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백범 김구 주석님이 집권하셨다면 친일파를 청산하셨을까? 2010/08/03 22:26 by 無碍子

1. 일본 황군을 대한민국국군으로 만드시려던 백범
8.15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일본군 소속 한적장병을 광복군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카끼마사오 즉 박정희가 광복군 출신이라는 헛소리가 지금도 나오는 이유가 되십니다. 즉 백범께서는 일본군출신을 처벌하실 의사가 없었으며 황군이 대한민국국군으로 군복을 갈아입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2. 백범께서는 총독부 고위관료를 청산하지 않고 껴안으셨습니다.
백범께서는 귀국 후 내무부 산하에 총독부 고위관료 출신으로 <<행정연구회>>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총독부 관리가 대한민국 관료가 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3. 백범께서는 총독부 경찰로 대한민국 경찰을 만드시려 했습니다.
임정 포고령인 國字 제1호, 2호를 반포했는데요. 이 포고령의 작성자는 총독부 조사과장 출신 최하영과 함남경찰부 보안과 경시출신 한동석이었습니다. 백범의 친일파에 대한 대접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국자 제1호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國字 第一號

壹. 현재 전국 行政廳 소속의 경찰기구 及 韓人 직원은 전부 본정부의 지휘하에 예속케함.
貳. 託治반대의 시위운동은 계통적 질서적으로 행할것.
參. 폭력행위와 파괴행위는 절대 금지함.
四. 국민의 최저생활에 필요한 식량연료 수도 전기 교통 금융 의료기관 등을 확보에 대한 방해를 금지함.
五. 不良商人등의 폭리매점 등은 엄중 取締함.

大韓民國 臨時政府 內務部長 申翼熙

미군정청 소속 한국인경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예속되어 지휘를 받으라고 합니다. 군정청소속 한국인경찰이라는 말은 전직 총독부경찰이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것쯤은 아시죠?
대한민국임시정부 포고령(국자1호)으로 총독부 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이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됩니다.

그러함에도 시그마님은 백범은 친일파 문제에 있어서 권력기반이 취약하여 친일파들을 끌어들인 이승만과 다르게 친일파들 일부나마 처단했을것이라고 하신다.

내가 이런 덧글을 달았더니 지워버리신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 의문에 답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백범의 권력기반이 우남보다 더 공고했습니까?
2. 백범께서 친일파를 청산하셨을 것으로 주장하시는 근거가 뭔지 궁금합니다. 

푸념,
휴가 중에 더워에 지쳐 시원한 얼음굴을 기웃거리다가 덧글을 달았더니 시그마님께서 지워버려서 포스팅합니다. 날씨가 보통 아니게 덥습니다. 염천에 모두 건강하십시오.
추가, 그분은 트랙백을 지웠군요.


덧글

  • 心새 2010/08/03 23:16 # 답글

    누구라도 좋으니 시원한 답변 좀 2人

    (좀 슬퍼지려고 그래요ㅠ
  • 無碍子 2010/08/04 20:09 #

    시원한 답변을 해 주실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 나야스 2010/08/03 23:17 # 답글

    김구 선생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섭게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김구 주석이 머무른 경교장부터도 친일 금광재벌 최창학의 별장 아니었나요?
    자신이 영도하는 임시정부 세력에 대한 충성만 맹세한다면 이완용 급이 아닌 이상 누구든 용서했을 겁니다.
  • 백범 2010/08/04 09:15 #

    방응모씨를 한독당 중앙상무위원하고 재정부장으로 등용했습니다. 김구암살후 방응모는 2대 총선에서 한독당 공천으로 서울 종로에서 출마했으나 낙선... 곧 6.25로 납치...

