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안병직이 일본군위안부를 부정했는가? 2013/03/01 20:23 by 無碍子

①안병직이 일본군성노예를 부정했다고 하는데(또 이것은 오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②일본군성노예 증거가 엄연히 있는데도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고 대놓고 부정하는 안병직이나 안병직의 패기를 말하는 이에게 좌파의 선동에 넘어가 억울한 사람을 음해한다는 애들이나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런 걸까요? by 파랑나리
※① ② 내가 메긴 것입니다.

① “위안부를 일본 국가권력이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증언자가 있을 뿐인데, 이것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고 해서 자발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강제와 자발 사이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중간항이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하는데, 이들이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이라 말할 수 있나. 그들에게는 수많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by 안병직
안병직은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의 존재를 부인한 게 아닙니다. 강제동원의자료가 현존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② 성노예 즉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자는 어디도 없습니다. 다만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겝니다.
이 문제는 좌우와 무관하며, 강제로 끌려갔다는 사람 중에 종군위안부 징집영서를 증거로 제시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Early in May of 1942 Japanese agents arrived in Korea for the purpose of enlisting Korean girls for "comfort service" in newly conquered Japanese territories in Southeast Asia. The nature of this "service" was not specified but it was assumed to be work connected with visiting the wounded in hospitals, rolling bandages, and generally making the soldiers happy.
The inducement used by these agents was plenty of money, an opportunity to pay off the family debts, easy work, and the prospect of a new life in a new land, Singapore. On the basis of these false representations many girls enlisted for overseas duty and were rewarded with an advance of a few hundred yen.
징용영서를 발부해서 잡아가거나 마을 입구에 도라꾸 세워 놓고 경찰과 헌병을 풀어 사냥하듯이 소녀들을 잡아갔다면 말입니다. 저 엄청난 advance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937년 동네 이장의 권유로 도항하여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위안부 노릇을 했다고 하는 서글픈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때입니다.

내가 알기에는 일본군 강제종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울러 나는 강제동원의 증거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덧글

  • ... 2013/03/01 20:25 # 삭제 답글

    냅두세요. 무식하면 말만 많은거죠.
  • 이명준 2013/03/01 21:49 # 답글

    수정 해야 한다면 1937년 당시 말레이 반도는 영국령 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그 당시 보르네오섬 자바섬 수마트라섬 현 인도네시아령 뉴기니등을 지배하고 있었죠 현 인도네시아가 당시 네덜란드령을 이어 받았죠.

    여기서 더 첨언하면 현 말레이시아가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섬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고 그 나머지는 인도네시아가 지배 하고 있는 관계로 말레이시아를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듯 합니다.
  • 無碍子 2013/03/02 15:07 #

    자바섬요.
  • 零丁洋 2013/03/01 22:19 # 답글

    미의회 종군위안부결의안의 내용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요?
  • 몽몽이 2013/03/01 22:26 #

    증거가 제시된건 없음
  • 零丁洋 2013/03/01 22:37 #

    몽몽이// 피해자인 할머니의 말씀은 증거가 안되나요? 꼭 가해자의 공식기록이 있어야 인정되는 것인가요?
  • 붕어 2013/03/02 01:42 # 삭제

    피해자의 증언도 주장에 필요한 근거나 자체 모순 투성이라면 무시되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무고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역으로 가해자의 주장이라도 합리적이라면 받아드려지는 것이고요.

    시작부터 아주 작심하고 증거 인멸을 준비하고 한 일이니 힘든 일이긴 한데 대일 피해가 아니었음 지금 이런 식으로 재대로 된 증거 없이 당당히 주장을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 채널 2nd™ 2013/03/01 23:23 # 답글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문제군요. 증거, 증거가 없다니...

