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왜정시절 강제징용 2011/10/11 22:02 by 無碍子

신지호가 1941년 영장에 의한 강제징용 주장은 거짓이라고 한 인터뷰기사 때문에 말이 많은데요.

박 후보측은 앞서 1941년 박 후보 할아버지에 대한 징용영장이 날아왔는데 장남인 할아버지 대신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고, 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박 후보 부모가 박 후보를 작은할아버지의 양손(養孫)으로 입적시켰다고 설명했다.

신 의원은 "초기에는 일본이 한국인의 반발을 우려해 국민징용령을 강제시행하지 않고 비행기부품 및 제철용광로 제조자, 선박수리공 등 특수기능을 가진 사람들을 일본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것도 일본 회사 중심의 노무동원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1944년 8월8일부터 비로소 일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징용령이 적용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는 기업체 모집, 1942년부터 1943년까지는 조선총독부 알선, 1944년부터는 강제징용 형식이었다"면서 "박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며,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의 징용영장을 대신할 것 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신지호 “강제징용은 거짓말..가족사까지 조작”

1938년 일제는 마침내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여 조선 민중을 강제로 끌고 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후에도 '국민직업능력신고령' (1939년 1월)을 비롯해 서 많은 노동관계 법령을 발표하여, 노동력의 정확한 파악을 도모하였다. 한편 1939년 7월 일본에서는 '국민징용령(國民徵用令)'이 공포되었지만 조선에서는 민족적 저항을 우려하여 형태를 바꾸어 '모집' 형식의 '노무동원계획'이 실시되어 조선 안이나 일본, 기타 지역으로 강제 연행되어 갔다. 이들은 자기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고, 관청에서 호출하여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갔다가 끌려가는 바람에 가족의 얼굴도 못보고 헤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1940년에는 '조선직업소개소령'이 공포되어 서울, 대구, 부산, 평양, 신의주, 함흥 등 6개 도시에 관영 직업 소개소가 설치되어 보다 대대적인 노동력 동원이 강행되었다. 이와 함께 '종업자 이동 방지령', '국민 노무수첩법' 등도 적용하여 조선이 노동자에 대한 구속을 강화 하였다. 1941년 6월 조선노무협회가 만들어지고, 또 같은 해 12월에는 '국민 근로 보국 협력령'이 시행되어 노동력 동원은 보다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태평양전쟁 개시에 의하여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진 일제는 1942년 3월 다시 보다 대규모의 국민동원계획을 세우고 강제력이 한층 강화된 관알선의 방식으로 다수의 조선인을 근로보국대라는 이름으로 동원하였다. 1944년 2월부터는 국민 징용령에 기초하여 '현원징용(現員徵用)'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이미 중요한 광산과 탄광들, 그리고 군수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현재 그가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서 징용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노동력을 고착시키고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기 위한 것으로, 노동자는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되 그 신분만 바뀌게 되는 것이었다. 4월에는 '긴급학도 근로동원 방책요강', '학도동원 비상조치 요강' 등 각료회의 결정에 기초하여 학생 동원 실시 방침이 만들어지고 4월에는 초등학교로부터 대학. 전문학교에 이르는 전학생을 군수물자 및 식량증산, 국방시설 건설 등 직접 전력 증가에 동원했다. 학생들에게 교실에서의 수업 대신 공장이나 작업장에서의 육체노동을 강요한 것이었다. 한편 '국민 직업 능력 신고령'에 기초하여 기술자, 기능가 48만 5,118명(1994년 5월). 남자 청장년 319만 4,969명, 합계 368만여 명을 등록시켜 강제 동원준비를 정비하였다.

노동자의 결핍이 심해진 1944년 8월부터는 관알선을 존속시키면서 국민징용령에 의해 관에서 발행한 징용영장 한 장으로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 그러나 모두 이 같이 점잖은 방법으로 징용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력의 동원이 힘들어 지자 일제는 서구 중상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 사냥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즉 군청, 면사무소, 경찰서 직원들을 동원하여 길가는 사람,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 심지어는 잠자는 청장년 까지 잡아갔으니 일제의 만행은 이제 그 극도에 도달한 것이었다.

출처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은 징용영장의 발행이 1944년부터랍니다.  

징용고지서 일명 징용영장

학계는 관알선이나 모집도 징용으로 본다고 합니다만. 나는 모집이나 관알선은 부정적유보적인 입장이고 보국대는 징용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신지호가 한 말은 1944년 이전에 징용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징용영장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왈왈 거리지 맙시다.