    경교장(죽첨장)을 제공한 최창학 문제도 짚고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 無碍子 2010/08/04 20:10 #

    정치는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지요.
  • 타누키 2010/08/03 23:17 # 답글

    잘봤습니다.
  • 無碍子 2010/08/04 20:10 #

    별말씀을 다 .....
  • 시그마 2010/08/03 23:47 # 답글

    김구선생도 친일파 청산은 나갔을듯..대신 생계형 친일파들을 살려주되 일본군,일본 경찰에

    빌붙어 독립운동가 탄압하던 악질형 친일파들은 처벌했겠죠.
  • 海凡申九™ 2010/08/04 14:17 #

    위에서 이미 기용했다고 적었는데?!!!
  • 無碍子 2010/08/04 20:10 #

    청산의지를 보여주신 행적이 안보이는 걸 어떡합니까?
  • 치이링 2010/08/03 23:55 # 답글

    지금 생각하면 친일파 청산이란게 어찌보면 억지스럽고 코스트 비 효율 안맞는 쓸대없는 이벤트란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때 그 시절 온 나라의 분노가 쏠리는 시기에 저정도로 냉철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할수 있었다는것은 백범의 흠이 아닌 놀라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無碍子 2010/08/04 20:11 #

    친일파에 대한 분노가 있었을까요?
  • 백범 2010/08/04 22:18 #

    너도나도 일본 앞잡이라도 해서 밥먹고 살려고 했을텐데요?

    일본순사, 헌병보조원 지원 19대 1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90514183413252&p=yonhap

    http://search.daum.net/search?w=tot&t__nil_searchbox=btn&nil_id=tot&stype=tot&q=%C6%C4%C5%B0%BD%BA%C5%BA%C0%CE%20%C1%F6%B9%CC

    1922년 순사직 경쟁률은 약 2.1대 1 수준에 불과했으나 문화정치가 본격화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돌았다.

    예컨대 1926년에는 856명 모집에 9천193명이 지원, 약 10.7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1932년에는 854명 모집에 1만6천193명이 지원해 19대 1... ㅋ

    현실이 이랬습니다. 그리고 국사책에는 중요한 것, 1920~40년대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보다는 국내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일제에 타협, 협력하고 먹고 살았던 사실, 지식인들의 자발적 협력 등은 싹 빼놓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무장투쟁한 것만 부각시킵니다.

    그것마저도 1960년대인가 70년대에 누가 박정희에게, 일제시대에 협력했던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경우 학생들에게 조국과 부모에 대한 수치심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킬테니, 독립운동을 강조해야 한다 라고 사바사바 했다는 후문이 있더라능...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 2010/08/04 00: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無碍子 2010/08/04 20:11 #

    같은 닉을 쓰는 분이 계십니까?
  • 빛나리 2010/08/04 00:25 # 답글

    그 분은 조선일보에 복간 축하 전문을 보내시기도 했죠.
  • virustotal 2010/08/04 01:32 #

    그런걸로 엮으면 만해도 친일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 연재·태평로 사옥 축사… 만해와 조선일보 '끈끈한 인연'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04/2009080400043.html

    http://kr.news.yahoo.com/sports/baseball/view?idx=teamnews&aid=2009080404000466334&team=OB
  • 無碍子 2010/08/04 20:12 #

    한독당은 방응모를 국회의원후보로 공천했었지요.
  • virustotal 2010/08/04 00:55 # 답글

    그놈의 친일 지겹죠

    애매하고 광의로 일제시대 일본어 시험보고 취직했다는게 결국 친일이니

    솔직히 이봉창도 친일이라면 친일이고
    -인간 이봉창 이야기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http://www.yes24.com/24/goods/3100247-

    안중근 의사 아들 친일파고-아주 유명해서 연극까지 나오고 하단주소 참조-

    http://patriot.or.kr/05.community/submenu5301.php?ptype=view&idx=11442

    도대체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야

    친일이라는것이 솔직히 창씨개명하고

    나까무라 밑에서 취직시험봐서

    일하고 있으면 친일인데 안그래 협력자지

    문제는 이중간첩이니 전향자인데

    그럼 바오로는 로마시민이니 성 바오로 안되나?

