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시대 정보통신강국의 기틀 2010/10/09 15:48 by 無碍子

5.16 박정희의 난 이전 대한민국 전화가입자는 겨우 4만명 정도였습니다. 전화기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요. 전화 건다고 밥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다카기 독재치하에서 경제는 발전했습니다. 김정일이 처럼 독재라고 경제가 몰락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의 발전으로 문화를 향유하고 싶은 욕구와 정보통신의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1970년대 매매가 안되지만 저렴한 청색전화 대기자가 수십만만 명이었고, 매매가 가능한 백색전화 한 대 값은 200만원을 넘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내 집값이 200만원할 때입니다.
그리하야 1977년 12월 13일 KIST의 전자통신연구소를 독립시켜 한국통신기술연구소로 발족시킵니다. 한국통신기술연구소는 광통신케이블과 TDX(전전자교환기)를 연구했습니다. 연구소만 설립한다고 해서 뚝딱 신제품이 만들어지고 우리나라가 통신강국이 되는 게 아니지요.
1985년이 되어서야 대도시들이 DDD자동통화권이 되고 산간벽지는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989년 전국 DDD가 개통되자 얼마나 기뻤던지 김혜림이 DDD 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워낙 인기가 많아 그해 MBC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박정희 시대에 시작한 광케이블과 TDX가 전두환 시대에 결실을 맺어 지금 우리가 그걸 향유하고 있지요.

그래도 아직 인터넷은 까마득합니다.
1980년대 천리안과 KETEL이 데이터통신과 전자사서함(이메일)서비스를 했지만 대중적인 것은 아닙니다. 전화망을 이용한다는 게 문제지요. 통신모뎀 가격도 만만치 않았고요.
아직 PC운영체제는 도스였습니다. 엄격히 말해서 MS도스+MS윈도를 같이 쓰던 시절입니다. 윈속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도 가능했습니다. 통신 프로그램(에뮬레이터)는 ‘이야기’를 썼던 것 같고 ‘하늘소’라는 게 생각나는데 회사이름인지 서비스 이름인지 헷갈리네요.
그 와중에 나우콤에서 나우누리라는 PC통신을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드디어 삼성이 뛰어 듭니다. 삼성유니텔을 뒤이어 금성도 끼어들고 대혼전의 시기는 통신사 전용 에뮬레이터가 출시되어 인터넷접속도 약간 쉬워집니다. (본햏이 삼성유니텔의 창립회원이기도 합니다. 1년간 무료로 인터넷을 하게 해 준다고 해서 신청했었지요)
그러다가 초고속 인터넷이 출시되면서 PC통신 사업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삼성유니텔에서 정보검색을 하던 부서에 근무하던 분이 네이버라는 인터넷 정보검색 서비스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소문에 의하면 전화로 인터넷 가입하면 그 다음날 개통시켜주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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