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형주(荊州)의 실함과 관운장(關雲長)의 최후 2010/04/30 12:59 by 無碍子

1. 동독형주사(董督荊州事) 관우
유경승(劉景升)이 다스리던 형주(荊州)는 호남과 호북 일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였습니다. 북으로는 중원이라 부르는 예주와 연주와 인접하면서, 동서로는 장강수로로 양주와 익주로 교통하는 요지였습니다.
그러나 유표가 죽고, 적벽대전이후 유현덕(劉玄德)은 호남 4군을 수복했고 주유가 양양군의 일부를 차지하고 남군태수에 올랐습니다. 호북 대부분은 조조 차지가 되었고요.
적벽대전 와중에 강하군은 장강이북은 조조가, 이남은 손권이 갈라먹어 장강수로가 개방되었고, 장사군을 손권이 갈라먹어 호남 깊숙이 칼을 디밀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유현덕의 형주(荊州)총독이었던 관우(關羽)가 통치하던 영역은 이리하여 서쪽 국경이 매우 취약한 형편이었습니다.

유비가 사천지역를 평정한 후인 건안 20년(215년), 손권이 유비에게 형주를 내놓으라고 통보했고 유비는 서량을 얻으면 형주를 주겠다고 답했는데 손권은 기다리지 않고 여몽을 보내 관우가 통치하던 장사, 영릉, 계양 세 군(郡)을 습격하여 빼앗아버렸어요. 무려 천하 명장으로 이름 높은 한수정후 미염공 관운장의 콧잔등을 여몽이 후려친 겁니다.

관우는 여몽을 감당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유비가 직접 익주에서 군사 5만을 이끌고 내려와 관우에게 3개 군을 수복하라고 했습니다.
막 전투가 벌어지려는데 급보가 왔어요. 조조가 한중(漢中)으로 들어온 거예요. 형주에서 우물거리다가는 익주(益州)가 날아갈 형편입니다.
유비는 손권과 휴전조약을 맺습니다. 호남의 동부지역인 장사 강하 계양 3군은 손권이, 호남의 서부지역인 영릉 무릉과 호북의 남군을 유비가 갖는 걸로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동독형주사(董督荊州事) 관운장이 통치하던 지역은 유경승이 다스리던 형주와는 다릅니다. 겨우 2~3개 군 뿐입니다. 더구나 이미 한수정후 미염공 관운장은 여몽에게 호남을 털렸었다는 것을 상기 하셔야 합니다.

2. 관우의 북진.
누가 지 앞가림도 못하고, 여몽 따위에게도 빌빌 거리던 관우를 죽음의 행진으로 몰아넣었을까요?
건안 23년(218년) 유비의 한중 공략을 지켜봅시다. 유비는 한중을 치기위해 사석작전(捨石作戰) 작전을 구사 합니다. 오란, 뇌동에게 무도(武都)를 공격시켰는데 그들은 몰살당했어요. 무도는 서량입니다. 무도를 치려면 마초나 마대를 보냈어야지요.
그리고는 자신의 본진이 한중을 공략해서 성공합니다.

관우의 북진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명확치 않으나 본영인 강릉(江陵)에서 출진하여 조인이 지키는 양양(襄陽)을 치고 한수를 건너려면 1년 정도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면 유비의 한중공략과 같은 시기로 봅니다.
같은 시기에 맹달도 호북에서 북진하여 방릉(房陵)을 급습해서 태수를 죽이는 대승을 거둡니다. 유봉이 가세하여 이듬해인 건안 24년(219년) 상용(上庸) 전지역을 석권합니다.

이 시기에 즉 유비의 본진은 한중을 차지하고 유봉과 맹달은 상용을 점령하던 그 때 관우는 한수를 건너 번성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번성과 양양은 같은 지역 두개의 성읍입니다. 지금 호북성(湖北省) 양번시(襄樊市)로 통합되었어요.
유비의 본진이 한중을 공략 할 때 2진은 오란이 거느리고 무도를 공략하고, 관우의 3진은 양양을, 맹달의 4진은 상용을 공략하여 조조의 군세를 분산시킵니다. 즉 관우는 유비의 한중공략을 위한 조조군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임무를 맡았을 걸로 봅니다. 

한수를 건넌 것은 무리수였어요. 적당한 수준에서 중지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만약 한수에서 관우가 북진을 중지했다라면 북은 한수로 남은 장강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장벽을 가진 형주는 탄탄해졌을 것이며 유비의 큰 자산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한수를 건너서 큰일을 망쳤어요.

3. 손권의 형주공략
손권의 관우습격은 매우 치밀하게 추진되었습니다. 관우가 전 병력을 한수 방면에 집중 시켰기 때문에 본진인 강릉은 빈집이나 다름없어서 터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빈집을 털다가 주인에게 걸리면 큰일이 나지요.

형주와 유비가 있는 익주는 지도상으로는 붙어있지만 유일한 연락 통로는 장강입니다. 장강과 그 곁의 험준한 산길 외에는 정보통신, 물류, 인적교류의 통로가 없습니다. 장강도 삼협이라는 거친 물살을 헤쳐야 합니다.
여몽은 반장과 장흠 그리고 육손을 시켜서 사천으로 가는 길목을 막아 버렸어요. 게임이 끝났을 때까지 익주에서는 형주 사정을 몰랐어요.

관우와 관평이 죽고 손권이 형주를 평정한 다음에야 유비는 형주가 털린 것을 알고 분통을 터드렸어요. 손권측의 완벽한 작전이었습니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4/30 16:08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無碍子 2010/04/30 17:53 #

    감사합니다.
  • 이탈리아 종마 2012/05/27 01:36 #

    이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삼국지 전문가들께선 관우가 군략 쩌는 무신이라고들 하지요. 나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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