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백제 최후의 전장 황산벌과 웅진강 2011/08/05 20:55 by 無碍子

먼저, 소생은 황산벌에서 붕괴된 백제군이 웅진강 전장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견해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뎃글류 갑(이 글도 고소감이 된다는 생각은 안하나?)

1. 황산벌에서 웅진강까지 하루안에 이동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설
우리 조부님은 백릿길을 조반 잡수시고 가서 볼일 보시고 돌아와 저녁 잡수셨답니다. 또 집안 형님이 사범학교 다니실 때 토요일 하교 후 백릿길을 걸어 시골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일요일은 오전에 농사일 거들고 점심 먹고 보릿쌀 자루, 좁쌀 자루, 고추장 항아리, 된장 항아리, 간장병 등이 든 보퉁이를 들고 인근 모읍내(지금은 시가 되었습니다.) 자취집으로 가서 저녁 해 먹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례는 증인도 많습니다.
포장도로라던가 패트병이나 타파 그릇, 비닐 같은 게 없던 시절이며, 조깅화나 운동복은 구경도 못하신 조부님은 도포입고 갓쓰고 고무신 신고 하루에 백릿길을 왕복하셨습니다. 집안 형님이 다닌 사범학교는 대학과정이 아니라 고등학교 과정입니다.
백릿길로 구전되는 거리는 다음지도로는 직선거리 27Km입니다. 구불구불한 길에 산 넘고 물건너 간 길이라면 백리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소생의 고향인 산악지대에 비해 충남은 평지입니다.
그러므로 잘 훈련된 군인이라면 하루 백리 정도는 쉽게 갈 수 있다고 보면 아침은 황산벌에서 깨지고 저녁은 웅진강에서 깨지는 거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2. 백제군이 웅진강으로 간 까닭은?
계백군이 황산벌 전투에서 전멸한 게 아니라 최고 사령관의 전사로 패닉상태에서 붕괴되었을 것으로 보고요.
패잔병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최고 사령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을 겁니다. 백선엽 장군의 증언에 따르면 6.25 때 장교들은 육본의 인사명령 없이도 자기들을 맡길 사단장을 찾아 갔다고 합니다.
백제군도 황산벌에서 편제를 유지하면서 후퇴한 게 아니고 도망가는 도중에 중견 장교들이 병사들을 수습해서 웅진강으로 물러간 것으로 봐도 됩니다.
패닉에서 정신을 수습하였다 하더라도 최고 사령관이 전사한 황산벌 전장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웅진강으로 달려간 이유는 그곳에는 전필승 공필취를 자랑하는 무적의 걸상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긴 행군에 체력은 고갈되어 전투에는 도움도 안되고, 패닉은 전염된다하므로 그들이 패닉을 전염시켜 걸상왕의 백제 주력군이 붕괴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덧글

  • ㄱㅇㅈ 2011/08/05 22:08 # 삭제 답글

    저 덧글이 표현이 좀 과격한 것은 사실인데 블레이드님께 저런 시비에는 이제 일절 상대를 하지말고 그냥 법적으로 조치를 취하라는 말은 바른 말같은데?
  • 無碍子 2011/08/05 23:45 #

    누가 블레이드님께 사회 낙오자, 지능 지체자, 사회 낙오자, 정신병자, 몸병신 등 모욕적인 단어를 쓰던가요?
  • ㄱㅇㅈ 2011/08/05 23:50 # 삭제

    허이구, 이분은 다른 밸리만 계시다가 오늘 처음 여기 오셨나?
  • ChristopherK 2011/08/06 00:54 #

    트랙백이나 핑백 중에서는 못봤습니다.

    비로그인이야 이쪽이나 저쪽이나
  • 몽몽이 2011/08/06 10:40 #

    비로긴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 ㄱㅇㅈ 2011/08/07 20:37 # 삭제

    몽몽아.
    너는 네 실명이 몽몽이냐?
  • 로자노프 2011/08/05 23:06 # 답글

    1번과 관련되어 제 블로그에 제보가 들어왔는데 황산벌에서 웅진강까지는 산악지대고 황산벌에서 사비성까지의 경우 말이 평지지. 20세기 중반까지 늪지대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루 안에 이동하는 건 좀 힘들어보입니다만.
  • 無碍子 2011/08/05 23:53 #

    고대의 지리나 지형정보는 알수 없습니다.

