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박정희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2012/10/24 12:57 by 無碍子

축지법 박정희 장군님 쓰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방선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 ~~~~~~~~~~~

주재덕선생의 회억에 의하면 박정희는 특설부대 건립초기에 벌써 입대를 하였고 1939년 8월 24일 대사하전투에서 최현부대에 전멸되다 시피 한특설부대에서 요행 살아남은 사람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번 전투가 있을 후에 부대의 추천을 받고 신경육군군관학교로 갔다는 것이다. 1995년 7월 심양에서 만난 주재덕선생은 당시에 <<키가 작고 빼빼 여윈 사람이며 한국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라고 분명히 짚어서 이야기하였다.
한국의 자료에 보면 박정희는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에 보냈고 이 혈서가 만주의 신문에 보도되기까지 했고 그래서 1940년 4월 군관학교 2기생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엄격한 시험과 높은 경쟁률을 가진 군관학교에 혈서 한 장으로 갔다는 것은 참으로 소설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제4회 이범익과 충성의 선물 간도조선인특설부대 by 류연산

 

박정희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오라지 않아 만주에 와서 간도조선인특설부대에 자원 입대하였다. 특설부대에 있는 기간에 그는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나섰고 그 공으로 신경육군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하였다. 학교시절 그는 교내 반만항일비밀단체와는 거래가 전혀 없었고 일본인 교관의 총애를 받는, 일본어와 능하고 기타 모든 방면에서 우수한 학생이었다. 졸업 후 그는 간도특설부대의 군관으로 배치를 받아갔고 열하성과 하북성에서 팔로군 토벌에 앞장서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양심이 있었고 그리하여 항일대오인 팔로군에 기의하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만다. 광복 후 그는 특설부대 전원과 함께 조선의용군에 참가하려고 하였으나 거절을 당하자 직접 한국으로 돌아간다.

제5회 박정희와 신경육군군관학교 by 류연산

박정희가 간도특설대 1기라고 하는데, 1기는 1939년에 편성됩니다. 박정희는 문경보통학교(문경서부심상소학교)에서 일본 육군 하사관 정복입고 군도차고 훈도질하면서 만주에서 간도특설대로 복무했다는 말도 됩니다.

1. 간도특설대 증인이 있다.
2. 문경보통학교 제자가 있다.
3. 그러므로 박정희는 축지법은 물론 축시법까지 썼던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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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제대로 읽고 포스팅 한건지???... by 빛나리
간도특설대 대단하네. by lostin (핑백을 거부하시기에 링크 제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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