    대일본 제국의 군바리들(순사 포함?)이 생각 외로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것일까요, 이 잡듯이 뒤져도 못 찾아낸 것일까요? <-- 그 무시 무시했던 731 부대도 무슨 '증언' 같은 것이 나와 있던데......
  • 無碍子 2013/03/02 15:08 #

    731은 증언이 아니라 증거가 있습니다.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 2013/03/02 02:08 # 삭제 답글

    강제라는 정의가 순 맘대로신것 같은데요. 공장에 일하러 가는거라고 하고 배태웠는데 가보니까 성노예 수용소면 그게 강제동원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당시엔 이런 짓이 국제조약 위반이었으니 일본은 하청업자들 내세워서 진행하고 중앙정부에서 분리해서 지방에서 알아서 각각 차출하게 만들었다는 건 쏙 빼먹고 강제동원의 증거를 본적이 없다고 하시면 좀... 차출 초기에 한국주둔 일본육본에서 군인이 직접 여자를 납치하는 경우가 생겨 이를 금한다는 지령도 있고 이후 관헌과 앞잡이들의 사기와 협박 연행이 존재했다는 건 확연한 사실인데요. 도쿄고법 2003년 피해자 보상청구 판결은 혹시 보셨는지? 한국은 아니지만 2004년 12월 중국위안부에 대한 도쿄고법의 판결 또한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충분히 인정하는데 한국인이 나서서 증거를 못 봤다고 하는 건 또 처음 보네요.
  • net진보 2013/03/02 10:35 #

    안병직을 비롯한 뉴라이트 출신 학자들은 일본군당시 일제의 위안부책임에대해서
    사기등 인신매매,매춘등 을 일본군을 비롯한 국가권력이 알면서도 모른척 방임하거나 이용한 범죄다.
    라고 하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보니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올나라에서 ㅂㄴ격적으로 처음 연구하던데 낙성대니까요....
  • 2013/03/02 16:25 # 삭제

    안병직씨께서 그런 거짓 주장을 하시다니 안타깝군요 그런데 위의 글대로라면 강제종군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조직이라는 걸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는 결과가 도출되는데 두분 중 어떤 분 말씀이 맞는 것인지요? 안병직씨가 정말 굳이 직접 개입하기 않았다 같은 주장을 하셨다면....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죠
  • 2013/03/03 10:46 # 삭제

    입맛대로 주장해줘도 거짓 주장이라니 이건 뭐
  • nawsae 2015/08/18 00:16 # 삭제 답글

    이번에 또 하나 드러난 '강제동원 증거'물을, 이제는 보셨죠? 이제는 머릿속이 좀 복잡해지시겠네요,ㅋㅋ
    ---[TV리포트 = 김명석 기자, 2015-08-17] 일본군 문서 폭로가 화제를 모았다.
    중국의 한 언론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기록보관소가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폭로했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 대해 만주국은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 쑤이양 한충허 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천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천여명 가운데 일부"라고 기록됐다.
    무엇보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는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충격을 안겼다.
    김명석 기자 kms0228@tvreport.co.kr
  • nawsae 2015/08/18 00:16 # 삭제 답글

    이번에 또 하나 드러난 '강제동원 증거'물을, 이제는 보셨죠? 이제는 머릿속이 좀 복잡해지시겠네요,ㅋㅋ
    ---[TV리포트 = 김명석 기자, 2015-08-17] 일본군 문서 폭로가 화제를 모았다.
    중국의 한 언론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기록보관소가 만주국의 위안부 문건을 폭로했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 대해 만주국은 "1941년 10월 일본군이 무단장 쑤이양 한충허 지역에 군 위안소를 열면서 한국여성 수십 명을 데려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당안국이 공개한 제890호, 제1천64호 문건은 1941년 10월 20일 일본군 쑤이양 국경경찰대 한충허대 다카하시 대장이 같은 부대 쑤이펀허 대장에게 부대 사정을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이들 여성이 한국에서 강제징용한 2천여명 가운데 일부"라고 기록됐다.
    무엇보다 일본군 문서 폭로에는 "일본군이 징용된 한국여성들에게 한충허지역에 '일본군 전용 요리점'을 연다고 속여서 끌고와 위안부 역할을 강요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어 충격을 안겼다.
    김명석 기자 kms0228@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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