    신라군이 당 진영에 도착한 날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나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공격한 날이 12일이므로 신라군이 당군과 합친날은 11일로 봅니다. 치중대 없이 경장으로 행군한 백제군이 더 빨랐지 않겠습니까?

  • 로자노프 2011/08/06 00:00 #

    그런데 그 백제군이 패잔병이라는게 문제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30km라면 그닥 만만한 거리가 아니죠. 특히나 황산벌-웅진강 코스의 산악지대는 백제시대 당시에도 존재했을게 뻔하고요.
  • 나빠군 2011/08/06 03:10 # 답글

    군산하구둑 생기기 전에는 부여 넘어서까지 바닷물이 올라 왔다고 합니다. 증거로 부여지역에서는 바닷물고기인 우여가 백마강에서 많이 잡혀서 지역 향토음식이 되었고 심지어 복어도 잡혔습니다. 저희 어머니 어렸을 땐 밀물때 복어 잡아다가 수제비에 넣어 드셨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7월쯤이면 장마철인데 지금은 드물지만 80년대 후반까지 장마나면 부여 구드레 둔치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확실한 기억으론 논산은 97년도인가에 논산천이 범람했었죠.

    지도만 봐도 계룡산쪽으로 이동하는 경로엔 꽤나 많은 하천이 존재합니다. 장마철에는 당연히 하천의 물이 불어 날테니 피해서 가야할 겁니다. 그렇다면 최단 경로가 되는 곳은 상월면에서 하천을 도하해서 이인쪽으로 빠져서 그대로 공주로 올라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의외로 200-300미터급 야산이 많디는 겁니다. 돌아 가야하니 이동거리는 늘어 나면 늘어 났지 줄어 들진 않을겁니다.
  • 나빠군 2011/08/06 03:27 # 답글

    거기에 전투가 끝난 후에 온전한 체력을 가진 병사가 몇이나 될까요? 또 행군이란게 시간이 지날 수록 이동속도는 떨어 집니다. 현대 군에서 실시하는 행군도 25km내외를 도보 이동시의 한계치로 보는데 도로가 없던 당시에 야지에서 행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거라 생각됩니다.

    첨언하자면 계룡산 루트로 가면 하루 내에 가로 지르기 어렵습니다. 의외로 산악지형이라서 꽤나 험합니다. 덕분에 이곳에 꽤나 많은 수의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여쪽으로 가는 방법이 있긴한데 기후조건이 현재와 비슷하다고 놓고 보면 이쪽은 강 범람에 장마로 인한 늪지대가 엄청 생길 지형입니다. 지금도 늪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방어자 입장에서 보면 꽤나 유용한 지형입니다. 더구나 사비성도 부소산 위에 있을 정도니까요.

    황산벌(지금의 연산 근방)에서 공주의 곰나루까지 전투를 끝낸 병사가 히루만에 주파가 기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공주 가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배산임수 지형입니다. 근처까지 와서 웅진성으로 가는 것도 꽤나 돌아 가야 합니다. 거기에 적군의 습격을 예상한 행군이라면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만에 주파할 상황은 아닌것 깉네요.
  • 좋았군 2011/08/06 17:50 # 삭제

    그렇다면 육로로 고생스럽게 걸어가지 않고 배를 타고 쉽고 편하게 내려갔겠군요.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꼴이라니 ㅉㅉㅉㅉㅉㅉ
  • 크핫군 2011/08/06 12:32 # 답글

    고소할까 말까 고민중 ㅡ,.ㅡ
  • m1a1carbine 2011/08/06 12:39 # 답글

    리얼씨랑 저랑 크핫군까지 같이 엮어서 디스하는군요

    혹시 정신질환 경력을 가지고 저짓을 해대면 빼도박도 못할 고소감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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