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북의 안동입니다. 안동시가 배출한 독립유공자는 250분으로 제주의 114분, 서울의 208분보다 더 많습니다. 그 다음은 경기의 안성이라고 합니다.
안동은 안동군이 만주로 옮겨갔다는 말이 있을만큼 독립투쟁에 적극이었으니 유공자가 많은 건 당연한데요. 안성은 생존자가 많아서라고 합니다. (안성의 독립유공자는 정확히 몇분인지는 모릅니다만. 안성은 안동 다음으로 독립유공자가 많은 고장이라고 하시는 말을 들은바 있습니다.)그 이야기 입니다.

그 덕분에 안성성당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고, 이분들 중 많은 분들이 해방 조국에서 독립유공자가 되십니다.
이 사건으로 서양 종교를 배척하던 안성 사람들은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공베르 신부를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0년 안성성당에 오신 공베르 신부는 1909년에 안성의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려고 학교를 세웠었습니다. 그 학교가 안법고등학교입니다. 안법의 안(安)은 안성에서 법(法)은 프랑스의 당시 호칭이던 법국(法國)에서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공베르 신부는 한국 포도의 조종(祖宗)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등으로 남은 흔적으로 보면 개화기 이전에도 한국에 토착 포도나무는 있었을 겝니다.
근대적 포도 농사는 설이 분분하나 1900년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앙투안 공베르 줄리앙 공베르(Julien Gombert) 형제 신부님이 조선에 부임하실 때에 포도나무를 가져오셔서 안성성당(안성 구포성당) 앞마당에 심은 것이 한국의 포도농사의 시초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포도나무 한그루가 수입하던 미사용 포도주를 자급하게 되었고 곡식농사 밖에 모르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공베르 신부님 형제분은 1950년 6.25 김성주의 난(亂) 때 미쳐 피난가시지 못하고 반군에게 잡혀, 북으로 끌려가셔서 그해 11월 차디찬 감옥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소천(召天)하셨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최후였습니다.



덧글
공베르 신부님 형제분은 1950년 6.25 김성주의 난(亂) 때....
이 부분 말인데요, 형제 두분이 모두 돌아가신 건가요, 아니면 공베르 신부님의 형제분 한분이 돌아가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