덧글

  • 백범 2011/10/11 22:09 # 답글

    그마저도 징용 보상금으로 타온 돈 229억을 징용희생자가 아닌 민주투사 나으리들 민주화보상금으로 빼돌려졌더군요.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0&total_id=3689301

    조선하고 동아일보 같은날 보도된 기사는 사라졌는지 없고, 요것 하나만 남았네요.

    저 기사들이 2ch 타고 벌써 일본놈들에게 알려졌으니,

    일제시대에 한인들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주자 라고 말하던 일본내 소수의 양심적 지식인들만 병신 만들었지요. 기껏 징용보상금으로 뜯어낸 돈을 데모꾼 386쓰레기들 보상금으로 빼돌리다니.
  • 無碍子 2011/10/11 22:15 #

    ㅉㅉㅉㅉ.....
  • Speedmaster 2011/10/11 23:15 #

  • net진보 2011/10/12 00:00 #

    헐......
  • 백범 2011/10/11 23:12 # 답글

    덕분에 위안부들 보상금 받는 것만 더 어렵게 되었지요. 뭐...

    그 잘난 민주투사 나으리들 덕분에 말이죠.

    "기껏 보상해주면 뭐하냐, 한국내 좌파 정치꾼들 정치자금이나 용돈으로 지급될텐데..."

    이런 여론들이 나오니 뭐, 그나마 한국 징용이나 위안부에게 동정심 내지는 양심적으로 대하던 사람들만 졸지에 병신되고, 일본우익들만 더 신났습니다. ㅋ
  • walle 2011/10/12 11:15 # 답글

    친족법에 정통하고 해박한 전직 대법관은 당시 대를 잇고 제사를 잇기 위한 것은 족보에 문중에서 의논해서 올리는 경우는 관행이었지만 족보가 아닌 호적을 변경하는 것은 거의 찾기 어려운 아주 예외적인 사례라고 했습니다.

    족보는 사적인 자료인데 반해 호적은 공적인 서류이기 때문에 아들을 경기고까지 보낼 정도로 명석한 박원순 부모의 이례적으로 당시 관행대로 족보가 아니라 호적에 등재함으로써 호적이전으로 얻는 장남과 차남의 동시병영혜택을 기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원순의 말대로 그게 당시 관행이었다면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문중의 족보가 아닌 호적이전을 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호적이전으로 장남과 차남이 동시에 육방으로 빠진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당시 관행이 맞다면 박원순과 똑같은 사례가 매년 수백 건에서 수천 건 이상의 사례가 쌓여 있을테니 그 부분만 검증하면 박원순의 거짓말 여부를 알아낼 수 있겠습니다.

    강제징용문제는 강제징용이야 자발성을 핑계로 30년대에도 강제징용이 있었겠지만 1941년에 박원순 할아버지가 징용영장을 받아 작은할아버지가 박원순 할아버지 대신 강제징용에 끌려갔다는 주장은 1941년에 징용영장이 있었는지 여부만 검증하면 역시 박원순의 거짓말 여부를 알아낼 수 있겠습니다.
  • Karl XII 2011/10/12 13:23 #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전부 서울로 유학 보냈더군요. 첫째아들은 현 경기상고(구 서울상고)로 한국외대 학사로 나왔고 둘째 아들은 경기고에서 서울대를 보냈는데... 가난한 농부의 아들의 저렇게 진학 시키는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 walle 2011/10/12 11:22 # 답글

    작은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호적이전을 했다는 주장은 정말 치졸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정작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인 당숙의 존재를 병역기피 의혹이 터진 후 해명과정에서 뒤늦게 확인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인 당숙의 호적을 작은 할아버지의 호적에서 빼내 박원순 할아버지의 호적으로 옮겨 졸지에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은 사촌동생으로 만들어 버린 일은 박원순이 어떻게 해명할 겁니까?

    수십 년간 작은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면 당연히 작은 할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제사도 같이 지내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작은 할아버지의 하나빡에 없는 아들의 존재를 불과 며칠전까지도 몰랐다니 거짓말을 거짓해명으로 덮느라 참 고생하십니다.
  • 無碍子 2011/10/12 12:41 #

    증조부님도 양자로 가셨는데 호적상의 입양이 아니라 족보에만 양자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기위한 입양은 호적이 아니라 족보상의 입양이이지요.

