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형주의 인재에 대한 재고찰을 고찰함. 2011/04/15 16:06 by 無碍子

나그네님은 형주의 인재에 대한 재고찰에서 이렇게 주장하신다.

제갈량의 친구로 유명한 석광원, 최주평, 서서, 맹공위에 대해서 살펴보자. 서서는 스스로가 유비에게 간 것이라고 보고 다른 이들을 살펴보면 최주평은 한게 없다. 뭘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연의에서만 살짝 나오는데 그것도 삼고초려 처음 찾아갈 때 그때 잠깐 나온다. 맹공위, 석광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두 번째 삼고초려 할때 제갈의 형제들을 만나러 왔다가 유비네를 만나는 것으로 출현이 끝난다. 제갈량의 절친한 친구라는데 뭐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출세에는 관심 없는 ‘은둔지사’들이란 말인가. 그럼 공부하고 한 것은 ‘자기 만족’에만 그쳤을 뿐이니 경천동지할 만한 인재(人才)도 아니거니와 홀로 즐겼으니 학식이 뛰어난지 안 뛰어난지 알 바가 없으니 역시 인재(人材)라고 할수도 없겠다. 서서라면 인재(人才)는 안되도 인재(人材)는 되는 터이다만, 형주에 어떤 인물을 보고 인재의 보고라고 하는 것인가? (중략)

유표의 모사 괴월 또한 조조로부터 ‘형주를 얻은 것보다 괴월을 얻은 것이 더 기쁘다’라고 했지만 괴월은 조조에게 등용되고 나서 ‘태수’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유표의 모사가 조조의 태수가 된다는 것은 ‘실제’에서 써먹기보다는 ‘책상’에서 관리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서의 기록은 이와 다릅니다. 먼저 재야인사였던 석도, 서서, 맹건에 대해 찾아봅니다.

魏略曰 (석)韜仕歷郡守、典農校尉,(서)福至右中郎將、御史中丞 -----三國志 蜀書 諸葛亮傳

汝南孟建為涼州刺史,有治名,官至征東將軍 -----------------------三國志 魏書 溫恢傳

서복은 서서입니다. 전농교위 석도, 어사중승 서서, 정동장군 맹건. 이들이 인재가 아니란 말씀입니까?

이어 유표의 가신집단입니다.

蒯越等侯者十五人。(괴)越為, 光禄勳, (한)嵩,大鴻臚, (방)羲,侍中, (유)先,尚書令;其餘多至大官
--- 三國志 魏書 劉表傳

후작으로 책봉된 사람이 15명이고 그 중 괴월은 광록훈, 한숭은 대홍려, 방희는 시중, 유선은 상서령이 되었으며, 나머지들도 대관이 되었습니다.

도청의 국장~본부장급 인사가 졸지에 중앙정부의 장관급으로 벼락출세를 했습니다. 이는 꺼꾸로 보면 중앙정부의 장차관급 인재가 형주에서 도청의 국과장내지 본부장급으로 있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들이 형주 유표를 보좌 한 인재들입니다.

삼국지연의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조조)撫慰曰:「吾不喜得荊州,喜得異度也。」遂封蒯越為 江陵太守 樊城侯 “나는 형주를 얻은 것은 기쁘지 않으나, 이도를 얻은 것은 기쁘다오.” 라고하면서 강릉태수에 임명하고 번성후에 책봉했다고 합니다. 江陵은 縣급 행정구역이지 郡급행정구역이 아닙니다. 강릉에는 현령이나 현장이 임명되지 태수가 임명되지 않습니다. 이런것을 가리켜 작문이라고 합니다.

위서 유표전에 詔書拜章陵太守,封樊亭侯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뒤에 荊州平,太祖與荀彧書曰 不喜得荊州,喜得蒯異度耳가 나오므로 장릉태수에 임명되고, 번정후에 책봉된 것은 형주가 조조에게 정복되기 전입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갈량이가 승상, 녹상서사, 사례교위에 익주목사를 겸임하고 가절을 받았다고 하나 실제로 높이 봐 줘야 익주목사이거나 부목사입니다. 유현덕이 익주 하나를 가지고 황제에 즉위했으므로 유현덕이 실제로 익주목사이고 갈량이는 부목사급입니다.

거기에 비해 석도는 전농교위, 서서는 어사중승, 맹건은 양주자사에 정동장군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갈량이 보다 낮게 보입니까?

인재들이 우글거리는 조조 정권에서 장차관급이 된 사람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유비정권의 수상보다 더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구글검색창


www http://soakaeofh.egloos.com/

무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