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거지왕초 박정희 독일을 방문하다. 2012/03/03 13:12 by 無碍子

국민소득 65달러 거지나라 대한민국(한국의 눈에는 에티오피아도 잘 사는 나라였다.) 대통령 박정희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것을 만들고 재원조달을 위해 방방 뛸 때 같은 분단국인 독일을 찾아가보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정래혁 상공방관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대표 구걸단이 독일을 방문했어요. 독일 경제부 에르하르트 장관은 만나지도 못하고 차관을 겨우 만났습니다.
“돈 좀 빌려주소.”
“뭐하게?”
“잘 모르겠는데, 좀 알아보고 다시올께.”

“서울에 전화 걸어. 돈 빌려서 뭐 하려는지 물어봐”
“비료공장도 짓고 시멘트공장도 만들고 광산도 개발한다고 하던데요.”
“오케바리 다시 독일경제부 방문하자.”

“비료공장, 시멘트공장, 광산개발을 하려고 차관 얻으러 왔삼.”
“알써 돈 빌려줄께, 근데 담보나 보증은 있나?”
“담보도 없고 보증서줄 나라도 없는데.”
“너네나라 실업자들 많지?”
“응 많어”
“우리나라는 광부와 간호원이 부족하니 보내줄 수 있나?”
“얼마든지 보내주지.”
“차관은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하는 형식이 어때?”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님메”
광부와 간호원의 임금을 담보로 1억 5천만 마르크(3천만 달러)를 빌렸습니다.

그분들이 독일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뤼브케 독일 대통령이 박정희를 초청했습니다. 근데 독일 갈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트항공사의 뱅기를 빌렸는데 미국 정부가 훼방을 놓아 계약이 취소되었어요. 쪽팔리지만 독일 대통령에게 뱅기가 없어 못 간다고 했어요. 독일 정부는 동경에서 독일로 운항하는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김포로 돌려 박정희대통령을 태워 오라고 시켰어요.
김포공항에 뱅기를 세워놓고 삼군의장대의 사열까지 하고 연설도 하신 후 장도에 오르셨습니다. 비행기 승객들은 그 꼬라지를 재미있게 구경했고요.

그사이 경제부 장관에서 총리가 된 에르하르트가 박정희를 맞았습니다.
“울나라는 희총통이 만든 고속도로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
“나도 희총통같은 훌륭한 독재자가 되기로 다짐했어.”
“싱거운 소리 그만하시고요. 한국도 고속도로를 만드세요.”
“나도 아우토반인가 하는 거 타 보고 놀랐어.”
“글고 일본과 손잡으세요.”
“일본은 싫어.”
“성질 줄이시고 손잡으세요. 우리는 프랑스와 수도 없이 싸웠지만 싸우고 나서는 손잡았어요.”
“당신들은 싸웠지만 우리는 싸운 게 아니라 얻어터지기만 했어. 입장이 다르다고.”
“얻어터졌다고 꽁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일본과 손잡고 갱제를 일으키세요.”
“알써, 생각해 보지”
에르하르트 총리는 2억 5천만마르크를 담보 없이 빌려주기로 약속합니다. 독일까지 간 목적은 달성했네요.
▲ 후손은 팔려나오지 않게… 지난 1964년 12월 독일의 함보른 탄광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그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광부·간호사들을 위로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작은 네모 사진은 광부·간호사들이 朴대통령 연설을 듣고 눈물을 연신 닦아내는 모습. /백영훈 박사 제공

출처 : Tong - 덕산님의 스크랩 폴더통


이제 광부와 간호원들을 만나러 갑니다. 눈물 없이 볼 수없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요거는 생략)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뤼브케 대통령이 손수건을 꺼내 박정희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게 당신이 할 일입니다.”
박정희가 독일을 다녀온 다음해인 1965년에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00달러를 돌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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