  • joyce 2011/10/12 11:43 # 삭제 답글

    신지호가 한 말은 1944년 이전에 징용이 없었다는 말과 하나 다를 게 없습니다. 중요한 건 징용영장의 존재여부가 아니라 1944년 일본으로 가게 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인데, 신지호는 44년 이전은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 대신 징용으로 끌려간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거지요. 지금 "왈왈"거리는 건 신지호의 허무맹랑한 주장에 분노하는 자들이 아니라 신지호 자신임을 아셔야지요.
  • 無碍子 2011/10/12 12:41 #

    강제성이 없었단 말이 아니라 징용영장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어휴~~~~~~~~
  • Karl XII 2011/10/12 13:26 #

    문제는 징용영장이 나왔다고 한 부분에서 겠죠. 전 44년 이전에도 사기나 아래 면장쪽에서 강압으로 자의반 타의반(어쩌면 타의보다 더 많이) 간 사례도 있겠는데... 저쪽에서 빼도박도 없이 징용영장이 나왔다고 했으니... 차라리 징용 나갔다고 표현했으면 덜 까였을꺼라고 생각합니다.
  • q 2011/10/12 11:58 # 삭제 답글

    신지호 말은 44년 이전에는 징용영장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단 말이지요 중요한건 강제성여부와 상관없이 44년 8월부터 징용영장이 나와 44년이전인 41년에는 징용영장이란게 없었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박원순이 거짓말을 한건지 아니면 그의 조부가 거짓말을 한 거라 주장하는 거지요 지금 "왈 왈"거리는 건 신지호의 주장을 바람풍이라고 했는데 빠땀뿡으로 왜곡하는 좀비들임을 아셔야지요..뎃헷
  • walle 2011/10/12 13:02 # 답글

    신지호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 일간지 보도를 인용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 2006년 6월 박원순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 실종 선고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며 "여기서는 1936년 이후 작은 할아버지가 행방불명인 것으로 나온다. 이것은 형님 대신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아 강제징용되었다는 박원순 후보의 그간 해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호 의원은 또 다른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박원순 후보 작은 할아버지의 성함은 박두책 씨인데 제보에 의하면 이 분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1936년 내지 1937년에 사할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며 "이에 따르면 박두책 씨는 딸이 태어나기 이전에 사할린에 가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신지호 의원은 이어 "포괄적 강제 징용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인정한 것이 1938년 4월 1일부터인데 박원순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는 그 전에 간 것"이라며 "강제 동원과는 무관한 자발적인 도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재차 공세 시도를 했다.

    그러면서 신지호 의원은 "박원순 후보는 의혹을 풀기 위해선 호적등본을 공개해야 한다"며 "호적등본 공개를 거부하면 호적 조작, 가족사 조작을 은폐하려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원순 후보는 자신의 병역기피 문제가 지적되자 "작은 할아버지가 1941년 형님에게 나온 징용영장을 자신이 대신 이행하기 위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당했다. 작은 할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 양손 입적을 한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었다.
  • 無碍子 2011/10/12 14:39 #

    2006년 판결이라는데 떳떳하다면 호적은 물론 족보와 판결문 공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 2011/10/12 13:18 # 삭제 답글

    본문에서, "신지호가 한 말은 1944년 이전에 징용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징용영장이 없었다는 말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신지호의 브리핑 사진에서 신지호 옆에 있는 판서에는 "1941년 강제징용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라는 제목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진도 그렇고 기사 내용을 봐도그렇고, 그 문제에서 신지호가 가리키는 내용은 징용영장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당시에는 강제징용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문제의 인물이 강제징용됐는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신지호의 주장하려는 내용 자체는 그런 것 같습니다.
  • 無碍子 2011/10/12 14:32 #

    뉴시스
    "1941년에 할아버지에게 징용영서가 날아왔고 동생인 작은 할아버지가 대신하여 사할린에 강제 징용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관계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거짓 주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126935

    연합
    "박 후보의 할아버지가 1941년에 징용영장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 주장이며,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다면 모집에 응해서 간 것이지 형의 징용영장을 대신할 것 일 수는 없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310858
  • joyce 2011/10/12 14:26 # 삭제 답글

    1. 신지호가 논증하고픈 것은 1941년 박원순후보의 작은 할아버지가 "징용"혹은 강제성을 띤 노동력동원이 아니라 자발적 지원에 의해 사할린에 갔음을 증명하고자 함. 이를 위해서는 1944년 징용증명서가 발행되기 전 모든 형태의 노무동원을 자발성에 근거한것으로 일반화 하여야 함. 기자회견은 바로 그걸 주장하는 것임. 징용영장의 존재여부와 관련없이 1940년대 초반에도 사실상 강제적 노무동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데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것이 정설이라면 신지호는 그런 쓸데없는 주장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거죠.

