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사저 감고당(感古堂) 2011/07/26 20:40 by 無碍子

유인촌의 민비시해 드립에 관한 글을 쓰다가 명성황후의 사저 감고당이라는 집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숙종 시대 장희빈의 라이벌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서인 되었을 때 거처하던 집이 나중에 그 부친 민유중(閔維重)이 살게 됩니다.

영조임금이 즉위한 후 그 집에 들러 감고당이라는 편액을 하사하고 인현왕후에게 인현성모(仁顯聖母)라는 어마어마한 호칭을 올려드립니다.

민유중의 아들 민진후는 의정부 우참찬과 개성유수 그 아들, 민익수는 이조판서, 민익수의 아들 민백분은 벼슬하지 않았고 손자 민기현은 예조참판과 개성유수를 지냈으며, 그 아들이 명성왕후의 부친이신 민치록 어른이십니다. 민치록도 영주군수와 사도사 첨정을 역임했습니다.

명성황후의 친정집안은 인현왕후의 친정붙이로 대대로 조정에 출사한 명성이 뜨르르한 집안입니다.

그런데도 명성황후는 몰락 양반의 후예로 어렵게 살았다는 소문이 있지요. 대원군도 마찬가지로 왕실 종친으로 사복시 제조와 오위도총부 도총관이라는 충분한 대접을 받고 안동김씨 세도가 집안과 교분을 나눌 정도로 살았습니다. 거지꼴로 잔칫집을 기웃거리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감고당 : 출처 여주군청 명성황후 생가 홈페이지

인현왕후가 살던 감고당은 친정 자손들이 대를 이어 물려받아 민치록에게 돌아갔고 그 집에서 자란 규수민씨는 나중에 왕비가 됩니다.

이리보면 집에도 팔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련글

유인촌의 민비드립과 명성황후 그리고 대원군과 대원왕

유인촌의 민비 시해드립

 

 


덧글

  • 나츠메 2011/07/26 21:16 # 답글

    흥선대원군의 파락호 이미지는 식민지 시절에 나온 소설 <<대원군(대원왕?)>>에 나온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여 -_-;;;)
  • 無碍子 2011/07/26 23:03 #

    그 이야기가 소설에서 시작된게로군요.
  • 한뫼 2011/07/27 03:01 # 답글

    갑자기 드라마 동이 가 생각나는데 말입니다. "울 엄마 구박 않해줘서 감사" 였을 까요?
  • 진성당거사 2011/08/03 11:07 # 답글

    쌍문동 덕성여대 캠퍼스 안에 있었던 시절 모양은 정말 가관이었지요. 지금 모습도 복원이라 하기는 영 애매한 모습인지라.....위에서 나츠메님이 쓰신 덧글에 첨언하자면 그 소설은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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