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한국 고랭지배추 력사 2010/10/11 23:16 by 無碍子

5.16 박정희의 난 이후 우리농업에 일대 전기가 찾아옵니다.
다카끼는 식량작물만 농사짓던 농촌에 환금성 작물을 기르도록 권고했어요. 채소원예, 화훼원예 그리고 과수원예가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 후 우리 농촌에서는 식량작물보다 원예에서 얻는 소득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원래 우리나라는 여름에 속이 꽉찬배추로 김치 즉 김장배추 같은 그런 배추로 김치를 담가먹지 않았어요.
봄여름에는 얼갈이배추나 열무로 김치를 담가 먹었어요. 형편이 되는 집에서 양배추 겉절이를 해 먹고요.

배추는 서늘한 기후라야 자라고 또 어릴 때 너무 추우면 속이차지 않고 꽃대가 나와 배추를 버립니다.
그런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강원도 일대에 군사도로를 정비하면서 태백준령에 길이 열렸어요.
거기에 배추를 심으면 여름에도 속이 찬 배추로 김치를 담가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근데 문제가 있지요. 여름 배추 종자가 없었어요.
일본에서 배추씨를 수입합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종자가 무쌍배추였을 거 같은데요. 50일이면 속이 차는 기똥찬 배추였어요.
그런데요 무쌍배추는 잎과 줄기가 두껍고 속이 찰 때쯤에는 꽃대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배추를 가르면 몽실몽실한 꽃봉오리로 가득찬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잎과 줄기가 두꺼워 맛도 별로였는데 일본인들 입에는 맞는 품종 이었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 배추가 아니면 여름에 포기김치를 못먹었으니 그 배추라도 감지덕지였지요. 당연히 일본에서 수입한 종자로 기른 배추니 값이 비쌌고요.

우리 종묘회사에서 우리 땅에 잘 자라고 우리 입에 맞는 고랭지 배추종자를 만들기위해 노력노력하여, 80년대 초에 우리 땅에 잘 자라고 우리 입에 맞는 고랭지 배추 종자를 만들어 냅니다. 이 배추는 60일 정도 기르면 속이 꽉차고 맞도 우리 입에 맞았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비교적 싼 값에 얼갈이배추김치가 아닌 포기배추김치를 여름에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종자를 만들던 종묘사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메이저 종묘사로는 동부한농 한 개회사만 남기고 모두 다국적 종자회사에 팔려갔어요.
겨우 독립한 종자시장은 다시 외국으로 넘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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