    2. 박원순 조부쪽 가족에게 설사 징용영장이 발부된 적이 없다하더라도, 그것이 "징용"이었다면 그래서 형대신 동생이 사실상 끌려가게 되었다면, "징용영장"의 유무사실 확인만 남을 뿐, 그 내용성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점. 상황이 이런데, 신지호는 그냥 기자들 불러모아놓고 "1941년는 징용영장이 없었다'라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위안부"가 끌려간 기록은 없고 스스로 지원한 기록은 있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객관적 팩트만을 전달하는 것인지 묻고 싶군요.

    3. 이 분위기로 간다면 신지호는 "사할린에 가서 조선인들이 갑부가 되었다"라고도 충분히 주장할 것 같은 기세. 박원순 까고 싶은 마음 이해는 하는데, 박원순 가족 까다가 당시의 기억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까지 분노케 하는 x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죠
  • 無碍子 2011/10/12 14:34 #

    연합

    박 후보측은 앞서 1941년 박 후보 할아버지에 대한 징용영장이 날아왔는데 장남인 할아버지 대신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갔고, 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박 후보 부모가 박 후보를 작은할아버지의 양손(養孫)으로 입적시켰다고 설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311053

    징용영장이라는 글이 안보이십니까?
  • 몽몽이 2011/10/12 20:30 #

    난독도 반복되면 종교의 경지에 이르는군
  • 나츠메 2011/10/12 21:13 #

    너 이 사기꾼 색희야 누가 '1940년대 초반에도 강제적 노무동원이 광범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디? 실증주의 역사가 중에 누가 그런 소릴함? '카더라 통신'이나 한 두명의 증언말고 정확한 팩트를 대고서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기 바람.
  • 시울음 2011/10/13 04:53 #

    신지호 씨가 기자회견에서 언제 1944년 이전의 징용은 강제성이 없었던 자발적 행위였다! 라고 일반화를 시켰다고 그게 핵심이라고 하시는데 그건 님의 순전한 뇌내망상이고요, 연합뉴스에 이런 구절이 있네요.


    `음주방송' 논란으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 대변인에서 물러난 뒤 `박원순 저격수'로 변신한 신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작은할아버지가 형을 대신해 사할린에 강제징용됐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일반화? 풉 ^ㅅ^
  • bons 2011/10/12 15:22 # 답글

    아... 며칠 사이 시장후보 관련해서 이글루스에 몇개 글이 올라오는데 좀 답답하네요,,,
    저 신지호씨를 엄청 싫어하는 것부터 밝히면서,,,, ㅋ

    결국 "징용영장"이 없던 시절에 "징용영장"이 날아왔다고 거짓말 했다는게 핵심인데,,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없다는게 법적 판례(?)인듯 한데,, 당시 징용당한 사람입장에서 "법적요식이 갖춰진 공식적인 징용고지서"만 징용영장으로 봤을까요? 어떤 식으로든 문서형식의 공고문을 보더라도 영장이라고 표현을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근데 더 중요한 거는 "징용영장"이 있었는냐는 사실보다 끌려갔다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반대입장이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가족사를 파해칠 필요가 있는가 싶습니다. 정말 "친일"하면서 같은 나라사람 갈취해서, 후세까지 떵떵 거리며 잘사는 후손들도 "너거 할아버지 친일했지" 라고 이야기해도 당사자는 듣기 싫을 겁니다.

    하물며,, 그당시 강제로 끌려가서서 고생하신거 생각만해도 억울할텐데,,,,,,,, 용지한장 받았냐 안받았냐, 기억이 잘 못되서 햇갈려서 충분히 실수할 수 있는 걸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지호 이분 위안부할머니 관련해서 강의할 때부터 다른 건 몰라도 일본과 우리나라 간의 역사의식에 대해서는 쓰레기 라고 생각합니다..
  • 담배피는남자 2011/10/12 17:50 #

    난독증 환자들 진짜 많네...
  • bons 2011/10/12 19:59 #

    어떤 부분에서 제가 잘 못 이해햇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나츠메 2011/10/12 21:18 #

    이보세요. 징용영장이 없는 상황에서 징용을 갔다면 자발적 징용이거나 또는 지역사회의 압력에 의한 징용이지 그게 '총독부의 강제적 징용'은 아닌 겁니다. 그런 상황에 대고 "끌려갔다" 운운하는 건 뭡니까?

