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시대 일해시대, 김수령이 보내주신 쌀 2010/05/26 20:26 by 無碍子

1984년에도 비는 많이 내렸어요. 7월 중순 집중호우가 내려 사상자가 70여 명이나 발생했고, 8월 말 또 큰 비가 내려 사상자가 339명이나 발생했어요.
9월8일 북한방송은 김수령께서 쌀 5만 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 톤과 의약품 등의 수재민 지원을 제의 했다고 전했습니다. 일해는 그 자리에서 보내주면 받겠다고 응답했고요.
김수령은 보내 준다면 안 받는다고 할 줄 알고 보낸다고 했고, 일해는 보내라고 하면 보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보내라고 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1983년에 아웅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여간 일해는 배포가 큰 사람이었어요.
남북 적십자 회담이 열리고 우여곡절 끝에 김수령이 보낸 쌀과 시멘트 그리고 옷감이 도착했어요. 돌아가는 차편에 담요와 가전제품 등 저들이 가져 온 물품가격의 두 배가 넘는 답례품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여간 김수령의 하사품을 수해 입은 농민들에게 나눠주게 됩니다. 근데 이미 수해 농민에게 구호미가 분배되었고 새마을 시멘트가 피해복구용 자재로 나온 뒤였습니다.
1. 쌀
김수령의 쌀로 밥을 지었는데 밥맛이 너무 없었답니다. 정부미만 못했답니다. 버릴 수 없어서 술을 담가먹으니 먹을 만했답니다.
2. 시멘트
새마을 시멘트로 나온 쌍룡시멘트는 모래 세 삽에 시멘트 한 삽을 섞어서 몰탈을 만들어 쓰는데요, 김수령 시멘트는 모래 세 삽에 시멘트 한 삽을 섞으면 반죽이 되지 않고 흩어져요. 그래서 모래 한 삽에 시멘트 한 삽 비율로 섞었더니 반죽이 되었다고 합니다.
3. 옷감
김수령이 보낸 옷감은 두껍고 무겁고 거칠어서 도저히 사람이 입을 옷을 만들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소에게도 옷을 입힙니다. 사투리로 삼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표준말은 잘 모르겠어요. 원래는 짚으로 거적을 엮어 소 등에 얹었었는데 80년도쯤에는 가볍고 따뜻한 부직포로 만든 삼정을 이용했습니다.
사람이 입을 수 없는 옷감으로 삼정을 만들어 소 등에 올려 줬다고 합니다.
김수령이 보낸 쌀과 옷감 그리고 시멘트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의식주를 상징하거든요. 김수령이 보낸 의식주는 대한민국 수재민들에게조차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습니다.

김수령이 쌀을 보낸 사건에 이어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어졌습니다. 그 상봉단 일원으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름 높으신 지학순 주교님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평양에서 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살아서 천당에 가는데 오빠는 죽어서 천당에 가겠다니 돌았군요.”

덧글

  • 소드피시 2010/05/26 20:31 # 답글

    이거 다 중국으로부터 뜯어낸 거라죠? ㅋ
  • 無碍子 2010/05/26 20:49 #

    북한산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84년 수해지원과 88년 청년축전으로 고랑탕을 먹고 영원히 헤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 소드피시 2010/05/26 20:55 #

    http://sonnet.egloos.com/tb/4390430

    절반만 중국에서 대줬나보네요.^^
  • 無碍子 2010/05/26 21:11 #

    sonnet님은 중국이 절반을 부담했는데, 지원 물량의 가격만큼 외상을 까 주는 방식으로 했답니다.

    직접지원은 직물의 일부 뿐이었으니 김수령이 다 부담한 것이나 마찬가지 같습니다.
  • 소드피시 2010/05/26 21:12 #

    과연 중국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군요. ^^ 하긴 그러니까 아직도 북한과 무역을 하지.
  • 海凡申九™ 2010/05/27 12:41 # 답글

    혹부리가 보냈던 쌀은 썩은 것이 거의 대다수였댑디다.

    그거 먹은 분의 얘기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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