통 오기 직전까지 일한다니까요? 당연히 그 용도가 분명한 노비죠.

    그리고 노비에 대한 정책에 어떠한 의도가 담겨있는지 보려면 노비 자체만 집중할 게 아니라 여러 부분을 함께 훑어봐아죠. 괜히 화척이랑 백정 얘기한 게 아니고, 양인에게 개간할 땅을 주는 정책의 골자를 설명한 게 아닙니다. 조선초기에는 소작농의 성격도 이후와는 달라요. 노비의 경제성요? 당연히 소처럼 일하는데 이익이 나지요. 그럼 안나겠습니까? 노예제도가 왜 있었겠어요. 말할 것도 없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게 이익이죠. 그런 당연한 걸 갖고 마냥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세금 많이 올리면 올릴수록 세수 늘어나서 좋죠. 하지만 마냥 올린다고 좋지 않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관점에 따라서 모든 행동의 원리가 '이익을 위해서' 라는 얘기를 부정할 생각은 없는데 왜 똑같이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는데도 어떤 인간은 기름짜듯 쥐어짠다고 표현하고 어떤 인간은 성군이라고 표현하는지 이런 인식의 차이가 어디서 발현하는지 정도는 깨닫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걸 갖고 전후 관계 잘라먹고 '성군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분석하려는 글도 흠이 있어 보이는 거죠. 중2병 스럽습니다.
  • 無碍子 2013/05/03 12:43 #

    公處奴婢의 출산휴가
    上謂代言等曰: “古者公處奴婢, 必令産兒七日後立役者, 矜其棄兒立役, 以傷小兒也。 曾命加給百日, 然臨産而立役身勞, 則未及其家而産者, 或有之, 若臨産月, 除役一朔, 何如? 彼雖欺罔, 豈過一月乎? 其令詳定所幷立此法。” 又謂金宗瑞曰: “更改舊制, 雖曰不可, 然歷代繼世之君, 因其時宜, 或汰或設。 曩者郭存中掌汰冗官, 所減之錄, 至三千餘石, 厥後惟加設集賢殿、宗學兩官耳。 今聞刑曹因事劇煩, 未察獄訟, 深以爲嫌, 稽之古制, 六部員或多或少, 今欲加設刑曹郞官二員, 合爲八員, 雖與他曹不同, 亦可也。 如是則專掌刑決之事, 庶爲便益, 其議諸兩議政以聞。”

    公處奴婢의 신공
    各司奴婢推刷色啓: “國家公處(誠)〔臧〕獲, 所係甚重。 在永樂十五年丁酉, 我太宗恭定大王置刷卷色, 命領議政府事柳廷顯等, 提調其事, 嚴加究治, 勒成正案, 以貽後來。 且立遵守憲章十餘條件, 具載《六典》, 班班可考。 然自丁酉之歲到于今二十餘年, 而中外官吏, 陵夷其職, 生産物故之未明也, 逃亡移徙之未推也。 當身之役不役、身貢之納不納, 皆未能精察。 都官典農寺奴婢以萬計, 而當該官吏牽引他務, 漫不加省。 於是殿下乃命臣等, 推刷各司奴婢, 遂以丁酉正案爲本, 參考各年續案, 隱漏者推之, 告爭者辨之, 修成正案, 凡一百二十四司見推奴婢二十一萬數千餘口, 未推奴婢二萬數千餘口, 其合行事件, 條列于後, 伏惟聖鑑裁擇。
    一, 各司權知直長書員齋郞令史等吏典, 各其司婢子通奸, 論罪罷黜, 已有成規; 禁各官書員日守鄕吏等良家女子及家婢作妾、僧人娶妻, 曾有禁令。 上項人等, 實非的夫, 其所生, 竝令從賤, 其他嫁良夫所生式年限內未告狀者、過限告狀者, 亦皆從賤。 雖限內告狀, 其夫良籍不明者從賤。
    一, 今己未年正案付奴婢訴良相訟痛禁及己身名字見付外陳告投屬禁斷之法與容隱使用人論罪之法, 一依丁酉年正案例施行。
    一, 自丁酉正案後奴婢考察之法, 不爲不備, 有司未之擧行。 今又設推刷色而治之, 今不董正, 弊復如前。 竊觀我國家公私奴婢之事, 已是大段, 故別置都官以掌之。 然都官醉於決訟, 而公處奴婢, 反爲餘事, 多般屬公奴婢決等以後, 奴婢名字及子枝, 專不推考錄案, 後日相考無門, 各處定屬及換定奴婢, 皆不明白施行, 彼此紊亂難考, 其不職甚矣。 臣等竊意都官旣是掌奴隷之事, 擇東西班內可當者二人, 兼差正佐郞, 與前奴婢色郞廳皆久其任, 毋令與於決訟, 各司奴婢生産物故逃亡移接選上身貢等事專掌, 依《六典》施行。 刑曹判書參判, 旣是實案, 一應公處奴婢事及官吏勤怠, 以時檢擧。”