    아예 전국민 창씨개명 과거지사 따 까보지

    얼마나 깨끗할지 유모씨처럼 나와도 우리집안만은 오해라고 하니

    신기남씨가 차라리 대인배처럼 보이더군

    인터넷에 친일이니 뭐니가 나보다 부자면 친일파 라고 하는 판국인데 ㅋㅋㅋㅋ

  • 海凡申九™ 2010/08/04 04:44 #

    그런 걸로 따지면 김일성 할범할멈부터 애비애미까지 친일쁘락치인데
    현실은 주사병신들 김일성 찬양할 때 김일성 조상도 찬양함.
  • 無碍子 2010/08/04 20:13 #

    안중근의 아들의 굴복은 속상하지요...
  • 지나가던놈 2010/08/04 03:23 # 답글

    ㄷㄷ
  • ArchDuke 2010/08/04 04:46 # 답글

    좋은 정보 잘 보겠습니다
  • 無碍子 2010/08/04 20:14 #

    이게 뭐 좋은 정보씩이나 되나요?
  • 갑신정변 2010/08/04 05:53 # 답글

    울프독이라는 분의 얘기에 따르면, 만주에서 장개석이 모택동에게 패한 계기가 장개석부하의 실수 즉 2차대전 직후 무장해제 상태였던 만주군 경찰의 합류를 거절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산군에 합류하게 만든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라크에서도 기존의 수니파 민병대 조직을 미군이 껴안고 나서야 치안이 안정되기 시작했죠.

    만주국의 패망과정에 대해 백범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군대나 경찰같은 조직과 인력이 결코 함부로 버려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기는 하네요.
  • 無碍子 2010/08/04 20:15 #

    소햏은 만군이 아니라 왕정위군으로 알고있었습니다.(http://soakaeofh.egloos.com/4574440)
    만군은 소련이 잡았기에 중화민국군에 편입될 기회가 없었지요.
  • 가우리하연 2010/08/04 06:22 # 답글

    전 삼성을 싫어하지만, 먹고살기위해서 삼성에 취업한 친구를 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친구가 승진을 해서 간부급이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김구선생께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가지셨던건 아닐지...

    그리고 선생께서는 민족을 버리지 못 하셨겠죠.

    잘 못은 했어도 한민족이니까요.
  • ㅋㅋㅋㅋㅋ 2010/08/04 07:38 # 삭제

    평소: 친일파 척결하자
    백범이 친일파를 등요한게 뽀록났을때: 친일파도 한민족
  • 無碍子 2010/08/04 20:17 #

    삼성에 친구가 들어가면 부러워 하십시오.
    그가 승진해서 간부급이 된다면 더더더더더 부러워 하십시오.
  • 제3의사나이 2010/08/04 08:01 # 답글

    전국민이 친일이었는데 누굴 청산할수 있겠습니까
  • 역사의진실 2010/08/04 08:14 # 삭제 답글

    1. 건국초기만 해도 백범계의 지지기반은 우남보다는 권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시기 한반도의 집권세력은 하지중장의 미군인데, 이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개인 귀국을 종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병대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 백범계 (임정계)의 백색테러 등에 대한 강한 우려와 함께 영향력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남이 해방직전 인지도를 확보하게 된것은, 일제에 의해 탄압된 라디오 청취사건이었고, 이때 우남에 대한 잘못된 신화 (그때의 잘못된 정보는 우남이 대통령이며, 기독교계이고 부인도 서양사람인 우남이 미국이 간택해서 밀어주는 사람이라는)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우남이 이를 적극 활용한 측면, 미군정이 우남을 백범의 견제세력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 백범의 죽여도 되는 칠가살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처단대상으로 일본인, 매국적, 고등경찰 및 형사·밀고자, 친일부호, 적의 관리, 등으로 구체화 지침이고요. 1941년에 발표한 건국강령>에서 적 부화한 자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는 선거권-피선거권을 박탈한다고 했습니다. 또 해방직후 발표된 당책에서는 적산(敵産)은 무조건 몰수 및 국유화, 매국적과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를 징치하고 그 재산은 국유화, 봉건 파시스트 등의 일체 반민주주의 경향을 숙청할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범계가 집권했다면 건국초기의 경험있는 인재부족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행정권력에 복무시켰을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친일파가 의회권력에 접근하는 일은 최소한 막았을 겁니다.

