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의자왕의 3천궁녀 2011/08/09 12:56 by 無碍子

삼국사기를 까려면 삼국사기로 이야기 해야지요.

삼천 궁녀와 놀아났느니,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 하는 식의 비난은 타락한 군주(君主)를 비난할 때 유학자들이 좋아하는 메뉴다.

과연 그럴까요?

十六年 春三月 王與宮人淫荒耽樂 飮酒不止 佐平成忠或云淨忠極諫 王怒囚之獄中 由是無敢言者 成忠瘐)死 臨終上書曰 “忠臣死不忘君 願一言而死 臣常觀時察變 必有兵革之事 凡用兵 必審擇其地 處上流以延敵 然後可以保全 若異國兵來 陸路不使過沈峴 水軍不使入伎伐浦之岸 擧其險隘以禦之 然後可也” 王不省焉

16년(656) 봄 3월에 왕은 궁녀와 더불어 주색에 빠지고 마음껏 즐기며 술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좌평 성충(成忠 혹은 정충(淨忠)이 극력 간언하자 왕은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성충이 옥중에서 굶어 죽었는데 죽음에 임하여 글을 올려 말하였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원컨대 한 말씀 올리고 죽겠습니다. 신이 늘 때[時]를 보고 변화를 살폈는데 틀림없이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군사를 쓸 때에는 반드시 그 지리를 살펴 택할 것이니, 상류에 처하여 적을 맞이한 연후에야 가히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의 군사가 오면 육로로는 침현(沈峴)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서 험난하고 길이 좁은 곳[險隘]에 의거하여 적을 막은 연후에야 가할 것입니다.”
왕은 살펴보지 않았다.

삼국사기 의자왕(16년)

 

百濟古記云 扶餘城北角有大岩, 下臨江水, 相傳云, 義慈王與諸後宮知其未免, 相謂曰: 寧自盡, 不死於他人手, 相率至此, 投江而死, 故俗云 墮死岩. 斯乃俚諺之訛也. 但宮人之墮死, 義慈卒於唐, 唐史有明文,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전하기를 부여성(扶餘城)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아래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의자왕과 여러 후궁(後宮)들은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서로 이르기를, 차라리 자살해 죽을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서로 이끌고 여기에 와서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했다. 때문에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岩)이라고 하나 이것은 속설(俗說)이 잘못 전해진 것이다. 다만 궁녀(宮女)들만이 여기에 떨어져 죽은 것이오 의자왕이 당나라에서 죽었다는 것은 당사(唐史)에 명문(明文)이 있다.

삼국유사 太宗春秋公

삼천궁녀는요?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1/08/09 13:48 # 답글

    조선시대 민제인의 '백마강부'라는 시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문학적인 상징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PS: 그리고는 문제될게 없다고 발뺌하겠죠. 뭐, 남침유도론 논쟁때도 그랬다가 개발리고도 정신승리했는데 말입니다.
  • 無碍子 2011/08/09 18:51 #

    그 포스트의 덧글들이 가관이더군요.
  • 백범 2011/08/09 19:05 # 답글

    의자왕이 누군지 모르는 학생들도 있더군요. 중고생 교복을 입었는데도...

    갈수록 걱정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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