    출처는 世宗莊憲大王實錄입니다.
  • asdf 2013/05/03 23:30 # 삭제

    이제야 실록 좀 검색해봤나보군요.

    그럼 다음 단계입니다. 노비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노동력의 제공이란 건 무슨 뜻일까요? 조선시대 수취체계는 조, 공, 역입니다.

    귀하가 갖다붙인 원문에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그리고 이건 출산휴가에 대한 다른 기사입니다.

    詳定所啓: “公處婢子將産之月及産後百日, 請竝除役。” 從之。

    뭘 면제한다고 써있지요?


    다음은 신공 면제에 관한 기사입니다.

    -觀察使啓: “請道內居各司奴婢全失農者, 除身貢, 其次減半。” 從之。

    -免今年各司奴婢全失農者身貢。

    -戶曹據咸吉道監司關啓: “道內住各司奴婢等去辛亥年身貢, 請全失農者, 全免收租, 一石以下者, 半貢。” 從之。

    같은 걸 면제하고 있습니까?


    '출산휴가'의 정확한 '원문'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신공은 왜 '身' 그리고 '貢' 입니까?

    어째서 신공이라는 형태로 공물을 납부하는 방식인 걸까요?

    납공노비의 성격에 대해서 조사해보세요. 참고할 항목은 외거노비입니다.

    선상노비가 제공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입니까? 역입니까? 그러면 누가 무엇을 하다가 출산휴가를 받겠습니까?
  • 2013/05/04 08:22 # 삭제

    asdf//
    질문만 틱틱 던지지 말고 니가 알아보세요. 남한테 실록 검색해보라 하고, 지가 조선시대 상전이고 여기 사람들은 노비인 줄 아나.
  • asdf 2013/05/05 02:53 # 삭제

    냠// 무슨 얘기가 오고가는지 이해못하는 사람은 조용히나 있는게 좋습니다.
  • asdf 2013/05/03 01:02 # 삭제 답글

    그리고 사민목적 말하는 거 보니까 사민정책이 단순히 식민지 개발같은 경제개발 수준으로 접근하면 얼마나 형편없는 정책인지 모르나보네요. 경제성으로 따지면 사민정책은 정말 국가 재정에 그다지 도움 안됩니다. 오히려 아까운 노동인구가 겨울 한번에 절반이 넘게 얼어죽어 손실되는 등 삽질의 연속이죠. 뭐, 세월이 매우 많이 흘러서 정착과 개간이 잘되면 수익이 나겠지만, 당시 세종시기에 그만한 인구를 옮겨서 개척하는 일이 절실했을 정도로 조선의 국토는 포화상태가 아니었어요. 애초에 그랬으면 폐사군을 결정했을리도 없죠.
  • 無碍子 2013/05/03 12:35 #

    변경지역의 사민의 목적은 경제개발이 아니라 변경지역의 식민을 통한 방위력의 강화입니다. 애써 차지한 땅에 백성이 없어 지키지 못하는 걸 막자는 거죠.
  • asdf 2013/05/03 23:31 # 삭제

    늦게나마 이제 안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거북선을 만들고 병사들 험하게 곤장질해서 왜적을 깨부숴도 이순신이 성웅이라서... 일까요?
  • 야스페르츠 2013/05/03 01:53 # 답글