    북한에서처럼 탄백 정도는 시켰을 테고, 이후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이렇게 빳빳하게 고개쳐들고 사는 세상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친일파 들이 일제 때 축척된 재산을 기반으로 건국 이후의 한국에서 다시 위세를 부리게 하는 집단으로 존재하지 못하도록 사회적,경제적 토대를 제거하겠다는 생각은 백범계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반민특위 등에 활동했던 주요한 인사들이 한독당계열이었고, 백범의 사후에야 이승만계에 의한 반민특위가 해체된 것 등을 보면 역사적 증거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백범은 반민법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으며, 생전에 반민특위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발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 백범 2010/08/04 09:13 #

    그럼 김구선생이 반민특위 해산에 관련, 왜 아무런 반발이나 반응을 보인 자료가 없습니까?

    반민특위 관련인물 중 가인 김병로애산 이인씨나 곽상훈씨 같은 분들이 한독당계 인사였는지???
  • 無碍子 2010/08/04 12:58 #

    1. 우남은 해방정국에서 독립촉성중앙협의회(獨立促成中央協議會) 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독촉에는 한국민주당, 한국국민당, 조선공산당, 건국동맹 등 각 정당 사회단체가 망라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우남은 절대적 우위에 있었습니다.
    백범이 민병대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했다는데요. 그건 수사에 그치는 말입니다. 백범의 주요 무력인 백의사는 1946년 평양역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에서 수류탄을 투척하였으나 소련군 노비첸코 중위가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딴 곳으로 던져 내어 실패했으나 그 뒤 최용건(崔庸健), 김책(金策), 강양욱(康良煜)을 습격했습니다.
    sonnet님의 백의사 대북타격작전(http://sonnet.egloos.com/3331774)
    백범이 친일파를 응징한 자료가 있습니까?

    2. 백범은 귀국후 연설에서 친일파를 청산하고 정부를 수립할 것인지, 정부 수립 후에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4대강 반대한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도백들이 정부에서'할래, 말래?'라고 물으니 미적거리는 것과 비슷해 보일 정도입니다.

    탄백은 전설일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북한에서 청산된 친일파의 이름을 밝혀 주십시오. 적어도 군수급 이상이거나 군 좌관급 이상에서 처벌 받은 사람을 실명으로요, 적어도 조만식급 이상 명망가 한 명이라도 이름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이렇게 빳빳하게 고개 쳐들고 사는 세상이라 하셨는데요. 누가 우리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가 칠일파라고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자랑질 합디까?
    (http://soakaeofh.egloos.com/4599172)아버지가 일본 헌병이었다고 아들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 백범 2010/08/04 13:23 #

    브루스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일월서각, 1986)에 의하면 20만 명인가로 알려졌지만 실제는 5천명 미만이었을 거라고 추산했더군요. 그책을 어디서 다시 구할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86년 서적이라서...

    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커, 김자동옮김)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53~254쪽의 내용엔

    "하지도 특히 김규식과 김원봉의 다른 파들에 앞서 김구의 우파들을 먼저 서울로귀환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 김구의 집단은 미국 헌병의 보호를 받았으며 김구의 개인경호원들도 무기를 소지하도록 허용되었다.(다른 정치집단들은 그렇지 않았다.)" 는 부분도 있지요.

    미군정에서 김구선생 일파가 개인적으로 환국하는 대신, 무기를 소지할수 있는 권리를 줘서 불만을 무마시킵니다. 임정을 정부 자격으로 귀국시키는 대신 무장해제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미군정이 유일한 남한의 합법정부라고 강변하던 그들이 그렇게 하긴 쉽지도 않았을터...

    상하이나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 생존과 호신용으로 쓰던 무기들을 그대로 들고 귀국했고, 그런 무기들의 소지가 허용되었다면... 글쎄요. 무장능력이 없었던 이승만이나 김규식, 송진우, 김성수, 여운형, 박헌영 등 당시 제정파 세력들과 비교해 볼때 그 화력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을듯...

