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② 내가 메긴 것입니다.
① “위안부를 일본 국가권력이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증언자가 있을 뿐인데, 이것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고 해서 자발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강제와 자발 사이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중간항이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하는데, 이들이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이라 말할 수 있나. 그들에게는 수많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by 안병직
안병직은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의 존재를 부인한 게 아닙니다. 강제동원의자료가 현존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② 성노예 즉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자는 어디도 없습니다. 다만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겝니다.
이 문제는 좌우와 무관하며,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람 중에 종군위안부 징집영서를 증거로 제시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Early in May of 1942 Japanese agents arrived in Korea for the purpose of enlisting Korean girls for "comfort service" in newly conquered Japanese territories in Southeast Asia. The nature of this "service" was not specified but it was assumed to be work connected with visiting the wounded in hospitals, rolling bandages, and generally making the soldiers happy.
The inducement used by these agents was plenty of money, an opportunity to pay off the family debts, easy work, and the prospect of a new life in a new land, Singapore. On the basis of these false representations many girls enlisted for overseas duty and were rewarded with an advance of a few hundred yen.
징용영서를 발부해서 잡아가거나 마을 입구에 도라꾸 세워 놓고 경찰과 헌병을 풀어 사냥하듯이 소녀들을 잡아갔다면 말입니다. 저 엄청난 advance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937년 동네 이장의 권유로 도항하여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위안부 노릇을 했다고 하는 서글픈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때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울러 나는 강제동원의 증거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덧글
여기서 더 첨언하면 현 말레이시아가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섬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고 그 나머지는 인도네시아가 지배 하고 있는 관계로 말레이시아를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듯 합니다.
시작부터 아주 작심하고 증거 인멸을 준비하고 한 일이니 힘든 일이긴 한데 대일 피해가 아니었음 지금 이런 식으로 재대로 된 증거 없이 당당히 주장을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일본 제국의 군바리들(순사 포함?)이 생각 외로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것일까요, 이 잡듯이 뒤져도 못 찾아낸 것일까요? <-- 그 무시 무시했던 731 부대도 무슨 '증언' 같은 것이 나와 있던데......
사기등 인신매매,매춘등 을 일본군을 비롯한 국가권력이 알면서도 모른척 방임하거나 이용한 범죄다.
라고 하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보니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올나라에서 ㅂㄴ격적으로 처음 연구하던데 낙성대니까요....
---[TV리포트 = 김명석 기자, 2015-08-17] 일본군 문서 폭로가 화제를 모았다.
중국의 한 언론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기록보관소가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폭로했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 대해 만주국은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 쑤이양 한충허 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천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천여명 가운데 일부"라고 기록됐다.
무엇보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는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충격을 안겼다.
김명석 기자 kms0228@tvreport.co.kr
---[TV리포트 = 김명석 기자, 2015-08-17] 일본군 문서 폭로가 화제를 모았다.
중국의 한 언론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기록보관소가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폭로했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 대해 만주국은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 쑤이양 한충허 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천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천여명 가운데 일부"라고 기록됐다.
무엇보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는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충격을 안겼다.
김명석 기자 kms0228@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