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2012/10/20 18:09 by 無碍子

사실 이성계는 동북아에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장수였습니다. 요동정도는 장중지물처럼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최영의 만주수복은 충분히 가능했던 시나리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최영의 만주수복운동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고려가 이겼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나라가 최선을 다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고려가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최영이 5만 대군을 동원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이성계 역시 겉으로는 만주정벌 불가론을 내세웠지만, 이것이 그의 진심은 아니었다. 이성계 역시 조선을 세우자마자 정도전과 함께 만주정벌운동을 전개하지 않았나? 이성계 역시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가 1388년에 만주정벌을 거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만주정벌에 내몰리기보다는 쿠데타를 벌이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최영의 만주수복운동은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다. 일흔세 살의 최영이 민족적 숙원인 만주수복에 나선 것은, 그가 생각해도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가 쿠데타를 막을 능력만 있었다면, 만주수복의 꿈은 그의 시대에 성취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마이 만주정벌,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이미 이성계는 두번이나 요동정벌에 성공했을 뻔 했습니다. 했을 뻔 했다는 말씀은요.

제 1차 요동정벌
1369년 동북면 원수 이성계는 고구려의 요동성이었던, 동녕부의 치소 요양(遼陽)을 공격 함락시킵니다.

“고려가 요동을 합락 시켰어? 그럼 만주가 고려 땅이 되었네?”
“아니올시다. 요동을 함락했으나 고려 조정은 군량과 군수물자를 보급해 주지 않아 고려군은 후퇴 했습니다.”

제 2차 요동정벌
1370년 상원수 겸 서북면도원수 지용수를 총사령관으로 양백안, 임견미, 이성계의 요동 원정군은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호호탕탕 진군하여 식은 죽 먹듯이 요동을 함락합니다.

“또 요동을 먹었어? 이젠 만주가 고려 땅이 되었겠네?”
“아뇨, 군량 부족으로 또 돌아옵니다.”
“엥. 무슨 나라가 이 모양이야 군대를 원정 보내면서 보급도 안 해 줬어?”

그리고 제 3차 요동정벌령을 내렸습니다 
1388년 최영을 팔도도통사 조민수를 좌도통사 이성계를 우도통사로 임명하여 출진시키면서 최영 총사령관은 서경에 남기로 했습니다.

“요동성 정도는 우리 군대가 가면 거저먹기로 차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두 번이나 요동성을 함락시켰으나 군량과 군수품이 보급 안 되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전사자 보다 아사자가 더 많은 불행한 전투에 사랑하는 병사들을 투입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전투에는 군량은 충분 합니까?”

이성계가 조심스럽게 최영에게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우왕이 받아쳤습니다.

“이 씨벌롬마 군바리는 까라면 까는거여, 뭔 말이 많아. 짐이 요동을 치라면 치는거야. 너는 입으로 전쟁하냐?”

최영이 간신히 우왕과 이성계를 회해 시킵니다.

“군량과 군수품 보급은 충분히 준비 하겠습니다. 혹시 있을 전사상자에 대비해서 보충병도 훈련시키겠습니다. 또 백성들을 소집하여 군수물자의 수송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장군님의 말씀만 믿고 출진하겠습니다.”

이는 가상대화였습니다.

전필승 공필취(戰必勝 攻必取) 불패전의 무적장군 이성계는 압록강 중간 위화도에 진영을 설치하고 서경의 상황을 정탐했습니다.

군인 1명이 하루에 쌀 0.4Kg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1달에 12Kg, 5만명이므로 1달에 600,000Kg(600톤)을 먹습니다. 잡곡이라면 더 많이 필요하며 수송병도 먹어야 합니다. 거기에 간장이라던가, 된장 같은 반찬까지요...
이 엄청난 군량을 수집하여 수레나 지게로 전장까지 날라 줘야 합니다. 수송대를 호위할 병력도 필요하고요. 수송대와 호위병도 먹어야 합니다.
소모되는 활과 화살도 만들고 창칼도 벼려서 보내야 하고요. 마초도 베고 말려서 전장으로 보내 군마도 멕여야 합니다.
이걸 후방의 우왕과 최영이 맡아야 전방에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군정치의 기치를 높이세운 우왕은 기쁨조 잔치로 날가는 줄 몰랐고 최영은 방관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또 요동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승전한 병사들을 굶겨 죽이면서 회군해야 하나요?
그게 옳은 행동일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조국의 아들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악당들을 토벌하여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하나요?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가 취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조민수 이성계의 군대가 요동에서 녹아버리면 나라도 끝장입니다.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했더라면 만주벌판은 우리 땅이 되었을 건데 반란을 일으켜 회군했기에 우리 영토가 한반도로 오그라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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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零丁洋 2012/10/20 21:10 # 답글

    만주는 차지 보다 유지가 중요해 보이는데 문제는 만주의 생산성이죠. 중국은 내지의 엄청난 생산력으로도 겨우 요동 주변만 통제할 수 있었으나 몽골이나 여진은 기동성을 이용 소수로 즉 저에너지로 지배가 가능했죠. 고려가 중국과 유사하다고 보면 고려로서는 당시에 한계로 보이내요.
  • 無碍子 2012/10/21 18:10 #

    요동은 농업지대입니다.
  • 零丁洋 2012/10/22 09:47 #

    당시에 요동이 자체 방어가 가능한 충분한 생산능력과 인구를 갖고 있었나요?
  • 지나가던과객 2012/10/21 07:14 # 삭제 답글

    점령이야 할 수 있겠죠.
    근데 유지는 둘째치고 주원장씨가 그 꼴을 당하고 가만 있을까요?

    하긴 환빠들이 중국 우습게 보는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 無碍子 2012/10/21 18:11 #

    원본글이 워낙 희망적인 예측으로 도배되어있는지라..........
  • 아빠늑대 2012/10/23 04:04 # 답글

    그저 치는 것 뿐이라면야 해적은 바다를 재패했고, 산적은 지구를 통일했겠죠. 가끔 낙관론이 망상으로 변하는 걸 자주 봅니다, 물론 혼자서 노는걸로 그러면야 재미로 하는거니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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