    끌려간 건지, (압박의 겸한) 권유를 받은 건지, 그도 아니면 진짜 자발적인지는 당사자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고 '끌려간 것'이라고 단정짓고, 그 단정을 근거로 다시 주장을 하시나요?

    "친일하면서 같은 나라사람 갈취해서 떵떵 거린다?" 대체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그러는 사람이 누가 있고, 그러한 인구가 몇 명이나 된답디까? 좌파 교사 역사가들의 사기에 세뇌되서 그 따위 망발을 하려거든 아예 말을 꺼내지 마세요.
  • 담배피는남자 2011/10/12 21:20 #

    지금 박원순 가족이 피해자냐 아니냐를 따지는거 아닌데 말이죠.

    박원순은 "당시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서"입적했다라고 하는데
    지금 무애자님은 "입적을 해야 될 정도로 순사들이 와서 붙잡아가는건
    좀 더 뒷날의 얘기다"라고 말하고 있는겁니다.

    그럼 그 전엔 자발적으로 갔느냐도 아니고...
    이미 게시글에 써놨네요. 그 전까진 취업이니 뭐니 해서
    구라를 쳐서 징용데려간거라구...
  • 담배피는남자 2011/10/12 21:21 #

    그리고 말이죠...

    어느 친일파의 자손이 [떵떵]거리면서 삽니까?
    다들 숨기려고 들지...
  • ??? 2011/10/12 17:46 # 삭제 답글

    44년 이전의 징용이라고 해서 그냥 사람이 나와서 '오늘부터 너 징용' 한마디 구두로 하고 데려갔을리는 없겠죠. 뭔가 날아오긴 날아왔을테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 그게 44년 이후의 '징용고지서'와 구분해야 할 이유나 실익이라도 있을까요?

    아직도 대일본제국 시절이라서 당시의 <부당한 징용에 대한 배상 청구> 같은거라도 한다면야 정식 징용고지서 받고 갔느냐 아니냐가 법적 쟁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그걸 구분해야 할 이유가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위의 분들도 지적하신거지만, 신지호의 주장에 따르면 44년 이전의 징용자들은 다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해서 간 사람들인거지요. '징용 영장'을 받았을리 없으니까.
  • 몽몽이 2011/10/12 20:36 #

    영장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대리 징용',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으로 보임?
  • ??? 2011/10/12 21:04 # 삭제

    글쎄요? <영장이 없는 징용>이 과연 거부할 수 있는것이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겠죠.

    실제 명목상으로는 강제가 아니더라도 할당량 내려주고 아래서 맞추는거야 흔한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렇게 내려온 '자발적 모집자' 할당이라는걸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 '영장'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할당량이 정해진 징용이라면, 그거야말로 '대리 징용'의 가능성은 어마어마하게 높은것 같은데요. 위에서야 누굴 딱 찍어서 그놈을 데려오라는게 아니라 머릿수를 맞춰오라는거니까, 누가 가든 상관없는 문제죠.

    그야 법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그건 대리 징용이 아닐수도 있는데, 적어도 당사자들은 누구누구한테 영장이 떨어졌는데 대신에 누가 징용갔다. 뭐 이런식으로 인식하는게 아주 당연한 일일것 같습니다.

  • 나츠메 2011/10/12 21:24 #

    님은 영장이 없어도 국가행정력에 의한 징용이 강력하게 집행되었으리라 가정하고 있는데, 당신 말대로라면 1941년 경에 굳이 총독부가 민간 사업체에 모집 알선을 허가하지 않았을 겁니다.

    직접 징용하면 되니까요. 참고로 41년경에는 아직 할당량조차 정해지지 않은 시점에 할당량 운운하니 코미디입니다 그려.
  • ??? 2011/10/12 21:56 # 삭제

    나츠메 // 41년이면 조선노무협회가 발족한 해인데.......중요한것은 위에도 썼지만 그걸 당사자가 거부할 수 있느냐 없느냐죠. 법적으로 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말입니다. 거부할 수 없으면 그건 그냥 영장이죠.

