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장준하선생의 일본군 장교경력? 2012/08/18 16:59 by 無碍子

1. 일본군 육군소위 장준하
아래 이미지는 위키백과에서 화면 복사 했습니다. 거기에는 일본군 육군 소위 출신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돌베개나 장정을 허투루 읽었는지 조선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여 왜진을 탈출 광복군이 되었다고만 기억합니다.

장준하 선생의 일본군 징집 및 탈출 기록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수명부>에 장준하 선생의 이름(장안준하·張安俊河), 소속부대(제7991부대), 생년월일 및 본적지(평안북도 삭주군 외남면 대관동 258), 부친의 성명(장석인·張錫仁), 역종·병종 및 계급, 공탁금 번호와 상단에 탈출일자 및 탈출지 등이 기재돼 있다.

오마이 일본군이 작성한 장준하 탈출 기록 발견

일본군이 작성한 유수명부에는 계급이 기록되어있다는데 오마이는 기사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2. 조선학도특별지원병
왜정시기 학도지원병을 마치 6.25때 학도병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명한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학도지원병이 일군 선임들에게 학대받는 광경이 나오는데 실상 학도지원병들은 스스로 일본인 징집병들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군 내에서도 예비사관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실제로 제주4.3의 김달삼을 위시하여 많은 학도지원병이 사관이 되었습니다.

대놓고 글로쓰기에는 민망하지만 조선학도특별지원병은 왜정의 자랑스런 산물이었습니다. 지원병제가 발표되자 너무 많은 지원병이 몰려왔었습니다. (
왜정당시 지역별 지원병 현황 ☜클릭)
장준하의 돌베개나 김준엽의 장정을 보면 학도지원병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하 대한민국에서도 서로 군에 가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하는데, 날마다 군인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으로 그것도 조선을 식민지배하던 웬쑤 일본의 충용스런 군인이 되기 위해 군문으로 달려간 지원병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핑백

  • 거침없는 무애자 : 장준하와 박정희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2012-08-19 18:11:24 #

    ... 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한민국이 독립유공자의 미망인께서 월셋방에서 보조금으로 근근히 연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관련글장준하선생의 일본군 장교경력?장준하선생 유골감정 ... more

  • 거침없는 무애자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특집 2012-09-02 11:31:22 #

    ... 업고 내려온다.관련글장준하와 박정희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http://soakaeofh.egloos.com/5130755 장준하선생의 일본군 장교경력? http://soakaeofh.egloos.com/5130517 장준하선생 유골감정 http://soakaeofh.egloos.com/5130298 5.16을 보는 장준하선생의 시각 http://soakaeo ... more

덧글

  • 오땅 2012/08/18 17:19 # 답글

    이쯤 되면 민통당과 입진보들은 시체팔이를 시도하다 도리어 고인드립을 한 게 아닌가 싶네요. ㅋㅋㅋ
  • 無碍子 2012/08/18 17:56 #

    숨기는 게 문제지 장교였다하더라도 그리 큰 흠은 아니라고 봅니다.
  • 2012/08/18 18: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ggg 2012/08/18 19:33 # 삭제 답글

    광복군 대위 ㅎㅎㅎ
    고작 몇 백명이서 서로 장교계급만 다 가지면 대체 사병은 누가하나?
    안중근이 독립군 중장이라고 하질 않나, 광복군 대위?? 밑에 부하가 몇이나 있길래 대위?
  • 백범 2012/08/19 14:44 #

    일부에서는 광복군이 20만명이라고 하지만 그건 허풍이고

    브루스커밍스 책을 보니까 광복군 많아봐야 2천에서 5천명 밖에 안됐다고 합니다. 설령 일본군 출신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해도 얼마나 늘어났을지...

    그것도 대부분 44~45년 무렵 일본 패망이 거의 확실시될 때 받아들인 사람들이 대부분일걸요?
  • 無碍子 2012/08/19 17:55 #

    속성과정이지만 사관학교를 졸업했으므로 장교로 임관하는데 아무 결격사유가 없습니다.
  • ㅇㅁㅁ 2012/08/18 19:39 # 삭제 답글

    나치 독일에서도 징집인 국방군보단 자원병인 무장친위대가 훨씬 대우도 좋았고 경쟁률도 높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슷하게 봐도 될까요?

    어차피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곧 이루어질 징집을 당하는 것보단 미리 자원입대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 無碍子 2012/08/19 17:59 #

    일본인 징집병은 빈농의 자식으로 저학력에 천박한데, 반도인 지원병은 고학력자로 나름 엘리트의식이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또 지원병은 장교로 임관이 가능하지만 징집병은 택도 없으므로 꿀려야 할 이유가 없는거죠.
  • kuks 2012/08/19 02:08 # 답글

    위의 짤은 이 문제를 부각시키는 자들의 선택적 지각만큼이나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 無碍子 2012/08/19 17:59 #

    참 혼란스럽습니다. 누구라도 어떤경위로 일본군 장교로 임관했는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 Mediocris 2012/08/19 16:35 # 답글

    1917년생 박정희의 만주군, 광복군 경력과 1918년생 장준하의 일본군, 광복군 경력을 비교한다면 박정희(최종목표 박근혜)를 죽이기 위한 시체선호증이야말로 장준하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쑤시는 부관참시입니다. 장준하의 고향친구이자 장준하 아버지가 목사로 있던 교회 신도의 아들인 최기일의 책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 생각의나무, 2002'에 의하면 장준하는 동경신학교 재학 중 일본군에 자원입대하였습니다. 최기일이 열심히 만류하였으나, 장준하는 집안사정을 이유로 학도병에 입대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 無碍子 2012/08/19 18:02 #

    조선학도특별지원병은 징집이 아니라 지원입대입니다.
    언급하신 최기일 박사는 지원대상자이나 지원을 거부하고 시멘트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지원하지않으려면 방법은 있었으리라 봅니다.
  • 백범 2012/08/19 19:01 # 답글

    8월 15일에 해방돼서 안타깝다 안타깝다 하지만 솔직히 2~5천으로 국내 진공 자체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미 해방된 상태에서 광복군이 국내에 진입하려 했는데도 일본군한테 쫓겨갔다고 할 정도이니...
  • 루우비 2014/11/21 22:34 # 삭제 답글

    조선인 학도 특별지원병에 대해서 궁금해서 댓글 남깁니다

    그게 강제가아니였다고 하시던데

    그럼 그거에 대한 증거가 궁금하네요 아무리 네이버를 찾아서 검색을 해봐도

    말이 자원이었지 현실은 강제였다 (물론 자원입대도 있었겠죠) 라는 글이 대부분인데

    이거에대해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 ㄷㄷ 2014/11/22 12:22 # 삭제

    당시 모집이 강제였다는 증거가 딱히 없습니다. 거증책임의 원칙에 의해서 '실제로는 강제였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우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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