    농경과 길쌈과 같은 전근대 여성의 노동은 심지어 현대 사회를 기준으로 보아도 "자영업"에 해당하는지라 국가 차원에서 복지 정책, 특히 출산 휴가 같은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무도 자영업자가 출산 휴가를 쓰는지 안쓰는지 신경 안써요. 자영업자는 그냥 자기가 쉬고 싶을 때 쉬면 되는 거니까요. ㅡㅡ;; 게다가 세종의 출산 휴가 정책은 "공무원" 대상이니 더더욱 농사 짓는 시골 아낙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죠. 이건 좀 구차하신 답변인 듯 싶습니다.
  • 無碍子 2013/05/03 12:29 #

    노동하는 여성이 아니라 임금노동자 성격의 여성노동자라는 걸 오해했습니다.
  • 아빠늑대 2013/05/03 04:17 # 답글

    출산휴가는 선상노비만 봐야지요. 휴가 증가의 목적을 이익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애민 정책의 일환인가는 실록을 토대로 유추하여야 하지 않은가 합니다. 이미 이전에 아이를 낳고 일주일의 유예를 주는 것은 아이가 잘못될까 해서이다 라고 하지요. 이전에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이라 봅니다. 헌데 세종은 이 기간을 대폭 늘리고 출산 전이도 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도 주지요. 경제적 목적이라면 이리할 이유가 별로 없지요.

    또한 노비는 단순히 생산으로만 증가되는 것도 아닙니다. 범죄나 역모 등으로도 증가될 수 있지요. 따라서 굳이 그리 해가며 노비를 늘려야할 필요가 없겠지요. 덧글이라 길게 적기가 뭐합니다만 노비가 경제성이 없다는건 아닙니다. 다만 공노비의 증가는 양인 유지에 정치적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경제성만으로 보자면 휴가주는 선상노비 보다 납거노비를 늘리는게 더 낫지요.
  • 無碍子 2013/05/03 12:32 #

    세종은 公處奴婢라고 했습니다.
    선상노비는 정원이 정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원외 노비를 공납노비로 해서 신공을 받을수도 있지않습니까?
  • 아빠늑대 2013/05/03 13:52 #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면천도 하고 보직 이동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흔한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공처노비라고 한다면 국가에 딸린 모든 노비를 말한다기 보다, 각 관서에 출퇴근하는, 그러니까 관서에서 일하는, 관서의 비품으로서의 노비를 지칭하는 것이 옳겠죠.
  • asdf 2013/05/03 23:32 # 삭제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 '문과'라고 들어봤습니까? 경국대전에 실린 단어인데도 일관성이나 체계성이 부족한 용어죠. 무슨 뜻이냐고요?

    문과라는 용어는 무과와 대별되는 광의의 문과와 대과만을 의미하는 협의의 의미가 공존한다는 얘기입니다. 즉, '문과를 치뤘다'는 문장만 갖고 이게 광의의 문과인지 협의의 문과인지 알 수 없단 거죠.

    이렇게 이중의 의미가 공존하는데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문과라는 용어만 그런 게 아니라 조선시대의 각종 용어들은 죄다 이와 같거나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뭘 연구하든 이게 학자들 머리 아프게 하죠.

    그럼 신공을 내는 공노비는 무슨 노비고, 휴가를 받는 공노비는 무슨 노비겠습니까?

    공노비의 출산휴가로 생산성과 경제성을 증가시키려면 선상노비의 정원을 제한시키는 게 좋겠습니까?
  • 홈 원 2013/05/03 09:28 # 삭제 답글

    갈비뼈가 나가도 잠깐 앉아서 쉬었다가 다시 일하는게 농촌입니다. 그리고 농사짓는 사람에게 출산휴가를 준다는 이야기는 처음들어보네요. 그냥 알아서 쉬는 거지.
  • asdf 2013/05/03 23:35 # 삭제 답글

    예전 게시물 덧글에서도 이미 말했는데 관료들에게 주는 수조지도 그냥 땅에서 나오는 거 가질 '권리' 줄테니까 네가 그걸로 알아서 해먹으라는 게 기본적인 뜻이죠.

    조정은 그 공무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벌어먹고 사는지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냥 땅 줬으니까 알아서 먹고 살겠지 하는 겁니다.

    노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노비가 100일 휴가? 남편까지 쉬게 해준다? 신공 바치고나면 남는 걸로 먹고 살아야하는데 말입니까? 신공을 면제해주는 경우는 언제일까요? 농사 망쳤을 때입니다. 1년 365일 중에 100일 쉬면 당시 산업환경에서 가정경제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경제성 좋아하시니까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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