    할당량의 이야기는 예로 든 것이지만 저런데서 머릿수 맞추기 게임이 없이 순수히 자원자들을 관리하는 일만 했을거라고는 믿기 어려운데요.
  • joyce 2011/10/12 21:26 # 삭제 답글

    이 블로그 주인장은 징용영장의 유무가 신지호 기자회견의 핵심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싶은 것 같은데, 실제로 신지호가 하고픈 말은 박원순의 입양이 병멱면탈을 노린 호적조작이라는 거죠. 그걸 입증하기 위해서 징용영장의 유무를 들고 나온걸 애써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한데. 제발 좀 더 솔직해 지시죠?

    실증사학이요? 징용이나 위안부의 역사는 대개 가해자가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의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징용영장이 설사 없었더라도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노무동원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면 아무 이유없이 동원되야했던 사람들에게 징용이란 너무나 당연한 인식이죠.

    이런 인식에 동의한다면 신지호가 징용영장이 없었다는 주장 그래서 그가 진짜 하고싶은 말 자체가 얼마나 가해자의 역사관과 비슷한지를 알 수 있는거죠. 물론 주인장님에게 이런 역사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요.

    가족사를 중시하는 수꼴출신이라고 본인을 소개하시면서 정작 남의 가족사를 이렇게 난도질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꽤나 관대하신것 같군요. 아 참 그리고 이 블로그는 "색히"라는 욕지거리를 해도 되는 곳인가 보죠? 저 나츠메라는 인간 남의 블로그에 와서 욕질이나 하는데 그것도 관대하게 두실생각인지
  • cadpel 2011/10/12 23:33 #

    할말없어지니인신공격들어가시는놀라운위엄.
  • 백범 2011/10/13 17:41 #

    뭐이 어쩌고 어째? 야 이놈아 그런걸 아는 놈들이 그래 박정희 가족관계를 너덜너덜 걸레가 되도록 까느냐?

    전두환에 대해서는 아예 극단적인 증오 수준이데? 니가 이런 지적할 자격은 되냐?
  • 백범 2011/10/13 17:44 #

    이건 또 뭐냐...

    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5/01/003000000200501311516001.html

    http://www.bobaedream.co.kr/board/bulletin/view.php?code=politic&No=64527

    http://nodoubt.egloos.com/5367100

    http://www.ilyoseoul.co.kr/index2.php?idx=55122

    어디 더 찾아와보리?

    뭐? 난도질, 관대??? 박정희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 이승만과 김구, 전두환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와 어떻게든 흠집내지 못해 안달인 인간들이 무슨...

    요즘은 백선엽도 너덜너덜하게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더만.


    ps : 하긴 김대중, 노무현, 김영삼, 여운형, 장준하, 김원봉, 박헌영 같은 인간들은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눈이니 어련하겠나?
  • joyce 2011/10/13 00:45 # 삭제 답글

    to cadpel/ 할말 다 했거든요. 신지호의 인터뷰를 보고 그가 그냥 "징용영장"이 없었을 뿐임을 알리고자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석하신다면 미안하지만 그런분들은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채 하는 거지요. 저는 주인장님이 후자쪽이라고 확신합니다만.

    자신의 정치적 포지셔닝에 대해 솔직하라는 말입니다. 나는 "징용영장"이 없었다는 객관적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내가 언제 박원순가족한테 뭐라 했나? 이거야 말로 비겁한 행위입니다. 신지호는 그런 의미에서 비겁하진 않죠. 징용영장이 발부되기 전 노무동원자체에 대해 자발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역사관을 자신있게 커밍아웃 하지 않았습니까? 신지호 뒤에 숨지 마시고 속에서 하고픈 이야기를 하세요.
  • 無碍子 2011/10/13 13:26 # 답글

    말귀 어두운 분들 많은데요, 쟁점은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아니라 징용대상자의 이름이 쓰여진 징용영장(징용고지서)입니다.
  • 백범 2011/10/13 17:40 #

    말귀가 어둡긴요. 무슨.

    다만 지들이 보고 싶은 '사실'만 골라서 보고 믿으려하고, 그걸 또 남에게까지 억지로 강요하려고 드니 그게 문제지...

    진실이나 사실 보다 내가 보고싶은 것만 골라서 취사선택합니다. 그러면서 지들이 마치 깨인 인간 처럼 구는건 참으로 볼썽사납더군요.
  • 근데 2011/10/14 01:02 # 삭제 답글

    인용한 두번째 글(독립기념관)에서 "1939년 7월~강제 연행되어갔다"라는 대목은 뭔가요? 1944년에 나왔다는 영장얘기는 없지만 강제적인 징용 자체가 있었다는 거 아닌가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구글검색창


www http://soakaeofh.egloos.com/

무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