    적어도 47년 12월 김구주석이 남북협상론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아니 남북협상에 참여하고도 상당기간은 우익 청년단체들 사이에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우선 주인장이 말한 행정연구회도 있고,

    44년에 중국 국민당의 특수부대인 남의사를 본따서 만든 임시정부의 특수부대 백의사(최고수권자는 김구, 2위는 신익희, 단장은 염동진)도 있었고, 신익희가 만든 정치공작대 라는 것(물론 이건 신익희의 사적 친위조직이라지만 신익희는 임정계), 그밖에 대한청년단, 대동청년단, 서북청년단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였지요.
  • 백범 2010/08/04 13:34 #

    이범석의 족청도 있었군요. 47년 12월까지는 이범석의 민족청년단 역시 김구 계열로 봐야될듯...

    sonnet님의 백의사 대북타격작전, 하고 그것 외에도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권과 2권,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도 참고할만 하죠.
  • 캐안습 2010/08/04 14:21 #

    백범이 이런 말을 했으니 집권했으면 그렇지 않았겠느냐는 추정이 처음부터 끝인데 그러면 반일시위에 참가해서 재판받은 경력이 있는 사람은 철저한 반일세력이겠습니다???

    지금 거명된 "빳빳하게 고개 쳐들고 사는 친일파 후손들"이 누굽니까???
    그들의 이름과 포함사유를 대략이라도 거명하여 주시겠습니까???
    똑같은 기준으로 누구를 빼거나 누구들 빼려고 기준 강화하는 그런 꼴은 설마 없겠죠??
    지금까지 친일청산 추진했던 잉여들마냥 친일청산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한 제대로 돼먹은 친일청산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친일청산 기준을 똑같이 친북청산 기준에 적용하자면 왜들 그리 미꾸라지에 소금뿌린 거마냥 난리들을 치는지도 미스테리군요.
  • 백범 2010/09/30 10:29 #

    김구의 견제세력으로 미군정이 육성한건 이승만이 아니라 김규식하고 여운형 세력과 김성수 세력이었습니다. 물론 그 두 집단을 띄운건 김구, 이승만 세력은 물론 박헌영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임.

    그리고... 역사를 논할때 이러이러했을 것이다 따위의 가정은 무의미한 것 아닐까요? 적어도 남로당원이나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본다면 님의 상상은 그냥 허망한 망상이 아닐까 합니다. 김구가 반민법에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는 건 도진순의 백범어록이나 백범학술원의 백범김구주석 언론집 이라는 책 상하권에도 없던데요??
  • 백범 2010/08/04 09:16 # 답글

    김구선생 보다는 김규식박사나 조소앙선생 같은 분들도 있고, 여운형, 김일성, 박헌영도 있건만 저 주사파놈들은 왜 이승만 뺨치는 반공인사 김구선생을 팔아먹는지 이해가 안됨.
    (노빠들이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은 NL근성을 못버린 파시스트임을 스스로 자복하는건 아닌지...)

    자본주의 물을 먹고 자본주의 체제의 기득권 말석이라도 차지한 NL...

    노빠놈들은 지들이 처음부터 민주당계통인 것처럼 왜곡하지만 민주당계열이 아닌건 지금 노빠나 국개참살당 놈들 대다수는 87년 슨상이 평민당 만들고 젊은피수혈 이라는 핑계로 NL계 인사들 받아들일때 들어온 놈들임...
  • 데미노스 2010/08/04 10:29 #

    으아 백범선생이 직접 답글을
  • 2010/08/04 09:3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캐안습 2010/08/04 10:48 # 답글

    "일제 치하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노력한 사람은 무조건 친일개새끼이지만
    독재정권 치하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노력한 사람은 본인의 노력이므로 무죄입니다."
    라고 소위 진보라는 축에서는 이야기하더군요. ㄷㄷ

    타 당 친일파라고 공격할 때는 좋다고 낄낄거리다가 그 본인들이 제시한 친일기준에 본인들이 걸려드니까 연좌제 하지 말라고 언플질하다가 기준 자체를 변경하는 뻘짓도 하고.
  • 無碍子 2010/08/04 20:19 #

