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기벌포는 어디인가? 2011/12/04 19:01 by 無碍子

1. 장항설

상륙전은 매우 어려운 작전입니다. 장항에 당나라군이 상륙했다면 강남에 위치한 부여도성을 공략하기위해서는 한번더 도하작전을 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을 뿐 아니라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소정방이 두 번씩이나 상륙작전을 했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2. 군산설

상륙전을 펴기에는 장항보다는 군산이 더 잇점이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뭔가 하면요. 황산벌 전투를 치룬 김유신의 군대가 기벌포를 방문했다는데 있습니다.

군산이나 장항에 비해 논산에서 부여는 매우 가까우며 또 부여로 가는데 장항이나 군산을 거쳐야 할 까닭이 없다는거죠. 전투로 진친 군대를 이끌고 무의미한 행군을 할 만큼 김유신은 무모한 장수가 아니란 말씀도 드립니다.

그냥 전령만 보내면 될 일인데 김유신의 군대는 기벌포를 방문합니다. 본군은 황산에서 쉬거나 부여도성으로 진군하고 김유신은 막료부만 대동하고 장항이나 군산으로 향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논산과 군산사이는 백제 패잔병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으므로 그 가능성도 낮아 보입니다.

 

 

3. 강경은 어떻습니까?

논산군 강경읍은 연산면에서 매우 가깝고 거기서 당군과 합류해서 강을 따라 진군하면 수월 합니다.

강경은 지금 내륙지방이지만 젓갈의 산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 금강은 내해처럼 항해하였을 거로 봅니다.  

이 날 정방(定方)은 부총관 김인문 등과 함께 기벌포(伎伐浦)에 도착하여 백제 군사를 만나 맞아 싸워 크게 깨뜨렸다. 유신 등이 당나라 군대의 진영에 이르자, 정방은 유신 등이 약속 기일보다 늦었다고 하여 신라의 독군(督軍) 김문영(金文穎 혹은 金文永)을 군문(軍門)에서 목베려 하였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본기

장군 소정방과 김인문 등은 바다를 따라 기벌포(伎伐浦)로 들어갔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당나라와 신라의 군사가 이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지났다는 말을 듣고 왕은 장군 계백(堦伯)을 보내 결사대 5천 명을 거느리고 황산(黃山)에 나아가 신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다. 계백은 네 번의 회전(會戰)에서 모두 이겼으나 군사가 적고 힘도 꺾이어 드디어 패하고 계백도 죽었다.

이에 군사를 합하여 웅진강(熊津江) 입구를 막고 강변에 군사를 둔치게 하였다. 정방(定方)이 왼편 물가로 나와 산으로 올라가서 진을 치자 그들과 더불어 싸웠으나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왕사(王師)를 실은 배들은 조수를 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가며 북을 치고 떠들어댔다. 정방이 보기(步騎)를 거느리고 곧장 그 도성(都城)으로 나아가 일사(一舍) 거리에 머물렀다.

삼국사기 의자왕 본기

의자왕 본기에 의하면 당나라 군대는 백강을 지나 웅진강에서 백제군과 싸운걸로 되어있고, 태종무열왕 본기나 김유신전에는 당나라군의 첫 전장을 기벌포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벌포는 웅진강에 위치해야 합니다.

백강구를 장항-군산으로 보고, 웅진강구를 강경으로 보고, 웅진강구에 기벌포가 있었다면 딱 들어맞습니다.


덧글

  • 야스페르츠 2011/12/04 21:34 # 답글

    사실, 이건 저도 지난 황산벌 토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김유신이 황산벌 전투 이후에 방문한 곳은 기벌포가 아닙니다. 신라군과 당군은 기록 상으로도 "백제" 또는 "백제 아래"에서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곳은 아무리 잘 쳐줘도 기벌포가 아니라 도성 앞 1사나 아니면 그냥 생짜 도성 밑이더군요. ㅡㅡ;;;

    황산벌 영화 때문에 기벌포로 기를 쓰고 갔다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 無碍子 2011/12/05 11:58 #

    양군이 조우한 기록은 무열왕기에만 기록되어있습니다.

    무열왕기에 의하면 기벌포 상륙전 이후 진군한 기록이 없고 김유신과 조우한 이후 나당군이 4로진군했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여 당군은 기벌포에 상륙한 후 신라군을 기다렸을거로 봅니다.

  • 야스페르츠 2011/12/05 12:53 # 답글

    양군이 합류하기로 한 곳은 "백제 남쪽"이며, 이는 도성 남쪽을 의미합니다. 김유신 열전에는 아예 "7월 10일에 백제의 서울 사비성에서 만나자.”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확실히 일어난 사실의 기록이 아닌 작전 계획이긴 합니다만...

    무열왕기의 기록 자체는 만난 장소가 단지 "당군 진영"으로만 나타나고 있을 뿐, 그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열왕기 자체로는 합류한 이후에나 진격을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외 다른 기록은 합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이 소정방 단독으로 진군한 것처럼 나타납니다.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기벌포 합류보다는 원래 작전 계획처럼 도성 밑에서 만났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 야스페르츠 2011/12/05 13:02 #

    아, 그리고 무열왕기의 기록도 사실 별로 문제가 아닙니다. 당군은 기벌포 전투 이후에도 도성 앞 1사에서 다시 전투를 치뤘거든요. 김유신과 조우 이후의 진격과 전투는 도성 앞 1사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아도 논리적으로 하자는 없습니다.
  • 無碍子 2011/12/06 19:26 #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의자왕기사에서 당군이 백강을 지나... 웅진강구에서 싸웠으나 백제군이 패했다는 기록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야스페르츠 2011/12/06 23:19 #

    의자왕기는 좀 애매한 것이, 황산벌 전까지의 기록은 백제 독자의 기록인 것 같습니다만, 그 이후 대당전 기사는 전부 당서를 고대로 베껴쓴 것이라서... 그 둘을 곧바로 조합하기는 어렵습니다. ㅡㅡ;;

    그대로 이해하면 백강을 지나고 나서 웅진강구에서 싸운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기록의 구성을 보면 백강(웅진강)을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웅진강구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차원이동이 나타나는지라...

    신라기나 김유신전에서도 기벌포-웅진강구 전투는 교차검증되는지라, 백강을 지났다는 독자 기록이 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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