    유신판사의 공민권을 박탈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요.
  • 캐안습 2010/08/05 10:00 #

    저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유신독재정권 치하에서 세무공무원과 판사 해먹은 형제는 누구보다도 친유신적 인물들인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반유신적 입장의 진보는 여태까지 구경도 못했습니다.
  • 2010/08/04 13: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평민 2010/08/04 14:10 # 답글

    잘보고갑니다.
    만약 백범이 살아계셔서 초대대통령으로 되었으면 얼마나 까였으려나 궁금하네요.
  • 백범 2010/08/04 14:52 #

    그랬으면 아마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암살건은 100% 김구의 소행이다. 이러고 줄기차게 깠겠죠... 그러고도 남을 놈들임...
  • 無碍子 2010/08/04 20:20 #

    우리나라 전 대통령 중에 안까이는 분이 계시나요?
  • 백범 2010/09/30 10:29 #

    그럼 뭐 이승만이나 김규식을 칭송했겠지요 뭐...
  • 삿갓이요 2010/08/04 14:51 # 답글

    백범의 한독당은 반민특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요.

    반민특위를 해체시킨게 누구죠?

  • 백범 2010/08/04 14:57 #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한민당도 반민특위 지지했거든요? 김병로, 김성수, 이인, 곽상훈... 그리고 반민특위 무렵엔 탈당했지만 한민당계열이었던 김용무라던가 김약수, 그리고 또 누가 있었더라...

    위에 호명한 사람들은 한민당이거나 한민당 계열입니다만... 한민당내에서도 실제 반민특위를 드러내놓고 반대한 인물은 윤보선 등 소수밖에 없었습니다.
  • 無碍子 2010/08/04 20:21 #

    백범은 친일 재벌 최창학의 집에 머무르셨고
    한독당은 조선일보 방응모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습니다.

  • 2010/08/04 22: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주코프 2010/08/05 15:14 # 답글

    백범이 우남 이승만에 비해, 부일협력자 처벌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후세가 만든 가설에 불과합니다..오히려, 그 반대의 양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백범의 해방이후 행적 및 인맥으로 봐서..

    우남의 반일은 의외로 강고했고, 일본황실에 귀부한 조선왕족의 귀국금지, 당시 일본 경성은행 총재였던 홍사익 중장의 아들을 곧바로 해고조치 파면하는 등 '최상급 프로 친일파'에 대한 처벌조치는 매우 엄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삿갓이요 2010/08/09 01:42 #


    40년대 말에 서정주에게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하도록 맡긴 것이 우남이구요.

    반민특위를 공식석상에서 부정하고 친일 경찰들을 동원해 반민특위 사무소를 습격하고

    국회 프락치사건을 (최소)묵인했던 것 또한 우남이구요.

    그보다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을 포함한 친일경찰 간부들을 처벌없이 기용한 것 또한 우남이군요.

    40년대 유명한 문학인들과 구 황실 왕족들 중 누가 더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나요?

    아니 진짜 그보다 펜대나 굴리는 문인들이나 악질적인 친일경찰간부들이 해방 후의 남한에서

    대체 뭐에 쓰는데 유용한지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 고등학생 신분이고 주코프님에 비해 학식이나 식견 등이 월등히 떨어지기에

    대등한 토론을 펼칠만한 재주가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는 매우 동떨어지는, 그리고 그닥 설득력 있게 들리지도 않는

    주장에 대해 저는 매우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네요. 사학도를 꿈꾸는 입장에서 분수넘게

    답글을 달아 봅니다.
  • 백범 2010/08/09 09:51 #

    별 시덥지 않은... 그럼 이광수에게 회고록 윤문을 맡긴 김구주석 역시 비난받을수 있는 문제입니다.
  • 백범 2010/09/30 10:31 #

    노덕술 등을 채용한건 미군정때의 경찰기관장인 조병옥(경무부)과 장택상(수도경찰청), 류동렬(통위부장=국방부 비슷한 사무기관), 이범석(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이지 이승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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